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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World & Now] 정부는 `유엔 시나리오` 준비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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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롤러코스터'식 미·북정상회담의 결말을 추측하는 건 섣부른 일이다. 회담 취소와 재논의가 극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이 싱가포르 회담장에 나란히 설 수 있을지는 가봐야 안다. 그러다 보니 막상 '화려한 무대'가 열리고 나면 누가 뒷정리를 하게 될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유엔 고위 인사는 "미·북 정상이 만나고 나면 공은 유엔으로 넘어오게 돼 있다"고 단언했다. 일명 '유엔 설거지론'이다.

그는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과 투자가 이뤄지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완화 없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며 "안보리 대북 제재를 푸는 해법은 다차방정식이고 앞으로 치열한 두뇌싸움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70년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군사적 조치인 '결의 2270호'를 2016년 3월 채택했다. 그 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과 추가 핵실험을 강행할 때마다 제재 수위는 갈수록 높아졌다. 유류 공급 제한, 광물·섬유 수출 금지, 노동자 해외 파견 제동, 금융 제재, 북한 수출입 화물 검색 의무화 등 전례를 찾기 힘든 압박 수단이 동원됐다.

유엔 고위 인사는 "국제법에 준하는 안보리 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북 제재안을 마련할 때는 한국의 의견을 받아 미국이 초안을 작성하고 중국과 러시아에 이를 전달해 사전 조율하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자국의 이해를 반영해 미국 초안을 거부하거나 제재 강도를 낮출 것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반대로 대북 제재 완화안은 중국이 북한의 의사를 감안해 초안을 작성하고 미국과 사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칠 공산이 크다.

북한에 대한 안보리 제재 국면에선 중국이 몽니를 부렸지만 완화 국면에선 거꾸로 미국이 견제구를 날리는 입장에 서게 된다. 미국과 중국 모두 '거부권'을 갖고 있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선언이 검증 가능한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까지 안보리 제재의 봉인을 쉽게 해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유엔에서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가 미묘한 숙제다. 북핵 문제 해결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문재인정부가 자칫 대북 재제 완화에 조급증을 보인다면 '한미동맹 균열'이나 '북·중과의 밀착'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아직까지 미·북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지만 한국 정부가 치밀한 '유엔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ihhwa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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