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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한국만의 자연스러운 슬로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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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지난주 나는 전 세계에서 모인 셰프들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글로벌 스타인 이들은 제주도를 찾아 ‘2018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제주도의 현지 식문화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신선한 현지 식자재만 사용해 맛의 향연을 펼치는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온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시간은 우리 모두가 농장을 방문해 전통적인 된장 제조 과정을 배우고 체험한 어느 오후였다. 셰프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이들에게 한국 음식을 향한 나의 사랑을 설명하는 동안 내가 한국 음식을 그토록 독특하고 흥미롭게 느끼는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셰프들과 함께 메주를 항아리에 담아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1년 이상 발효시키는 전통적인 방식을 지켜보았다. 많은 셰프들이 된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오랜 기간의 자연적인 발효 과정을 매우 흥미로워했다. 나는 이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음식을 사랑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자연스럽다는 점이었다.

중앙일보

비정상의 눈 5/24


오늘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 ‘슬로푸드’는 세계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를 향한 미국의 집착에 반발하며 그 반작용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운동이다.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5분 만에 음식을 제공한다면 미국과 유럽에서의 슬로푸드는 현지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사용해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완성된 음식을 장려한다. 하지만 한국 음식의 근간인 양념은 단지 몇 시간이 아닌 1년 이상의 숙성을 통해 완성된다. 이는 한국 음식이 다른 국가의 슬로푸드보다 훨씬 더 긴 인내의 음식이자 시간의 흐름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이날 셰프들은 된장 발효 과정이 자연 그대로를 따르는 모습에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흐뭇해하기도 했다. 일부는 이 과정을 온도, 습도와 산소 함량을 엄격하게 모니터하고 관리하며 더 높은 통제와 규제가 이루어지는 일본 미소의 발효 과정과 대조해 보였다. 한국 된장은 야외에 놓인 항아리 속에서 변화무쌍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익어간다는 사실이 셰프들에게는 놀라운 점이었다. 또한, 환경의 가변성과 불완전성을 모두 포용하며 통제를 줄인 과정에서 훨씬 대담하고 깊은 맛이 탄생한다는 점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내와 시간의 흐름을 수용하는 모습. 자연을 정확하게 통제하려는 욕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가변성을 받아들이는 모습. 이 두 요소야말로 내가 한국 음식에 사랑에 빠진 이유다. 이들은 비단 음식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예술에서도, 더 나아가 문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는 한국 음식은 물론이요, 한국인의 독특한 지혜와 생활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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