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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양승태 대법 행정처 “사법부가 VIP나 BH 국정운영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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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임종헌 행정처 차장 2015년 작성한

‘상고법원 추진 위한 BH 협상 전략’

국정운영 뒷받침한 재판 사례 나열

“민사상 불법 아냐” 긴급조치 판결

과거사 국가배상 소멸시효 후퇴

체불 통상임금은 ‘신의칙’으로 청구 막고

KTX 비정규직은 “코레일 정규직 아냐”

쌍용차 정리해고 부당 판결 깨고

철도노조 파업에 ‘업무방해’ 형사 책임



한겨레

2014년 7월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제재판소 주요인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박 대통령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청와대 사진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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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동안 사법부가 VIP(박근혜 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

2015년 11월19일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 쓴 문장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한 임종헌 차장이 “정부에 우호적인 판결이 있도록 협력해왔고 비우호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조율하였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25일 공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양 대법원장의 행정처가 양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 흔적”들이 다수 발견된다. 사법부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103조를 스스로 훼손한 셈이다.

임 전 차장이 작성한 이 문건은 19대 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이 상고법원을 확고하게 반대하자 ‘특단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작성됐다. 특단의 전기 중 하나로 “BH 국정운영 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 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 표명”이라는 청와대 ‘압박카드’가 언급됐다.

한겨레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먼저 ‘협조 사례’로 “①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국가배상 제한 등), ②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석기, 원세훈, 김기종 사건 등), ③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판결(통상임금,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키코 사건 등), ④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 정리해고,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⑤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등”을 나열하고는 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VIP와 BH에 힘을 보태 왔다”고 평가했다. 특조단은 이 협조 사례의 자세한 내용이 담긴 2015년 7월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 자료’도 공개했다.

이 자료를 보면 먼저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가족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국가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거나 액수를 깎아 사회정의 실현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과거사 관련 대법원 판결을 “진정한 화해와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해결책”으로 소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2013년 5월 대법관 만장일치로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멸시효 기간이 ‘진실·화해를 위한 결정일로부터 3년’을 넘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국가의 진실규명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피해자들에게 “너무 늦게 재판을 제기했다”고 탓하며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외면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8대5 의견으로 2015년 1월 보상금·생활지원금을 받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재판상 화해’가 성립돼 국가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관 5명은 반대의견으로 “유죄판결 취소로 새로 밝혀진 억울한 복역 등으로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공평과 정의의 관념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2015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 없다”며 모든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을 차단한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 판결도 빠지지 않았다.

‘노동자에게는 엄격하고 기업에는 관대했다’는 비판을 받은 양승태 대법원장 때 대법원의 판결들도 그대로 ‘국정운영 뒷받침’ 판결로 소개됐다.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 사례로 소개된 ‘통상임금’ 사건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면서도 체불임금 요구에 대해서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고했다. 반대의견을 낸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근로기준법의 강행 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 문건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단순히 포함시킬 경우 우리 경제 전체가 안게 될 부담(약 38조원으로 추산됨)을 최대한 고려하여 노사 양측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적절한 결론을 제시함”, “공개변론 중계방송을 통해 그러한 결론이 최소한의 혼란 속에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임”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전합 판결 뒤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통상임금 소송은 계속되고 있고, 신의칙 해당 여부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려 되레 큰 혼란만 낳았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파업에 유독 엄격했던 판결들도 “4대 부분 개혁 중 가장 시급한 부분은 노동 부문→노동 부문의 선진화와 노동 생산성의 향상을 위하여 필수적인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 관계의 정립을 위하여 노력”했다며 등장했다. 2014년 8월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는 노동3권 보장을 위해 파업 노동자들의 업무방해죄 적용을 까다롭게 했던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와 달리 철도노조 파업 참가자들의 업무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깼다. 2014년 11월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가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원심을 깨고 정당한 정리해고라고 본 판결이나, 2015년 2월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가 케이티엑스(KTX) 승무원이 철도공사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본 판결도 노동계의 비판을 받았다. 정리해고된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 여럿이 자살이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1심에서 승소했다 대법 패소 판결로 부당해고로 인정돼 받은 월급을 이자까지 붙여 다시 돌려줘야 했던 부담 속에 한 케이티엑스 승무원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교조 관련 판결은 “4대 부문 개혁 (중 교육 부문의) 취지를 뒷받침하는 방향을 모색”했다며 제시됐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015년 6월 “법원 판결 때까지 법원 재항고 노조 처분 집행을 중단해달라”는 전교조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특히 전교조 집행정지 사건은 특히 전교조의 집행정지 사건에 대해 행정처는 별도의 문건에서 판결·상고법원 추진과의 이해득실, 결정 시점을 면밀히 따졌다. 정다주 당시 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현 울산지법 부장판사)은 2014년 12월 임종헌 기조실장의 지시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라는 문건을 작성·보고했다.

문건을 보면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민중기)가 2014년 9월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효력 정지 신청을 인용하자 행정처는 “크게 불만을 표시. 비정상적 행태로 규정. 사법 관련 최대 현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만일 재항고가 기각될 경우 대법원의 각종 중점 추진 사업에 대한 견제·방해가 예상됨”이라고 청와대 입장을 분석했다. 이어 행정처는 “대법원의 최대 현안은 상고법원 입법추진→이에 대한 BH를 비롯한 각계 협조·지원이 절실”하다며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인용 결정은 양측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재항고 기각은 양측에 손해가 될 것이고, 재항고 인용은 양측에 모두 이득이 될 것”이라고 결론 내린 행정처는 ‘결정 시점’까지 치밀하게 고려했다. 이들은 “대법원의 이득을 최대화할 시점에 관한 분석 필요”하다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결정일과 연결시켰다. 문건을 보면 “사법 관련 최대 현안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헌재의 통진당 위헌 정당 해산심판 사건과 상관관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결정 전에 선고하면 “대법원이 긍정적 이미지가 부각”되고, 결정 뒤에 선고하면 “아무런 주목을 받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을 정지한 원심을 2015년 6월3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10부(재판장 김명수)는 같은 해 11월 다시 전교조의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문건은 마지막에 ‘협조요청 사항’으로 “BH가 대법원을 국정운영의 동반자·파트너로 높이 평가하게 될 경우 긍정적인 반대급부로 요청할만한 사안”이라며 △상고법원 입법추진 협조 △대법관 임명 제청 협조 △재외공관법관 파견 협조 등을 나열했다. 재판으로 양 대법원장의 ‘현안’을 맞바꾸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행정처는 재판 당사자들의 고통이 아니라 상고법원 입법 여부에 관심이 있었다. 임 차장은 이 사건들을 나열한 뒤 “사법부 최대 현안이자,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한 상고법원 추진이 BH의 비협조로 인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어 이런 고지가 “단호한 어조와 분위기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일정 정도의 심리적 압박은 가할 수 있을 것”, “(상고법원 좌절로) 사법부 및 국민 전체가 입게 될 피해와 충격, 그리고 향후 사법부의 결연한 의지 등을 여러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사법부의 입장을 계속 호소해 나갈 것임을 경고하여, 심리적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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