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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만물상] 진상 승객 혼낸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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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북핵 6자회담 취재하느라 처음 중국에 갔다. 당시 안내인이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관여 말라. 자칫 거꾸로 당한다"고 했다. 그때 중국에 볘관셴스(別管閑事)라는 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남의 일'은 '한가한 일(閑事)'이니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다. 중국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중국에선 옆에서 사람이 맞거나 죽어도 그냥 지켜보는 사건이 많다.

▶이를 고치기 위해 하오런법(好人法)이 2017년 만들어졌다. 2006년 '펑위 사건'이 계기였다. 한 할머니가 버스 정류장에서 쓰러졌지만 다들 나서지 않자 일용직 근로자 펑위씨가 할머니를 도와 병원에 보냈다. 그러나 할머니 쪽은 펑씨 때문에 뼈가 부러졌다며 13만위안(약 2300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중국 1심 법원은 "양측 다 책임 있다"며 펑씨에게 40%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다 피해를 주더라도 책임지지 않도록 하는 하오런법으로 이어졌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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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만이랴. 작년 부산에선 여중생이 300m를 끌려가며 집단 폭행을 당하는 동안 행인들이 보고만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줬다. 대로변에서 20대 남성이 아내를 흉기로 수차례 찌르는데도 지나친 사건, 10대 청소년이 60대를 폭행하는데도 말리지 않은 사건, 택시 기사가 의식 잃고 쓰러졌는데 놔두고 가버린 사건 같은 보도가 잊을 만하면 나온다.

▶방관자 효과라는 게 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기를 주저한다는 현상이다. 1964년 뉴욕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새벽에 35분 동안 칼에 찔리며 죽어가는 걸 38명이 보고도 지나쳤다는 사건에서 비롯돼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52년이 지나 뉴욕타임스의 과장 보도로 판명되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속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김부겸 행안부장관이 지난 20일 KTX 열차에서 승무원을 괴롭히며 객실에서 소란을 일으키던 진상 승객을 꾸짖어 제압한 일이 화제다. 그 승객은 김 장관을 알아보지 못하고 '당신이 뭐냐'고 했다고 한다. 자칫 봉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옳지 않은 일을 보고도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기 십상이다. 장관이라면 더 이런 일에 말려드는 걸 피하려 했을 텐데 그 반대 경우가 발생했으니 화제가 되고 장관 이름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권대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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