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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빨간날] 죽여도 죽여도 살아요, 저는 '몰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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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남궁민 기자]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몰카의 일생-①] 탄생→성장→사망→재탄생 '악순환' 고리…피해자와 닮은 사람까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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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종철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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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승객으로 가득한 지하철 안. 누군가 여성들의 모습을 몰래 찍어요. 찍는 사람은 A, 찍히는 사람은 B라고 해두죠. 걸리는 시간은 1분, 2분, 3분, 아니면 1시간, 2시간…. 그렇게 제가 태어났어요.

다른 친구들은 화장실·모텔·길거리·해변 등 여러 곳에서 태어나요. B의 집에서 만들어지기도 해요. 누군가 휴대폰이나 웹클라우드를 해킹해 저를 만들기도 해요. 중고폰을 팔았다가 생기기도 하고요. 근데 대부분 A는 남자예요. 날짜, 장소는 모두 다르긴 하지만요.

요즘엔 스마트폰이 참 고마워요. 그 안에 제가 가득하거든요. 태어나기 너무 좋은 환경이 됐어요. 누구나 A가 될 수 있어서요. A는 때때로 저를 꺼내서 보고, 다시 또 꺼내 보고 그래요.

그런데 얼마 전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탈출했어요. 'OO넷'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처음 가봤어요. 새로운 집인 셈이죠. 여기에는 전국, 전세계에서 온 친구들이 가득해요.

그런데 몇번이나 경찰이 들이닥쳐서 죽을 뻔했어요. 커뮤니티를 없애려 했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이름만 바꿔서 운영되고 있어요. 회원도 수만명이나 돼요.

여기에 제가 오면 다들 '고맙습니다' 라며 댓글을 남겨요. 그리고 저를 데려가요. C라고 해두죠. 스마트폰을 탈출한 저는 순식간에 수천, 수만명의 C에게 퍼져나가고 있어요.

아, 저랑 같이 스마트폰에서 태어난 다른 친구들은 영영 외국으로 떠났어요. '텀블러'라는 SNS(소셜미디어서비스) 아세요? 이쪽으로 흘러 들어간 친구들은 한국에선 찾을 수도 없다고 해요.

물 건너간 친구들은 한국에 남은 몰카들처럼 조심할 필요도 없어요. 저처럼 혹시 죽을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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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도착한 곳은 거대한 외장하드예요. 저를 다운 받은 C는 이런 외장하드가 수십개 있는 커뮤니티 '거물'이라고 해요. 새로운 C는 다른 사람과 대규모로 저를 교환하고 있어요.

'큰 손'인 C는 저의 가격을 후하게 쳐줘서 인기가 많다고 해요. 성매매업소부터 해외 성인사이트도 새 주인한테 돈을 주고 저를 사가려고 해요. 요즘은 인쇄돼서 교도소까지 흘러간다고 해요.

지하철에서 태어난 몰카 주제에, 물 건너고 교도소까지 진출했으니 꽤 성공했죠?

제 힘은 제법 세요. 어떤 B는 죽고 싶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어요. 한 달 동안 집 밖으로 못 나가기도 했대요.

누가 알아보는 것 같다고 성형수술도 한대요. 이름도 바꾸고요. 휴대폰 번호도 바꾼대요. 이사도 가요. 심지어 B가 아닌데도 B와 얼굴이 비슷하다며 절 없애달라고 하기도 해요.

제가 무섭긴 무서운가봐요. 수십만명이 절 보기도 하니까, 이해는 돼요.

갑자기 비상이 걸렸어요. '디지털 장의사'(인터넷 기록 삭제 전문가)가 떴거든요. 불법 성인 사이트 10곳에서 한창 신나게 놀던 참인데! 무서워지네요.

B가 불법 성인 사이트에서 절 보고는 없애 달라고 의뢰를 했나봐요. 가격은 6개월에 100~200만원 정도래요. 그 기간 동안 저를 계속 없애는 조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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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싸움이에요. 저는 더 많은 곳으로 도망가고, 디지털 장의사는 저를 빨리 잡으려고 하겠죠. 쉴 새가 없어요. 24시간 싸워야 해요.

도망가는 건 쉬워요. 제 분신(링크)을 수없이 만들면 돼요. 불법 성인 사이트에서 제 인기는 높거든요. 대형 사이트 몇 곳에만 가면 소형 사이트에선 자동으로 제 분신이 막 생겨요. 제 몸은 하나인데, 분신은 수십개인거죠. 디지털 장의사들을 따돌리는 좋은 방법이에요.

'일주일'이 싸움의 관건이에요. 그동안 잘 도망다니지 못하면 보통 한 달 안에 전 죽어요.

디지털 장의사는 불법 성인 사이트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요. 운영자에게 저를 없애달라고 부탁하죠. 때론 사정하고 호소하기도 해요. 피해자가 죽어가고 있다고요.

다행히 운영자들은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제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고 돈을 벌게 해주니까요.

또 저를 더 도와주는 게 있어요. '커뮤니티'예요. C들이 제가 죽지 않도록 열심히 알리죠. 새로 태어난 제가 끝내준다면서요. 그러면 다들 눈에 핏줄을 세우며 절 열심히 찾고, 데려가요.

앗, 이번엔 정말 위험해졌어요. 제가 텀블러에 숨은 것을 디지털 장의사가 알아챘어요.

똑똑한 친구예요. 제 몸이 없으면 분신도 사라지는 걸 알아챘나봐요. 텀블러 집을 찾아와 없앴어요. 제 분신 10개도 순식간에 다 사라졌죠.

죽었냐고요? 아니요. 아직 제 집은 더 있어요. '웹하드'란 곳이에요. 여긴 제가 한 번에 여러 명에게 도망갈 수 있는 곳이죠.

도망다니다 여기도 걸렸어요. 디지털 장의사가 손을 썼네요. 제가 있어도 아무도 절 못 찾게 했대요. 이제 진짜 죽나봐요. 모든 집이 사라졌어요.

B는 디지털 장의사에게 고맙다고 해요. 덕분에 살 수 있게 됐다고요. 새 생명을 얻었다고도 해요. 그런데 왠지 불안해하기도 해요.

왜냐고요? 제 집은 어디에나 있거든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인기가 많다고. C들이 절 좋아해주는 한 전 사라지지 않아요.

아, 방금 불법 성인사이트에 집이 새로 생겼네요. 그렇게 다시 태어났어요. 안녕하세요, 다시 인사 드립니다!

◇취재 출처: 경찰청 '불법촬영 검거인원' 통계(2017년), 방송통신위원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디지털장의사),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남형도 기자 human@, 남궁민 기자 serendip15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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