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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몰카범이 여자라 구속했나" 女 1만명이 거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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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피해자·여성 피의자 '홍대 몰카' 사건 신속 수사… 여성들은 왜 분노하나]

몰카 피해 다수 차지하는 여성들

"구속 수사 이렇게 쉬운지 몰랐다, 性불평등 보여주는 편파 수사"

경찰 "증거 인멸 등 우려 있어 구속한 것… 성차별 없었다"

몰카범 실형선고 30% 미만… 범죄 반복된다는 지적 나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 '분노'를 나타내는 붉은 옷을 입은 여성 1만2000여명이 모였다. 이달 초 발생한 홍익대 몰래카메라 사건 수사가 성(性) 차별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시위였다. 이날 시위는 지난 10일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 '불법 촬영 성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개설되며 공지됐다. 애초 경찰은 참가자가 많아야 500명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 인원의 20배 이상이 몰리며 '여성들의 분노'를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시위대는 이날 행진에서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라서 경찰이 유달리 강경하게 수사했다"며 "불평등한 편파 수사"라고 비판했다. 피해자가 여성일 때는 볼 수 없었던 신속한 수사라는 것이다. 경찰은 홍대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어 남성 혐오 사이트 '워마드'에 유포한 여성 모델 안모(25)씨를 지난 12일 구속했다. 수사 착수 11일 만이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안씨의 주거지를 압수 수색하고, 증거 인멸이 이뤄진 PC방 등을 대상으로 현장검증도 했다. 또 워마드 관리자의 인적 사항을 확보하려 미국 구글 본사에 메일 계정에 대한 정보 확인을 요청했다.

여성단체 측은 피의자 안모씨를 구속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 카페에는 "구속 수사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다" "왜 그간 여성이 피해자인 몰카 범죄는 손 놓고 있었냐" 등의 불만이 올라왔다. 몰카 범죄 사건에서 피의자가 구속되는 비율은 지난해 기준 2.2%에 그쳤다. 지난 11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 청원에는 20일 현재 40여만명이 참가했다. 이 청원은 홍대 몰카 수사와 과거 여성이 피해자였던 몰카 사건의 수사 결과를 비교하며 불평등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피해자나 피의자의 성별에 따른 차별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홍대 몰카 사건은 범행 장소, 현장에 있던 사람 등을 곧바로 특정할 수 있어 빠른 수사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당시 수업엔 모델과 학생 등 20여명이 있었고, 외부인 출입이 통제됐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몰카 범죄가 신원이 확실한 사람끼리 모인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피해자의 성별과 관계없이 결과가 빠를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고 했다.

구속 역시 원칙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같은 몰카범이라 하더라도 촬영 대상, 횟수, 유포 여부 등에 따라 구속 수사 여부가 달라진다. 지난해 7월 지하철에서 여성 신체를 휴대폰으로 촬영하다 붙잡힌 현직 판사는 불구속 입건됐다. 현장에서 증거가 확보됐으며 도주 우려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홍대 몰카 사건 피의자 안씨는 증거 인멸을 위해 한강에 휴대폰을 버리고 워마드 측에 활동 기록 삭제를 요청했다. 경찰 수사에서도 수차례 거짓 증언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미 증거 인멸을 시도한 피의자의 경우 범죄 중대성과 관계없이 구속 수사를 피하기 어렵다"며 "가해자와 피해자 성별이 바뀌었어도 구속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로 몰카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다.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수사하더라도, 법원에서 가벼운 형을 선고하면서 범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경찰청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불법 촬영 범죄 검거율은 94.6%나 된다. 그러나 실형을 선고받는 비율은 30% 미만이다. 초범이거나 피해자와 합의하면 실형을 면해주는 경우가 많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몰카 사건의 피해자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고, 피해가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더 신중하고 적극적인 수사와 처벌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양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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