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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양승태 대법원, 청와대 관심사건 물밑 조율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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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

“상고법원 도입 비협조 땐 청과 유대관계 유지 명분 없다” 문건

박근혜 정부 입맛 맞춘 재판 사례 나열…법관 성향 분석 파일도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에 협조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 청와대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며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됐다. 재판을 미끼로 대법원이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해석돼 향후 파문이 예상된다. 양승태 대법원은 청와대가 관심을 갖는 판결을 일일이 조사했고, 판결 방향까지 직접 연구했다. 또 대법원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의 성향과 동향, 재산관계 등도 파악해 정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25일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법원행정처 심의관 2명 등의 컴퓨터에 들어 있는 암호파일 1112개를 포함해 총 3만7000여개 파일을 조사했다.

조사단이 해당 파일에서 찾아내 공개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을 보면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이라고 쓰여 있다. 대법원이 대형 사건 재판 시 청와대와 사전에 판결을 조율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문건은 또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이라는 문구와 함께 국가배상 제한 등 과거사 사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통상임금 사건, KTX 승무원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사법부 최대 현안이자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한 상고법원 추진이 BH의 비협조로 인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 단호한 어조와 분위기로 민정수석(당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일정 정도의 심리적 압박은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와 있다. 또 이어 “상고제도 개선 관련 민정수석이 취해 온 그간의 반대 행보, 이로 인해 제도개선 좌절로 사법부 및 국민 전체가 입게 될 피해와 충격, 그리고 향후 사법부의 결연한 의지 등을 여러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사법부의 입장을 계속 호소해 나갈 것임을 경고해 심리적 압박수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돼 있다. 이 문건은 임종헌 전 차장이 2015년 11월19일 작성한 것이다.

조사단이 공개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이라는 또 다른 문건을 보면 대법원이 청와대가 관심을 가지는 재판을 일일이 파악하고 청와대에 협조하겠다는 답변까지 전달한 것으로 돼 있다. 문건을 보면 ‘구체적 접촉·설득 방안’이라는 제목 아래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이름이 기재돼 있고, 그 아래에는 “주요 관심사항 관련 원론적 차원에서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피력”이라고 쓰여 있다. ‘최대 관심사→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의 외교적 해결 노력 중→출국정지 기간 연장처분 집행정지신청 사건의 항고심에 대하여 4·15까지 결정 보류 요청”이라고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 및 대응 방향 검토’라는 문건에서는 성완종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한 사건과 관련한 정치적 의미와 정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조사단은 “청와대와의 협력이나 압박 카드 활용이 실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재판 관여 내지 간섭을 일으키게 할 내용을 작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부적절한 행위”라고 밝혔다.

조사단은 또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파일들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는 헌법이 공정한 재판의 실현을 위해 선언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으로서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밝혔다. 이 같은 문건은 모두 임 전 차장이 직접 작성하거나 임 전 차장의 지시로 법원행정처에 파견됐던 판사들이 작성한 것이라고 조사단은 밝혔다.

<이혜리·박광연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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