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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LG의인상·상록재단… "베풀며 살아라" 어머니 뜻 평생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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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해온 대기업 오너다. "자기를 속이는 사람은 더 이상 속일 데가 없다"면서 정직을 강조했다. 고인은 물론 LG그룹도 불미스러운 구설에 오른 적이 거의 없었던 것도 고인이 늘 권력과 거리를 두고, 기업 경영에서 '정도(正道)'를 실천한 결과다. "편법·불법을 해야 1등을 할 수 있다면 차라리 1등을 안 하겠다"는 게 고인의 지론이었다.

구 회장은 LG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는 과정에서는 '냉철한 승부사' 기질을 보였지만, 평소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기반한 온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신용을 쌓는 데는 평생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말을 자주 했던 고인은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꼭 지켰다. 공식 행사든 사적 약속이든 늘 20~30분 정도 먼저 도착, 상대방을 기다린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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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승용차가 갓길을 운행하거나 적당히 위반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직원을 아낀 인재 경영은 고인의 철칙 중 하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규모 적자가 났을 때도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면서 인위적 감원을 하지 않았다. 고인이 취임한 뒤 LG그룹에서는 '노사 분규'라는 단어가 생소해졌다. 그는 협력업체 대해 "우리는 '갑을 관계'가 없다"고 선언했다.

권위주의와 담을 쌓고, 검소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대기업 총수에 대한 편견을 바꿨다. 연세대 재학 중에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보병으로 만기 전역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저녁 자리가 늦어지면 운전기사를 먼저 보내고,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하기도 했다. 큰딸 연경씨나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의 결혼식도 가족들만 모여 조촐하게 치렀고, LG 경영진에게도 '작은 결혼식'을 권했다. 신문에 회사 직원들이 부고 내는 것도 금지하고, 협력업체에서는 경조금도 받지 못하게 했다. LG 고위 인사는 "아랫사람 누구에게도 반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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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격식도 싫어했다. 주요 행사에 참석하거나 해외 출장 때 비서는 꼭 필요한 한 명만 수행하도록 했고, 주말에 있는 지인의 경조사 등 개인적인 일을 할 때는 비서 없이 혼자 다녔다. LG그룹이 매년 여는 인재 유치 행사에서 400명이 넘는 참가 학생 모두와 일일이 악수를 하고, '셀카' 요청에도 흔쾌히 응하며 격의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구 회장은 2016년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는 '소신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당시 '앞으로도 (박근혜 정부 때처럼) 명분만 맞으면 정부 요구에 돈을 낼 것이냐'는 국회의원 질문에 "불우이웃을 돕는 일은 앞으로도 지원하겠다"고 했고, '앞으로도 이런 자리(대통령 면담)에 나올 것이냐'는 물음에는 "국회가 입법으로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질문자였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만난 그분은 이 시대의 큰 기업인이었다"고 했다.

고인은 "남들에게 베풀고 살라"는 어머니 고(故) 하정임 여사의 뜻을 평생 실천했다. "국민이나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면서 LG복지재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등 복지·문화·교육 분야 공익재단 이사장 및 대표이사로 사회 공헌 활동에 투자와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은 특히 2015년 "세상이 각박해졌어도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義人)에게 기업은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며 'LG의인상'을 만들었다. 그동안 소방관·경찰관·고교생·크레인 기사·선장 등 72명이 의인상을 받았다. 작년 강원도 철원에서 빗나간 총탄에 아들을 잃고도 "어느 병사가 총을 쐈는지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고 한 아버지나, 2015년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사고를 당한 병사는 사재를 내어 도와줬다.

새와 숲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고인은 "후대에 의미 있는 자연유산을 남기고 싶다"면서 1997년 12월 국내 최초로 환경 전문 공익재단인 LG상록재단을 세웠다. 공익사업으로 경기도 곤지암에 5만여 평 규모의 '화담숲'을 조성해 수목 보전과 연구 지원에 힘썼다. 화담숲의 '화담(和談)'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으로, 구 회장의 아호(雅號)이다. 새 울음을 듣거나 날아가는 모습만 보고도 새 이름을 척척 맞혀 '새 박사'로 통했다. LG 트윈타워 빌딩 집무실에 대형 망원경을 설치해 여의도 밤섬 새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2000년 조류학자들과 함께 국내 최초의 조류도감인 '한국의 새'라는 책도 펴냈다.

전수용 기자(js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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