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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판사 동향 파악 사실…인사 불이익 자료 못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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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한정수 기자] [the L] '판사 블랙리스트' 3차 조사 결과 발표…특조단, 12시간 넘게 회의 후 김명수 대법원장 보고

머니투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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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특정 성향 판사들의 동향 등을 파악한 사실이 거듭 확인됐다. 또 정권과 관련된 재판을 전후해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교감을 나눴다는 의혹도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다만 비판적 판사들에 조직적으로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을 확인할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3차 조살르 맡은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25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9시50분쯤까지 진행된 회의 끝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같은 보고서는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도 즉시 게재됐다.

특조단은 보고서에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의혹은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뒷조사를 한 파일이 기획조정실 컴퓨터 내에 존재하는지 여부였고, 조사 결과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파일들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비판적 법관들에 대해 리스트를 작성해 그들에 대해 조직적, 체계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부과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과 관련해 특정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인지 여부를 검토한 것이나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 등을 파악했다는 점만으로도 헌법이 공정한 재판의 실현을 위해 선언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으로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조단은 이 같은 의혹에 연루된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에 대해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형사상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기에는 논란이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다만 특조단은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의혹에 관련된 행위자 별로 관여 정도를 정리해 징계청구권자 또는 인사권자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법원행정처는 차모 판사가 2015년 8월 코트넷에 '사실심 충실화 관련 판사 수 대폭 증원과 상고제한 추진 의견'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고 관련한 내용의 칼럼을 한 주간지에 투고하자 그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시해 동향 관련 문건이 작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문건에는 '차 판사가 존경하는 선배, 친한 선·후배 명단을 취합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원행정처가 정권과 관련된 재판에 개입하려 한 정황도 확인됐다.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공작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 공판 이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에는 'BH(청와대)의 최대 관심 현안→선고 전 '항소기각'을 기대하면서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 '법원행정처→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우회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리는 한편 재판 결과에 관하여는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 행정처도 불안해하고 있는 입장임을 알림' 등의 기재가 있었다.

이 밖에 '우병우 민정수석→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 '법원행정처→법무비서관을 통해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함' '상고심 판단이 남아있고 BH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는 국면→발상을 전환하면 이제 대법원이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음' 등의 내용도 발견됐다.

원 전 원장은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사건 관련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건이 파기환송됐고 그는 파기환송심 끝에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다만 특조단은 "상고심 처리 기간, 전원합의체 회부 과정, 배당 과정, 연구관의 보고 과정, 전원합의체 합의 과정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상고심 진행 과정에서 사법행정이 관여했다고 볼 만한 자료나 정황은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특조단은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난 배경으로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법부가 법관들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기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 안주함으로써 관료제적 경향을 더욱 심화시킨 점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주권자인 국민이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을 기대하며 사법부에 부여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장치를 사법부 자신이 부인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그 존재 근거를 붕괴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특조단은 △사법부 관료화 방지책 추진 △사법행정 담당자가 지켜야 할 기준 마련 △재판의 독립이 침해된 경우 이를 시정할 장치 마련 △재판의 독립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등을 제안했다.

지난 2월 발족한 특조단은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이어 세번째로 구성된 기구다. 이번 특조단은 안 처장을 단장으로 노태악 서울북부지법원장, 이성복 전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정재헌 행정처 전산정보관, 구태회 사법연수원 교수, 김흥준 행정처 윤리감사관 등 외부 인사 없이 판사들만 참여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법원행정처가 사법부 개혁을 주제로 한 판사들의 학술대회를 견제·축소하려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지난해 2월 행정처 기획제2심의관으로 발령됐던 이탄희 판사가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이례적으로 복귀한 이유가 밝혀지면서다. 이 판사는 행정처 발령 뒤 당시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서 사법개혁 설문조사를 발표하려던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연기·축소 노력과 인권법연구회 회원 수를 줄이기 위한 행정처의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 정당화를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의혹은 양 대법원장의 행정처가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을 사찰해왔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번졌고, 판사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대법원은 지난해 3월9일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진상조사를 결정했다.

한편 김명수 대법원장은 특조단 보고를 받은 뒤 이날 오전 10시15분쯤 퇴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조사 결과를 면밀하게 잘 살핀 다음 구체적인 입장은 다른 기회에 밝히겠다"고 말했다.

한정수 기자 jeongsu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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