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어 가드닝’에 빠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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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주고 계속 들여다보니“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아요”
천천히 자라는 속도 지켜보며 내 인생의 속도 또한 되찾아
식물세밀화 도감·웹툰 등 인기 책·식물 함께 판매하는 서점도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도어 가드닝’이 올해로 벌써 16년째다. 16년 동안 조금씩 늘려간 화분이 200여개다. 아파트 베란다는 온통 화분들의 차지다. 원예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2012년부터 시작한 블로그 ‘모나코의 초록향기’에는 식물을 키우는 2000여편의 글이 차곡차곡 쌓였다. 구독자 수도 1만5000명 가까이 된다. “이 작은 식물이 시간이 지나서 잘 자라는 모습을 볼 때 너무 기특해요. 또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분갈이를 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요.” 송씨는 혹시라도 식물이 죽을까봐 3일 이상 집을 비우는 일이 없다. 생활에 제약이 되기도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다. 식물을 키우면서 느끼는 기쁨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 식물을 찾는 사람들
“서서히 변화하는 것, 곁에서 볼 때는 바로 확인할 수 없지만 안에서 천천히 작용하며 자라는 과정이 참 매력적이에요.” 손예서씨는 식물의 매력을 ‘속도’에서 찾았다. 패션회사에서 일하던 손씨는 2년 전 서울 영등포구에 식물과 책을 함께 판매하는 서점 ‘오버그린파크’를 열었다. 책은 주로 식물 관련 서적과 문학서적을 판매한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손씨는 빠른 속도의 서울생활과 그보다 빠른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식물과 책,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우고 싶었고,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휴식과 위안을 얻어가기를 바랐다. “풀과 나무가 가득한 지역에서 자랐어요.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셔서 농사도 경험해봤고요. 식물과 가까이 자라다 보니 식물이 가득한 공간에 가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져요.” 매일 식물의 상태를 관찰하고 그 성격에 맞게 관리하는 일은 자신만의 속도를 되찾는 일이기도 했다. “통풍이 중요해 환기에 신경을 많이 써요. 매일 모든 식물 상태를 꼼꼼히 살펴 문제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식물마다 요구하는 빛, 수분, 영양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춰 관리해요. 책은 건조함을 요구하는 식물 곁에 진열해놓고 매일 닦고 있고요.”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반려동물’을 넘어 ‘반려식물’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 실내원예를 뜻하는 ‘인도어 가드닝’은 새로운 유행이다. 지난해 10월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반려식물’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8%가 ‘식물을 키우고 있다’고 답했다. 27%는 현재는 아니지만 과거에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42.1%는 ‘반려식물’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고 했고 현재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74.1%가 ‘주변 사람에게 식물을 키울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식물과 관련한 콘텐츠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출간된 식물세밀화 도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식물을 키우는 내용을 담은 웹툰, 오디오 콘텐츠 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식물세밀화가이자 식물학자인 이소영씨는 “산업화가 되면 될수록 기본적인 것에 관심이 가는 것 같다”며 “식물도 그렇고 세밀화 또한 사진과 달리 수공예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식물 키우기’는 리듬을 찾는 일
식물을 키우는 일은 도시의 삶에서 잃어버린 ‘자연의 리듬’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안난초 작가의 웹툰 <식물생활>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요리하는 것과 식물을 키우는 건 비슷한 일인 것 같아. 어떤 책에서 저자가 지능과 재능, EQ를 8가지로 분류하는데, 식물을 기르는 것과 요리를 하는 게 같은 재능이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 요리를 하려면 제철 재료를 사게 되잖아. 그것처럼 계절마다 나오는 꽃도 종류가 다르고 말이야. 그런 걸 보면 아주 커다란 리듬에 맞추어서 살고 있구나. 땅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그런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이 좋아.” 동백꽃의 개화시기를 가늠해보고 여름이면 밖에 내두었던 화분을 겨울이 되면 다시 안으로 들여놓는 일상의 사소한 행위들은 우리를 자연의 리듬 속으로 안내한다.
방송작가로 일하다 지난 3월 서울 목동에 ‘꽃 피는 책’이라는 식물서점을 낸 김혜정씨는 “식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잃어버린 본능을 되찾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 같다”고 말한다. “고향이 충청도 서산이라 자연에서 얻는 행복이 크다는 걸 알고 자랐죠. 그걸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숲해설가 자격증을 따기도 했어요. 정원사 수업을 들을 때 강사님이 ‘작물을 기르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식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기쁨이 본성이라는 거죠. 화분에 식물을 심고 기르는 것도 넓은 의미의 농사 같아요. 동네에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 꽃이든 채소든 심고 가꾸잖아요.”
■ 식물 키우기는 관계 맺기
식물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막상 식물을 처음 키워보려는 사람들은 식물을 죽일까봐 두렵다. 식물학자 이소영씨는 이 두려움은 식물의 기능만을 소비하려 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한다. 이소영씨는 그의 책 <식물산책>(글항아리)에서 식물을 판매하는 대형 화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말했다. 손님들은 식물을 죽일까봐 두려워하며 잘 안 죽는 식물,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식물을 물으면서 동시에 공기정화 등의 기능이 있는 식물을 찾았다. 그러나 식물에게 기능을 원하는 만큼 식물에 대한 정보도 알고 관심을 두고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손님들의 질문은) 나는 식물에게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지만 식물은 내게 많은 걸 해주길 바란다’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얻은 결론, 오늘날 인간이 식물을 대하는 태도다. 선인장과 같은 다육식물과 틸란드시아 같은 공중식물, 그리고 관엽식물이 인기를 누리는 데는 이러한 심리가 반영돼 있다. ‘나도 식물을 키우고 싶긴 한데 잘 키울 자신은 없고, 물을 줄 시간도 없고…. 하지만 공기에 생기를 더해주고, 공기를 정화해주거나 음이온을 방출하거나 향기를 내뿜는 식물이 있다면 좋겠다.’ 이런 마음에 식물을 소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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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식물의 기능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 알고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출발은 당연하게도 식물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식물의 정확한 정보, 이름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해요. 원산지 정보를 통해서 식물이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찾아볼 수 있거든요. 판매나 유통하시는 분들이 이를 정확히 알아야 해요. 도감으로 그림 맞추기 하는 식으로는 정확한 종을 알기 어려워요.”
김혜정씨도 관심을 기울이면 그만큼 잘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식물도 말은 안 하지만 표현을 다 해요. 손님들은 꼭 일주일에 몇 번 물을 줘야 하냐고 물어봐요. 말씀드리긴 하지만 이런 것보다 목말라 보일 때 주라는 말씀도 드리죠. 관심을 갖고 보면 티가 나거든요. 두려움 없이 애정을 갖고 기르면 된다고 말씀드려요. 오늘 아침엔 동생이 집에서 키우는 나무를 보고 ‘나무가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더라고요. 관심을 갖고 보면 식물이 갖는 메시지, 이야기, 느낌이 보여요. 관심을 쏟으면 쏟은 만큼 식물은 반응합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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