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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해외칼럼] 실패를 성공으로 떠벌리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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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못해" 오바마 비판했지만

출범 500일 해놓은 게 없어

북미회담·대중 무역협상 등

'성공마케팅' 허세 기술만 갖춰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서울경제


도널드 트럼프는 전임자가 거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른다며 비난을 거듭한 바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시리아에 대한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평과 함께 “버락 오바마는 타고난 협상가가 아니다”라는 트윗을 날렸다. 앞서 2013년에도 그는 “형편없는 협상력으로 오바마는 결국 이란을 공격하게 될 것”이라며 헛다리를 짚었다.

2015년에는 트윗을 통해 “우리에게는 미국민을 위해 통 큰 거래를 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에는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협상가라는 함축된 의미가 담겨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거의 500일이 돼간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그가 이끌어낸 협상 성과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재협상에 들어간 북미자유협정(NAFTA·나프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대체할 쌍무무역협정, 개선된 이란 핵 합의, 대중 무역협상의 결과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그의 입법 성과는 이보다 훨씬 보잘 것이 없다. 이민에서 기반시설 투자에 이르기까지 그는 민주당과 어떤 합의도 일궈내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세계는 지금 미국을 비웃고 있다.

북한에서 중국에 이르는 모든 중요 사안 앞에서 방향감각 없이 위태롭게 폭주하는 미국을 지켜보며 지구촌 주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트럼프가 형편없는 협상가이며 보좌진의 브리핑을 무시하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지도자로 주요 사안들의 세세한 부분을 거의 알지 못할뿐더러 먼저 총부터 쏘고 질문은 나중에 하는 앞뒤 없는 스타일이라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졌다.

현 행정부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다루는 것만 봐도 그렇다. 처음에 북미 정상회담은 요란스러운 팡파레가 울리는 가운데에 발표됐고, 트럼프는 연일 김정은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거의 아무런 대가 없이 워싱턴이 북미 정상회담에 합의한 것 자체가 북한에 대한 어마어마한 상징적 양보였다.

북미회담은 양국 정상들 간의 만남이기는 하지만 준비가 거의 안 된데다 회담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결의가 확고하지 않을뿐더러 진지한 최고위급 협상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게다가 북한의 기존 입장이 변화할 움직임이 보인다는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트럼프는 역사적 대타협이 이뤄질 것이라는 과장된 전망을 띄우기 시작했다.

이어 트럼프 보좌관들은 북한을 위협하고 겁주며 협박하는 듯이 들리는 이상한 코멘트를 연이어 쏟아냈다.

어떤 계획이 있는 걸까. 트럼프 행정부가 앞선 조급함을 후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무능하기 때문인가.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상할 게 있을까.

중국과의 거래에서 트럼프는 이보다 훨씬 서툰 모습을 보였다.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 그는 대만을 인정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중국은 즉각 미국과의 접촉을 차단했고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코멘트를 주워담는 굴욕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현재 진행 중인 중국과의 무역 담판은 나쁜 협상의 본보기에 해당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다. 미국 정부는 자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날에는 무역적자 규모에 집착하는 듯 보이다가 다음 날에는 기술이전과 지적재산권 절도에 초점을 맞추려 든다. 그야말로 우왕좌왕이다.

백악관은 대부분 미국의 우방국들이 집중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철강관세로 공격을 시작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면 동맹국의 이익 따위는 얼마든지 저버릴 수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했다.

그 어떤 국가에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던 트럼프 행정부는 또다시 입장을 바꿔 미국으로 가장 많은 철강을 수출하는 다섯 나라에 대한 관세 면제를 허용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면제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위협을 잊지 않았다.

미국 측 협상 멤버들은 서로의 입장을 약화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흘렸고 이달 초에는 중국 협상단 앞에서 말다툼을 벌이는 적전분열의 추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사회기반시설처럼 여론을 통합할 수 있는 이슈 대신 여론을 분열시키기에 딱 좋은 의료보험을 입법과제로 제시하며 임기를 시작했지만 오바마케어를 폐기하는 데 실패했다.

트럼프와 그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중재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 협상은 어떻게 진행돼가고 있는가.

회담이 틀어지고, 거래가 깨지고, 협상이 흔들려도 트럼프는 자신의 위대한 승리를 알리는 트윗을 계속 날려 보낸다. 트럼프의 참된 재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실패를 성공으로 마케팅하는 뻔뻔스러움과 허세, 그리고 기술을 갖고 있다.

트럼프에게는 수수한 건물을 사들여 황금색 페인트를 칠한 후 사람들에게 최고급 콘도미니엄이라고 믿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것이 바로 왜곡(spin)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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