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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조홍식의세계속으로] 리더십, 고령화인가 연령 파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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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련 94세 마하티르 총리 노익장 과시 / 佛·뉴질랜드 등에선 30대 지도자도

세계일보

고령화 시대가 화두로 등장한 가운데 얼마 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92세의 마하티르 모하마드가 이끄는 ‘희망연대’가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정확하게 1925년 7월 10일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무려 94세에 노익장을 과시한 셈이다. 마하티르는 다음날 총리로 취임함으로써 1926년생인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제치고 세계 최고령 지도자로 ‘등극’했다.

물론 군주제의 세습 여왕과 민주 선거를 통해 당선된 마하티르를 단순 비교할 순 없다. 한번 왕이 되면 종신직이다. 군주란 맑은 정신과 건강, 그리고 품위만 유지하면 국가의 상징으로 계속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치열한 선거 캠페인을 이끌고 국정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민주주의 리더십은 상당한 에너지와 능력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독재자들이 노인이 돼도 집권하는 경우는 빈번하지만, 민주 국가에서 70대를 넘기는 지도자가 드문 이유다.

마하티르의 놀라운 선거 승리와 총리 취임은 말레이시아의 특수한 정치 상황의 결과다. 첫째, 나집 라작 전 총리가 천문학적 액수의 부정부패 스캔들에 연루됨으로써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다. 둘째, 마하티르는 나집 전 총리와 같은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라는 정당출신으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말레이시아 총리를 이미 역임한 바 있다. 20년 넘게 말레이시아 경제발전의 시대를 이끌었으며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때 위기극복의 리더십을 훌륭하게 발휘했다. 국민 사이에는 “오죽 상황이 급박했으면 정계 은퇴한 90대 노인이 다시 복귀했겠냐”는 심리가 만연했던 것이다. 셋째, 마하티르는 수감 중인 야당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과 광범위한 연합을 형성해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냈다.

정치적 이유로 수감됐던 안와르는 마하티르가 취임하자마자 사면·석방됐고, 그의 부인 완 아지자는 마하티르 내각에 말레이시아 최초의 여성 부총리로 들어갔다. 집권 연합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하티르가 안와르에게 총리직을 넘겨준다는 계획이다. 따지고 보면 안와르도 이전 마하티르 정부에서 1998년까지 부총리로 일한 UMNO 출신이다. 따라서 이번 정권교체는 순수 야당의 부상이라기보다는 여당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다.

개인차가 무척 크겠지만 90대 노인이 국가 지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여당 내 반발로 38년 만에 권좌에서 내려온 짐바브웨의 94세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은 한동안 희망의 국부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오판과 실정으로 나라를 망쳐 놓았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하티르가 연합의 상징으로 기능했고, 실제로는 70대의 안와르가 핵심 역할을 이어받을 예정이라는 점이다.

마하티르는 고령화 시대 노인 지도자의 극단적 사례지만 지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나 힐러리 클린턴은 모두 70세 전후였다. 예전 같으면 후보의 건강상태와 직무수행능력에 의심을 품었겠지만 최근 70대의 일반적 건강상태가 좋아지면서 그러한 우려는 줄어든 듯하다. 동시에 프랑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등에서는 30대 대통령과 총리가 등장했다. 어쩌면 세계 민주 정치의 일방적 고령화를 말하기보다는 지도자 연령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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