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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51명이 꾸린 ‘인권 지킴이’ 민변…30년 만에 1185명 ‘푸른숲’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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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5일 창립 30돌 자축행사>

‘인권옹호·민주주의 발전 기여하자’

1988년 정법회·청변 손잡고 결성

시민기본권 지키기 법률 조언하고

‘아스팔트 위 변호사’로 사회 참여

“사회 변화에 귀막지 않고

시민 일상으로 더 들어갈 것”



한겨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창립회원인 백승헌 변호사(왼쪽)와 민변이 창립된 1988년에 태어난 오현정 변호사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 입구에 걸린 현판 앞에 서 있다. 이 현판의 글씨는 한승헌 변호사가 썼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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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월28일 인권변호사 51명이 경기 포천 베어스타운에 모였다. 2년 전 중견 인권변호사들이 결성한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와 87년 대선 뒤 젊은 변호사들이 꾸린 청년변호사회(청변)가 통합을 위해 모인 자리였다. 단체 이름을 정하지 못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고 조영래 변호사가 조용히 일어나 칠판에 적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그때 ‘정법회’와 ‘청년변호사’가 어떻게 뜻을 모은 건가요?”, “인권변호사를 감싸 안는 하나의 울타리, 일종의 우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민변 창립 30돌을 앞둔 지난 21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오현정(30) 변호사가 백승헌(55) 변호사와 대화를 나눴다. 오 변호사는 민변이 만들어진 1988년 태어난 새내기 변호사이고, 백 변호사는 민변 창립 때 25살 막내였다.

아스팔트 인권지킴이

“‘인권침해감시단’이라는 게 있대….”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나갔던 대학생 오현정이 친구한테 들었던 말이다. 당시 창립 20돌을 맞은 민변은 경찰이 쌓은 ‘명박산성’에 가로막힌 집회·시위의 자유와 시민적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법률 조언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민변 회장이던 백 변호사도 ‘인권침해감시단’이라고 적힌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를 지켰다. 경제학을 전공한 오 변호사가 ‘민변’을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 30년 전부터 회칙에 명시된 민변의 목적이다. 백 변호사는 그해 5월 아스팔트 위에서 헌법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두고 시민들과 자유토론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인권침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사후적 대응에서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초기부터 (선제적으로) 나서게 된 거죠. 민변 활동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어요.”

오 변호사는 2015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민변에 가입했다. 이듬해 집회 현장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의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집행이 중단됐을 때 서울대병원을 지키던 시민들과 환호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날 최순실씨 태블릿피시 보도가 나왔어요. 이어진 촛불집회를 보며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생각했어요.”

민변을 떠받치는 15개의 기둥

출범 때 51명이던 민변 회원은 2015년 5월30일 1천명을 넘어섰다. 지금은 1185명이다. 로스쿨 도입 이후 오 변호사처럼 민변 문을 두드리는 청년 변호사들이 많아졌다. 경력 5년 이하 변호사가 340명, 6~10년차가 288명으로 전체 회원의 절반(53%)을 넘을 만큼 젊은 조직이 됐다. “민변 창립 때 우리나라 전체 변호사 수가 1003명이었어요. 지금 민변 회원이 그보다 더 많아진 거죠. 양적으로 성장하다 보니 질적으로도 다양성이 강화됐어요.”(백승헌) “민변이 독자적 가치를 창출한다기보다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흐름에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이 곧 변호사의 존재 이유니까요.”(오현정)

민변 활동은 ‘위원회’ 중심이다. 현재 민변에는 사법, 노동, 여성인권, 환경보전, 과거사청산, 국제통상, 국제연대, 언론, 통일, 미군문제, 민생경제, 교육·청소년 등 15개 위원회가 있다. 민변을 떠받치는 15개의 기둥인 셈이다. 여기에 공익인권변론센터도 별도로 운영된다.

백 변호사는 민변이 사회변화에 발맞춰 소수자인권, 아동인권, 디지털정보 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듯이, 앞으로도 좀 더 구체적인 시민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민변이 (과거에)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권력과 여러 갈등을 감수한 거대담론을 말하는 측면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인권 문제 등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회 변화에 열려 있지 않으면 금방 ‘시대의 요구’에 귀를 막게 될 수 있다”는 게 백 변호사의 생각이다.

‘서른살’ 민변의 생일잔치

“30년을 사이에 둔 오 변호사와 저를 이어주는 공통점이 있다면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입니다. 이 초심을 유지하는 것, 그러면서 변화하는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백 변호사의 말에 오 변호사는 시민의 삶에 더 가까이 가는 민변을 얘기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청년들이 자기 자리 찾는 게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청년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법률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서른살 민변은 25일 저녁 7시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한길로 삼십년’ 자축행사를 연다. 인권변호사 1세대인 한승헌 변호사와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정법회 변호사들과 인연을 맺은 권인숙 명지대 교수(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등이 축사를 한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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