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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알쏭달쏭 부동산 법률상담] 급하다고 내돈들여 집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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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에 결함이 발생했는데, 세입자가 자비를 들여 결함을 수리했다면 관련 비용을 집주인에게 받을 수 있을까. 임대차 관련 법률 상담에 종종 등장하는 질문이다.

이론적으로 접근하면 다음과 같다. 세입자가 집에 살면서 그 집을 보존하거나 수리하는 데 비용을 지출했다면, 그 비용은 '필요비'라고 한다. 세입자가 어떤 비용을 지출했는데 그로 인해 그 집의 객관적 가치가 증가했다면, 그 비용은 '유익비'라고 한다. 필요비와 유익비에 관해 민법이 정한 내용은, 세입자가 필요비를 지출했다면 임대기간 중에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유익비를 지출했을 때는 그로 인한 가치 증가가 임대차 종료 시점에 현존하는 경우에 한해 가치 증가분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이 조항은 필요비와 유익비에 관해 집주인과 세입자가 아무 합의도 하지 않은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조항이다. 따라서 만약 이들 비용을 청구하지 않기로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합의했다면 그 합의는 유효하다.

실제로는 어떨까. 법리가 이와 같으니 필요비와 유익비를 청구하지 않기로 합의한 적이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임차인은 필요비와 유익비를 지출하더라도 임대인에게 상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계약서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그런 합의가 없었던 걸로 안심해도 될까.

부동산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준계약서에는 이런 조항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임대차가 종료되는 경우 임차인은 부동산을 원상 회복해 임대인에게 반환한다'는 조항 말이다. 얼핏 봐서는 통상적인 조항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조항은 세입자 입장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숨은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입자가 필요비와 유익비의 상환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판례는 '건물의 임차인이 임대차 관계 종료 시 건물을 원상으로 복구해 임대인에게 명도하기로 약정한 것은 건물에 지출한 각종 유익비 또는 필요비의 상환청구권을 미리 포기하기로 한 취지의 특약이라고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부동산임대차 계약서에 이 문구가 있다는 것은 세입자가 필요비와 유익비를 미리 포기하기로 집주인과 합의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입자가 이들 비용을 지출했더라도 이를 돌려 달라고 하는 것은 기존 합의 내용에 반하는 주장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그렇다면 세입자는 과연 저 조항의 뜻을 정확히 알고 계약을 체결한 것일까. 달리 표현하면, 세입자는 저 조항대로 계약하면 필요비와 유익비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청구할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을 충분히 듣고 계약을 체결한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객은 계약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실제 부동산 거래 관행은 부동문자로 인쇄된 문구를 계약 현장에서 처음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률 전문가가 아니면 조항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하기도 어렵고, 수정해 달라고 나서기도 어렵다. 표준계약서에 저 조항을 저 내용대로 두는 게 옳으냐 그르냐는 데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설명 의무다.

[공승배 트러스트 부동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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