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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지평선] 권력이 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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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한국 노동계의 주축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조다. 노동계 전체로 보면, 극소수 이익집단일 뿐이다. 경제학자 맨서 올슨은 소수 기득권 집단이 정부를 상대로 조직적인 집단행동에 나섬으로써 사회 전체의 부를 갉아먹는다고 했다. 이들이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는 한 난마처럼 얽힌 비정규직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긴 요원하다. 사진은 불법 폭력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확정 받고 수감 중 형기를 반년 가량 남겨두고 21일 가석방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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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표와 김성태. 여당과 제1야당의 원내 사령탑이다. 홍 대표는 민주노총의 산파 역할을 했고, 김 대표는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을 지냈다. 국회 입성 전 줄곧 노동운동을 해온 양대 노총 출신이 원내 1ㆍ2 정당 원내대표가 된 건 사상 처음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의원 16명 중 6명이 노동계 출신이다. 노조위원장 출신인 여당 간사 한정애 의원과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이용득ㆍ장석춘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 전체로 보면 노동계 출신이 23명에 달한다. 어떤 집단보다 정치권 영향력이 막강하다.

▦ 정부와 청와대에도 노동계 인사가 대거 진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1호인 일자리 정책을 총괄하는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은 섬유노조 전문위원 출신인 이목희 전 의원이다. 고용 정책을 책임진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국노총 출신이고, 역시 장관급인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민노당 창당을 주도했던 노동계 핵심 인사다. 최근엔 대학 및 공단 이사장, 공기업 사장 등 정부 산하기관 요직도 접수하고 있다.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경총 상근부회장에 친노동 성향 관료 출신이 임명된 것도 이례적이다.

▦ 홍영표 대표는 1983년 대우자동차 용접공으로 입사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그가 최근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놓고 민주노총 간부와 설전을 벌였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 남짓. 고임금 철밥통으로 불리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가 주력이다. 민주노총 주장대로 정기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지 않으면 연봉 4,000만~5,000만 원인 대기업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는 사례가 생긴다. 홍 대표가 “민주노총이 너무 고집불통이다. 양보할 줄 모른다”고 쏘아붙인 배경이다.

▦ 권위주의 정권에서 노조는 불온단체의 대명사였다. 정당한 요구조차 탄압 받기 일쑤였다. 그러니 노조는 강경투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 인사들을 중용한 것은 과거 지나치게 소외됐던 노동계와 원활히 소통하며 노동ㆍ고용 정책의 균형을 잡겠다는 의미가 크다. 노동 정책의 민감성을 감안해 노동계 반발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양대 노총은 이미 기득권 세력이다. 정규직 노조의 양보 없이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 노동계도 권력에 걸맞은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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