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풍계리 폭파 뒤 북핵은 어디로 갈까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했다. 폭파 전 취재진에게 공개한 2번 갱도 출입구 앞에서 북한군(왼쪽)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의 풍계리 지하 핵실험장 폭파 행사가 24일 예정대로 치러졌다. 그러나 줄곧 비교 대상이었던 10년 전 영변 핵단지의 냉각탑 폭파와 마찬가지로, 애초 기대했던 결실을 보지 못하고 ‘미완성의 쇼’로 마무리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행사 직후 다음달 12일 예정됐던 북-미 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하면서,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려던 이번 행사는 사실상 과녁을 잃은 화살 꼴이 됐다.

2008년 6월 영변의 냉각탑 폭파와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는 북한 비핵화의 고빗길에 준비된 이벤트라는 점에선 같다. 북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세계 여론을 대상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외국 언론을 불러 취재를 허용했다. 국내 언론과 미국·중국·러시아 언론 등이 북한이 입국을 허용한 외국 취재진에 포함된 점도 달라진 게 없다. 다만 10년 전엔 일본 언론이 포함됐으나 이번에 일본이 거부되고 대신 영국 언론이 참여한 점이 살짝 흥미로운 변주다.

두 행사 사이엔 차이도 있다. 영변 냉각탑 폭파가 당시 6자회담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기획된 조처였다면, 이번 핵실험장 폭파는 6·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의 자발적인 선행 조처였다. 냉각탑 폭파는 2005년 9·19 공동성명 등 6자회담 합의 이행 과정에서 이뤄졌다.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 및 신고 등을, 미국은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등을 앞두고 있었다. 이들 합의 사안 이행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오랜 침묵을 깨고 며칠 전 북-미 간 신경전의 주역으로 깜짝 등장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제안했고,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받아들여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의 일방적인 결정이다. 북한은 4월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무 대가도 요구 조건도 없었다. 그러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며칠 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핵실험장을 5월 폐쇄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북한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혔고, 북한 외무성은 지난 12일 핵실험장 폐기를 “5월23일부터 25일” 사이에 하겠다는 내용의 공보를 내놓았다.

경위야 어떻든 그럼에도 당시나 지금이나 두 폭파 행사가 북한의 핵능력에 실질적인 제약이 됐거나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선 10년 전 폭파된 냉각탑은 이미 시설도 낡고 일부 부품이 제거돼 사실상 ‘빈껍데기’였다는 비판이 있었다. 냉각탑 폭파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아주 영향을 안 준 것은 아니다. 6자회담은 냉각탑 폭파 뒤 1년도 채 안 된 2009년 초 붕괴했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 합의로 중단했던 영변의 5㎿ 원자로 가동을 재개한 것은 일러야 2013년 4월이다. 6자회담이 파탄난 뒤에도 약 4년 동안이나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는 “냉각탑이 없어져 주변 구룡강의 물을 이용하는 새 냉각시설이 2013년 완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냉각탑 폭파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지연시키는 구실을 했다는 뜻이다.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도 애초 “이미 6차례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더는 쓸 수 없는 시설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북한은 이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3번, 4번 갱도는 언제든 실험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폭파가 복구가 불가능한 완벽한 파괴인지 여부는 당장 알 수 없다. 갱도 내부의 붕괴 정도는 취재진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범위 밖이었다. 완벽한 파괴 여부가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우선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통해 이미 상당한 핵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핵실험장이 초기 핵개발 때처럼 절실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정 필요하면 다시 굴착하면 그만이다. 굴착에 시간이 필요하니 지연의 효과는 있겠지만, 어떻든 북핵은 도로 원점인 셈이다.

박병수 한반도국제에디터석 선임기자 suh@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