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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나의 정자가 시험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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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기자의 남성 난임 진료체험기…

사회적 편견에 난임 커밍아웃 꺼린 경험도


한겨레21

한 병원 난임 연구소의 모습.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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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결과지에 ‘비뇨기과’가 찍혔다. 왜 비뇨기과인지부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난임이라면 산부인과가 맞지 않나. 아니다. 그것도 적확하진 않다. 혼란스럽다. 궁금증이 발동했다. 누리집에서 검사를 담당했던 전공의를 찾았다. 전립선 질환, 발기부전, 남성과학 등의 논문을 쓴 것으로 돼 있다. 남성 임신은 개인 성생활, 여성 임신은 가족제도의 영역으로 범주가 어긋나 있는 듯했다. ‘남성’과 ‘임신’이라는 단어는 비뇨기과를 제외하면 어디에서도 좀처럼 만나지 않았다.

남성 난임은 개인, 여성의 경우는 가족 전체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남성 난임에서 방점은 난임이 아니라 남성에 찍히는 듯했다. 남성난임클리닉, 남성과학실 등 병원마다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남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 정자은행이라는 표현은 솔직한 편이라고 해야 하나. 불임의학연구실과 같은 학술적(?) 명칭은 드물다. 의학적으로도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인가.

자연스러운 임신은 없다

그래, ‘산부인과’라는 이름부터가 잘못됐다. 여성 질환과 관련된 것은 그에 맡게 따로 배치하고, 임신·출산과 관련된 문제는 남성의 영역과 통합해 묶는 게 맞다. 병원의 명칭부터가 임신은 여성의 몫이라고 전제한다.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잘못됐다.

난임을 진단하기 위해(또는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시행하는 검사명은 거의 같다. ‘정액 채취’다. 다른 창작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명칭은 그렇다 치자. 꼭 그 방법뿐인가 하는 의심은 아무도 안 한 것인지 모르겠다. 주사 채취나 약물 채취 등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법했다. 말기암도 정복하는 의료 기술 수준 아닌가. 그런데 누구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른 방법이 없는지 물었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비슷했다. 채취실에 가셔서 하시면 된다니…. 동문서답이다. 그래, 다른 방법이 있다면, 굳이 건물 한편에 ‘채취실’을 만들어놓지 않았겠지. 여기 한 평이 얼만데.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욕망이 의외의 곳에서 진실을 간파하도록 도운 셈이다.

채취실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남성은 시각적 효과에만 노출돼도 당연히 정자를 배출할 수 있다고, 또는 그게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듯했다. ‘병원’이라는 곳에서 그렇게 쉽게 몸을 판단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사실 이런 문제제기에 한 동료가 “그래야 더 건강한 정자가 나와서 그런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동료 하나는 풋 웃다가 미안하다고 곧바로 사과했다. 사과할 일은 아닌데).

담당(분류), 검사 방법, 명칭 모두 남성 난임을 대하는 태도가 비공식 영역에 있는 듯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왜 할 수밖에 없었냐고? 여성의 검사 과정을 물으니 남성 검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각을 바꿨다. 해야 된다면 잘하자. 아무 일 없는 듯. 물론 이렇게 기사로 쓰게 될 줄은 더더욱 꿈에도 몰랐다.

고백하자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다. 준비가 부족했다. 아예 나의 삶 속에서 그런 모습을 그려보지 못했으니까. 임신과 육아는 더더욱 그랬다. 공부가 부족했으니 그만큼의 편견이 쌓였다. 결혼 생활 중 ‘자연스러운’ 임신이 쉽지 않다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아내만 고생한 셈이다). 정액검사는 의사의 제안이 먼저였다. 검사도 바로 당일 시행하는 게 아니었다. 당분간 술·담배는 피해야 했고, 운동도 심하게 하면 안 된다(그 심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뭐랄까, 의사도 딱히 말하지는 못했다).

채널은 AV 하나뿐

항목에는 금욕도 있다. 사흘 전 금욕, 그렇다고 너무 그 기간이 오래되면 안 된다(4~7일 사이 검사에 임해야 한다). 규칙을 따졌고, 날을 잡아 병원을 찾았다. 병원의 찬 의자에 앉아 옆방에서 들릴락 말락 하는 AV(Adult Video, 성인 영상물) 소리에 묘한 심란함이 느껴졌다. 괜히 다음 차례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졌다.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1, 2, 3번방 앞에 앉아 있는 남성들 모두가 일렬로 앉아 서로에게 무관심한 척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지만, 복잡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오전이었으니, 대부분 일터로 나가야 했을 것이다. 채취실 현관문이 열리고 함께 온 아내들은 예외 없이 돌아서 나갔다. 함께 있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무사히 ‘자료’를 제출했다. 숙제를 다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날 쉬어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다. 정상 출근했다. 일주일 뒤 의사를 만났다.

“기자라고 하셨죠? 오래 앉아 계시죠? 술도 많이 하실 테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따라 웃었지만 속은 쓰렸다. 내 삶이 여지없이 판결 나는 순간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몇 마디 말이 오가고, 의사가 ‘정액 분석’(Semen Analysis)을 손에 들고 던진 말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이 정도면 문제없을 것 같아요”가 귀에 박혔다. 이상했다. 힘든 기억들은 다 사라지고 합격통지서라도 받은 양 혼자 가슴이 뛰었다.

꽤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대로였다. “정액 채취 전 손을 꼭 씻어주세요”라는 주의사항이 문 옆에 붙어 있다. 채취라니.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단어다. “(끝나시면) 벨을 울려주세요” “정확한 확인을 위해 환자 성함과 주민번호 확인을 양해 바랍니다”라는 말도 그대로였다(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조그만 여닫이창을 제끼고 마스크를 쓴 상대에게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말해야 하는 상황은 참 난감했다). 검사대상자 모두 접수 대기 중이어서인지 반쯤 열린 문틈으로 내부가 보였다. 한 평 반 정도의 좁은 방에 큰 1인용 소파가 있고, (텔레비전만큼 큰)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채널 선택권은 없다. 틀자마자 AV가 나올 것이다. 1회용 깔개가 들어 있는 반투명 플라스틱통도 그대로였다. 접수대나 진료실을 비롯해 산부인과 전체에는 여성들만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구석진 그곳에는 두어 명의 남성이 접수 뒤 (채취) 대기 중이었다. 예전보다 꽤 쾌적해진 느낌이었다. 아마 말 그대로 느낌만이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이미 다른 병원으로 옮긴 듯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노력 중’이라고 말하지 말걸

살면서 평생 자기 정자의 능력치를 눈으로 확인하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건강한 정자의 숫자가 얼마나 되고, 운동성이 어떻고, 모양이 어떻다 등을 따지는 경험을 하는 남성이 얼마나 될까. 검사의 무성의함만 아니라면, 그것이 가진 편견의 시선이 사라진다면, 임신을 앞둔(또는 결혼을 앞둔) 남성의 필수 검사 항목으로 자리잡도록 하면 어떨까. 난임이 여성만의 책임이라는 부담이 ‘현실적으로도’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다.

이제 남성 난임은 낯선 단어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7년 자료를 보면, 2016년 남성 난임 환자는 6만1903명으로 2011년보다 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남성 난임 환자 증가율은 여성보다 13배나 높았다. 전문가들은 높아진 증가율에 대해 난임을 유발하는 환경적·신체적 이유보다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임신 성공을 위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난임의 원인으로 남성 쪽 원인을 35%로 잡는다. 남녀 공통 요인까지 합하면 45%에 달한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이 또한 정확하지 않은 수치라는 것을 경험자들은 안다. 딱 절반일 가능성이 높다.

남성의 상당수는 난임 사실을 감춘다. 2014년 한국가족복지학 제46호에 실린 <남성들의 난임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사례연구>에 등장하는 한 40대 대기업 회사원 ㄱ씨는 “자신의 형편을 그대로 말하면 뭔가 결여된 사람처럼 취급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난임을 감췄다고 고백했다. 동시에 논문은 난임 여성들과 가장 밀접하게 상호 작용하는 ‘남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논문은 남성 난임 경험이 △정상성의 박탈과 사회적 소외 △부부 관계 질의 고갈 △대안 모색 과정에서 넓어진 부부 사이의 틈 등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술 사실을 회사나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것이 어려웠다. 실제로 시술을 위한 휴가인 경우에도 시술이라는 사유 대신에 가정사로 공식 보고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이걸(정액) 빼고 회사에 가고, 지금은 떳떳하게 나는 뭐 (난임이기) 땜에 병원에 가서 시술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내가 이상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결혼 후 시간이 많이 지난 것도 아닌데 그걸 굳이 밝히면서 휴가를 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고.”(ㄱ씨)

논문만이 아니다. 내 마음 한구석에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 있다. 회사에서 금주 선언을 한 적이 있다. 고민 끝에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을 알았더라면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의 특성상 술을 먹지 않아도 괜찮겠냐는 걱정과, 걱정하지 말라는 걱정을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금주의 이유로 건강을 들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동료들의 의도치 않은 우스갯소리가 마음을 후볐다. 관련된 반차를 낼 때 휴식을 이유로 해야 했다.

동료들의 무관심이 고맙다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날 것이라고 통보받고는 괜한 피해의식 속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하면 원인은 다른 데 있었지만, 내 다른 허물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절대다수의 동료들의 ‘무관심’에 매번 감사했다. 조언을 해준 동료도 등장했다. 사실 사내에서는 ‘다산’의 상징처럼 알려진 사람이다.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인생은 각자의 그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필자 ‘이름을 밝히길꺼린 한 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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