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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단독] 5년 새 2배 늘어난 인권침해 시정 권고…대부분 직장 내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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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인권침해 시정권고 5년새 2배 이상 증가

세계일보

#1. 서울시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던 A씨는 B과장의 폭언과 폭행을 참지 못해 최근 일을 그만뒀다. 업무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A씨는 두차례 재계약을 거쳐 시에서 8년 넘게 근무했다. 그러나 승진을 앞둔 B과장은 임기제라는 B씨의 신분상 약점을 악용해 일을 몰아주고, 자기 뜻대로 업무가 되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박는 등 인격모독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B씨는 “심각한 인격적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B과장이 머리를 세게 때렸다”며 “더 이상은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토로했다.

#2. 서울시 C팀장은 술만 마시면 다음 날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숙취 때문에 오전에 1∼2시간 잠을 자던 C팀장은 결재를 받으러 온 직원들에게 “정신 나간 놈”, “미친 거 아니야?”라고 막말을 하면서 면박을 줬다. 그는 문서 결재판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팀장이 우습냐”고 큰소리치며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결국 참지 못한 직원들은 지난해 7월 서울시 인권담당관을 찾아 인권침해 조사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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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과 관련해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는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의 인권침해 시정권고 건수가 도입 5년 만에 2배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시작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영향으로 성희롱·성폭력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전체 권고 건수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26건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시정권고를 했다. 이는 2013년 시민인권보호관 제도 출범 이래 가장 많은 시정권고를 내린 것으로 5년 만에 11건에서 2배 이상 늘어났다.

시민인권보호관은 시 관할기관이나 시설 등에서 업무와 관련해 인권침해 사실을 조사하는 독립된 기관이다. 인권담당관 소속의 시민인권보호관은 직장 내 인권침해 사건도 조사해 서울시장에게 인사조치와 인권교육 등을 권고하고 이행 여부를 감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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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상사 OUT… 인권침해 적극적으로 신고

2016년 16건이던 시민인권보호관의 시정권고 건수가 1년 만에 60%가량 늘어난 까닭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늘었기 때문이다. 2015년, 2016년 각각 1건에 불과했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한 시정권고는 지난해 6건으로 늘었다.

시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미투 운동과 갑질 문화 개선 노력이 확산하면서 상사로부터 당한 인권침해에 대해 쉬쉬하던 직원들이 용기를 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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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건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모두 상급자와 하급자 또는 연장자와 연하자의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했다. 일부 가해자들은 공개석상에서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한 것뿐만이 아니라 밀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물리적인 위협도 가했다. 한 가해자는 인권침해 조사를 신청한 피해자를 찾아 회유·협박하기도 했다.

상사의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해 시민인권보호관을 찾은 서울시 공무원 D씨는 “제보 후 ‘내부고발자‘, ‘배신자’라는 조직의 불편한 시선이 두렵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가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며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직원들이 참지 말고 인권침해 사건을 공론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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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의 성희롱·성폭력 여전…신분상 약점 악용하기도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시정권고도 여전했다.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시정권고 건수는 2015년과 2016년 5건, 지난해 6건을 기록했다. 인권침해 조사를 신청한 피해자들은 파견직과 임기제 등 정규직이 아니거나 근무 경력이 짧은 젊은 여성 직원들이었다.

시의 한 사업소에서 근무하던 E씨는 준 공무직으로 근무하던 1년 동안 성희롱 피해를 견뎌야만 했다. 공무직 전환을 앞두고 있었기에 공무직인 F씨의 지속적인 성희롱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E씨는 “F씨가 ‘성교육은 남자한테 받아야지’, ‘얘가 해봤는지 안 해봤는지’라는 등의 발언 때문에 매번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공무직으로 전환한 뒤에도 F씨의 성희롱이 이어지자 E씨는 시민인권보호관을 찾아 사건을 접수했다.

시는 지난달 직장 내 성희롱·언어폭력 근절을 위해 가해자에 대한 ‘선 직위해제’ 조치까지 담은 대책을 발표했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9월까지 시정권고 60건 중 57건에 대한 조치가 완료됐다”며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는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그릇된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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