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美 비밀 문건 3] 5·18과 미국, 성명 발표도, 무력 사용도 신군부와 상의한 미국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은 당초 광주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을 때 자제를 거듭 촉구했으며 5월 22일 서로 대치하고 있던 쌍방의 대화를 촉구하는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미국 정부 성명서(89년 작성)


● 美, 5·18 초기부터 계엄군 과잉 진압 파악

88년 미국은 "광주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했고 대화를 촉구하는 공개 성명을 5월 22일 발표했다"고 했습니다. 뒤늦게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을 때부터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유도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비밀 문건에는 그들의 '간단한 설명' 뒤에 숨겨졌던 많은 사실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88년 성명과 달리 미국은 5·18 초기부터 계엄군의 과잉 진압을 알고 있었습니다. 80년 5월 19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국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에는 "공수부대가 총검을 사용해 수많은 부상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돈다(Rumors reaching seoul of kwangju rioting say special forces used fixed bayonets and inflicted many casualties on students)"고 기록돼 있습니다. 21일에는 "질서 회복을 위해 많은 군사력이 투입될 텐데, 이미 몇 년간 지속될 상당한 피해를 남겼다(while military will probably restore order using considerable force sufficient damage has been done to create scars which will last for years)"고 보고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美, 신군부와 상의해 성명서 발표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국은 성명서 발표를 검토합니다. 80년 5월 22일 한국 시간 오전 9시 38분, 주한 미국 대사관이 미국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에는 "광주 상황이 극도로 심각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입장을 알고 싶어한다(The situation remains extremely serious, more and more people want to know the U.S. attitude)"며 "23일 발행되는 한국 신문에 실릴 수 있도록 22일 국무부가 미국의 성명을 발표하기 바란다(The statement should be issued at today's press briefing so that it can be published in tomorrow's papers here)"고 기록돼 있습니다.

미국이 발표할 성명서 초안도 적었습니다. 광주 상황에 대해 평화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강조하면서 외부 세력 즉, 북한이 위험한 오판을 할 경우 미국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실제 미국 국무부는 비밀 전문에 적힌 대로 22일에 이 성명서 초안과 같은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평온이 회복되면 최규하 대통령이 밝힌 정치발전 계획을 재개할 수단을 찾도록 촉구한다'는 내용 하나만 추가됐습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이 성명서 초안을 청와대는 물론 신군부가 동의하는 것을 넘어 환영했다(Both the key military authorities and the blue house are not only agreeable to a statement along these lines. But would welcome it)"고 적었습니다.

● 美, 무력 사용도 상의

미국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한국군이 무력 사용을 잠깐 멈추기로 확약받았다고 했습니다. 주한 미국 대사는 "성명서 발표 직후 군사 작전이 시작되면 미국의 입장이 난처해진다고 지적했다(I have pointed out to them that it would put us in an impossible position if it were issued on the eve of a military attempt to retake the city)"며 "이에 따라 최소 이틀 동안은 군사 작전을 하지 않겠다는 최고 수준의 확인을 받았다(And in response to this they have given us the high level assurance mentioned above that they do not have in mind forceful actions for at least the next two days)"고 했습니다. 계엄군의 과잉 진압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 질 것을 걱정해 이틀 동안만 군사 작전하지 말라는 확인을 신군부와 주고받은 것입니다.

실제 이 비밀 전문을 보낸 다음 날인 80년 5월 23일, 주한 미국 대사가 박충훈 당시 국무총리 서리를 만나 미국 국무부에 보고한 비밀 문건에는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한데 동의한다(We agreed that firm anti-riot measures were necessary)"면서 "한미 연합 사령부 산하의 부대를 광주에서 한국군 지휘를 받도록 하는 데 동의했다(We agreed to "CHOP" forces under CFC command to Korean authorities for use in Kwangju)"고 전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광주 상황을 잠재우기 위한 신군부의 군사력 투입을 용인한 것입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이 평가한 광주…"위기 속 하나로 뭉친 도시"

미국 비밀 전문에는 5·18에 대한 미국의 평가도 담겨있습니다. 5·18 한 달쯤 뒤인 80년 6월 10일 '가장 균형 잡힌 기록(This is the most balanced incident we have seen so far)'이라며 주한 미국 대사관이 미국 국무부에 보고한 문건입니다. 이 기록에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하지만 80년 당시에는 감춰졌던 진실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광주는 폭동으로 찢긴 도시가 결코 아니었다(Kwangju was never a riot-torn city)', '광주가 학생이나 반체제 인사에 의해 위험한 적은 없었다(Kwangju was not a city held dangerously by students or dissidents)', 광주 시민들의 적대감은 공수부대의 잘못된 강경진압 때문이었다(The animosity of kwnagju is against the airborne unit which behaved so badly)'. 광주는 '위기 속에서 하나로 뭉쳤던 도시였다(It was a city united in crisis)'. 미국은 80년 5월 광주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 [美 비밀 문건 1] 미국이 기록한 '5·18과 전두환'
▶ [美 비밀 문건 2] 5·18과 미국, '신군부 정권 장악' 의도 알고 있었다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 [다시 뜨겁게! 러시아월드컵 뉴스 특집] 바로가기
☞ [나도펀딩] 한효주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