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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주혁을 기리다, 이제 연기가 재미있다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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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이 말하는 범죄영화 ‘독전’

마약 밀매단 소탕 나선 형사 얘기

개성 강한 캐틱터들 충돌 볼만해

지난해 가을 타계한 김주혁의 유작

“류준렬과는 눈빛 하나로 통했다”

중앙일보

영화 ‘독전’의 형사 원호(조진웅 분)는 마약 조직의 정체불명 두목 ‘이선생’을 잡기 위해 말단 조직원 락(류준열 분)과 손을 잡는다. [사진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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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액션물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가장 낯익은 장르 중 하나. 때론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강렬하게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22일 개봉한 ‘독전’(감독 이해영)은 이와 다른 경우다. 뚜렷한 인물 구도와 개성 강한 캐릭터, 빠른 전개와 시각적 화려함 등으로 장르 영화의 오락성을 한껏 내세운다. 중심인물은 거대 마약 조직 두목을 잡으려는 형사 원호(조진웅 분)와 그의 조력자가 되는 말단 조직원 서영락 대리, 일명 락(류준열 분)이다. 문제의 두목은 ‘이선생’으로 불릴 뿐 실명도, 얼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존재. 마침 그가 배후로 의심되는 폭파사건이 벌어지고, 이 일로 어머니를 잃은 락은 원호에게 붙잡혔다 함께 행동하게 된다.

“락이 대사도 없어서 연기하기 힘들 건데 류준열이가 잘했죠.” 개봉 전 미리 만난 조진웅은 원호와 락, 두 캐릭터의 관계를 ‘시선’으로 설명했다. “원호는 유분기 없이 건조한 사람인데 락은 더 건조하거든요. 말을 시키고, 쳐다보게 만들고, 눈을 보기 시작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이 원호에게도 신기한 거예요. 이성도 아닌데.” 폭파사건의 충격 때문인지 락은 처음엔 전혀 말을 안 하는 것은 물론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조진웅은 류준열과의 호흡도 눈으로 설명했다. “서로 눈을 보면 해결이 되니까. 보면 ‘심쿵’까진 아닌데, 느낌이 있어요.”

그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은 이해영 감독”이라고 말했다. 성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은 소년의 성장담 ‘천하장사 마돈나’(이해영·이해준 공동연출), 1930년대가 배경인 미스터리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 등 지금껏 범죄나 액션과는 거리가 멀었던 감독이다. ‘독전’의 원작은 홍콩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 이와 비교하면 ‘독전’은 세트나 액션이 한층 화려해졌다. 연출을 겸한 이해영 감독의 시나리오 역시 ‘이선생’이란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는 등 이야기와 캐릭터의 새로운 각색에 공을 들인 점이 드러난다. 원작을 보지 않았다는 조진웅은 ‘독전’의 연출에 대해 “답이 나와 있는 영화, 시원하게 지지고 볶으면서 달리는 영화인데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섬세한 디테일을 불러내는 걸 보고 왜 이해영 감독이 이 영화를 하는지 알았다”고 했다.

현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로는 더위를 꼽았다. ‘독전’은 지난해 7월초 촬영을 시작했다. “전남 영광 염전에서 찍는데 일하시는 분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도 이 날씨에 이 시간에는 작업 안 한다고. 배우들은 괜찮은데 스태프들이 맥반석처럼 붉어졌어요.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죠.” 영화 속에서 염전의 소금 창고로 위장된 곳은 마약 공장. 여기서 일하는 청각장애인들과 락이 수화로 친밀하게 소통하는 모습, 이를 수화통역사를 동반하고 원호의 수사팀이 지켜보는 모습은 연극적인 색다른 재미를 준다.

그에 앞서 원호 역시 연극적인 상황을 맞는다. 이선생 밑에서 일하는 척 위장한 원호가 중국 등 해외 마약시장의 거물인 한국인 보스 진하림(김주혁 분)을 만나고, 곧바로 진하림인 척 이선생 조직의 중간 보스 박선창(박해준 분)을 만나는 장면은 단연 긴장감이 흐른다. 원호가 상대의 강권으로 마약을 흡입한 직후 발작을 일으키는 연기도 그렇지만, 각기 다른 조직의 두 인물을 모방 아닌 모방을 하며 1인 3역을 하는 듯한 연기가 흥미롭다. 조진웅은 “누구도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는 단서가 가장 큰 힘이었다”며 “원호 스스로 진하림이라고 믿어버리면 가능한 게임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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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진서연과 김주혁. 해외 마약 시장의 거물 커플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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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배우 김주혁은 마약조직 두목일 뿐 아니라 스스로 마약에 취한 듯 폭력과 광기가 넘쳐나는 인물로 진하림을 스크린에 남겨놓았다. “주혁 선배가 ‘독전’과 ‘아르곤’(tvN 드라마)을 같이 찍고 있었어요. 드라마 대본을 보니 칠할이 형님 대사라 힘드시겠다 했는데, 그 때 말씀하신 게 ‘나 이제 연기가 재미있어’. 그래서 더 안타까워요.”

또 다른 두목급 인물 브라이언을 연기한 선배 배우 차승원에 대해선 웃음으로 위로를 받은 일화를 들려줬다. 조진웅이 주연한 영화 ‘대장 김창수’가 지난해 저조한 성적으로 극장에서 막을 내리던 날, ‘독전’ 촬영현장에서다. 조진웅은 차승원의 말투를 흉내 내며 "선배가 ‘왜, 너 왜, 뭐, 너 김창수? 나 고산자’ 하는 바람에 빵 터졌다”고 했다. 2년 전 차승원이 주연한 ‘고산자, 대동여지도’ 역시 흥행 성적이 저조했다.

‘독전’은 이처럼 배우마다 개성 확실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도 강점으로 꼽을만하다. 초반에 치고 빠지는 김성령 역시 출연시간 대비 인상적인 활약을 남긴다. 약점이라면 영화의 반전이 확인되는 후반부의 긴장감이 전만 못하다는 것. 노르웨이의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마지막 대목은 보는 시각에 따라 군더더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종의 열린 결말을 맺기까지, 감독과 사전에 준비한 여러 일에 대한 조진웅의 설명만큼은 흥미진진하게 들렸다.

의아한 것은 마약이 소재인 데다 총기 난사, 신체 절단 등 폭력적인 설정과 장면이 곳곳에 등장하는데도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아니란 점. 영화계 내부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런 내용들이 “제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며 15세이상관람가 등급을 매겼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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