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기자의 시각] 드루킹이 거절한 총영사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정지섭 국제부 기자


'화식통(和食通·일본 음식 전문가), 센다이 총영사에'. 지난달 14일 일본 동북 지역 신문 가호쿠신보(河北新報)가 이런 큼지막한 제목과 함께 박용민 새 한국 총영사 부임 소식을 실었다. '일본 음식에 관한 책을 쓴 이색적 경험의 한국 외교관'이라며 주일 한국 대사관 근무 당시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지원 업무를 맡았던 경력도 소개했다.

이 신문은 일주일 전에는 전임인 양계화 총영사의 고별 인터뷰를 싣고 "첫 일본 주재 한국 여성 공관장으로 두 나라의 친선 교류에 힘을 쏟았다"고 평했다. 양 전 총사는 3년 전 센다이 부총영사에서 곧바로 승진 발령을 받았을 때, 아사히신문에도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취임과 이임 동정(動靜)까지 현지의 주목을 받는 자리가 주(駐)센다이 한국 총영사다. 도쿄, 오사카 등 다른 도시에 비해 작고 알려지지 않아 한가할 것 같지만 반대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사망·실종자 1만9000여 명 대부분이 센다이 총영사관 관할 미야기·이와테·후쿠시마 3개 현(縣) 출신이다. 재외 국민 보호에다가 후쿠시마 원전·지진·쓰나미 동향까지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피해 주민 위로와 한국과 인적·물적 교류가 많이 위축된 상처를 보듬는 것도 임무이다.

센다이 총영사관에 특별 행사가 많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지진 피해 지역 청소년들을 수차례 한국으로 초청했고, 2015년에는 국교 정상화 50주년 한·일 전통 의상 패션쇼를 열었다. 양계화 당시 총영사는 일본 전통 의상(기모노)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2013년부터 매년 김장철에 '센다이 배추로 만드는 김치 페스티벌' 행사도 열리고 있다. 지역민들과 함께 현지에 심고 수확해 절인 배추에 김칫소를 버무려 김장을 해 함께 나눈다. 첫 행사 당시 총영사였던 이범연 요르단 대사는 이임 때 미야기현의 '특별 현민장(縣民章)'을 받았다.

이런 센다이 총영사 인사가 다르게 될 뻔한 사연이 최근 '드루킹' 김동원씨의 옥중 서신을 통해 알려졌다. 드루킹은 "김경수 전 의원에게 측근을 일본 대사에 앉혀달라니까, 김 전 의원이 대안으로 오사카 총영사 얘길 했고 다시 '급이 떨어지는' 센다이 총영사 자리를 거론하길래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다"고 서신에서 밝혔다.

이 서신의 진실 여부와 인사를 둘러싼 전말은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 공개만으로 세계 각국 재외 공관에서 묵묵히 일하는 일선 외교관들과 공관 직원들의 사기가 꺾이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 고위층도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재외 공관은 세계 각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며, 정권 획득의 전리품으로 보고 값어치를 매기는 거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지섭 국제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