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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박근혜 블랙리스트는 유죄·판사 뒷조사는 ‘무죄’라는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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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사모’ 불이익 검토·판사 뒷조사

직권남용 논란에도 형사책임 안 물어


한겨레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맨 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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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 등을 파악한 파일이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다만 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 체계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부과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판사 뒷조사에 “불이익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면죄부를 주자, 법원 내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유죄 판결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법원이 스스로에게는 ‘이중잣대’를 들이댔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조단 조사보고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양승태 대법원’에 비판적인 판사 모임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기획·실행된 ‘전문 분야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다.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2015년 7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모임인 ‘인사모’를 겨냥한 지시를 내렸고, 그 연장선에서 임종헌 행정처 차장 주도로 인권법연구회 회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검토됐다. 이 조처는 지난해 2월 실제 시행됐다. 특조단 내부에선 “연구회 견제나 와해가 주된 목적이었다면 직권남용죄가 된다”는 견해도 있었으나, “형사책임을 묻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특조단은 또 행정처 추진업무에 부정적인 법관 등을 ‘사법행정위원회’에서 배제하기 위해 판사 성향 분석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부적절하지만 실행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위원 추천 권한을 가진 고등법원장들에게 ‘1순위(적색), 2순위(청색), 3순위(흑색)’ 등으로 판사를 구분한 행정처 명단이 전달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3순위로 분류된 37명 중 1명만이 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실제 실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사자 해명이 그대로 수용된 사례는 또 있다. 임 전 차장 지시로 2016년 3월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작성한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문건에는 “인사모 등 핵심 회원에게 선발성 인사, 해외연수 등에서 불이익 부과→법관 사회 내 거리낌 증가”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특조단은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작성자 진술을 근거로 “인사 불이익이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사법제도 개선을 요구한 판사에 대한 ‘사찰’ 수준 뒷조사에도 특조단은 면죄부를 줬다. 임 전 차장의 지시로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2016년 4월 ‘차○○ 판사 재산관계 특이사항 검토’ 등의 문건을 작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조단은 “사법행정권의 남용”이지만 “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런 특조단의 결론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판결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1·2심은 이들이 자신과 문체부 공무원의 직권을 남용해 문체부 산하 기관 직원들에게 특정 문화예술인을 배제하는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춰보면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소속 심의관(판사) 등에게 특정 연구회 소속이나 특정 판결을 내린 판사를 뒷조사해 이들에게 ‘징계’나 ‘선발성 인사 배제’ 등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한 것은 ‘사법행정 사무’라는 정당한 직무집행 범위를 벗어나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판사는 “행정처 심의관들에게 법관 독립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기획을 하게 한 것 자체가 ‘의무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민경 현소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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