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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SC] 우리들의 열린 공간, 광화문 자박자박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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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커버스토리

조선시대 관아 거리였던 광화문 광장

서울 도심 휴식처·집회장소 자리잡아

부패 권력 끌어내린 촛불혁명의 성지

3년 뒤엔 3.7배로 커져 시민 맞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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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은 서울을 대표하는 중심 광장이다. 광화문과 세종대로 사거리 사이, 왕복 10차선의 세종대로 중앙에 자리잡은 너비 34m, 길이 550m의 광장을 말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소이면서 참여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시민의 힘으로 부패한 권력을 끌어 내렸던 촛불혁명의 성지이기도 하다.

광화문 광장에선 거의 매일 크고 작은 행사와 집회가 벌어진다. 지난 일요일 ‘대한민국 서당문화 한마당’이 열렸고, 그 전 주말엔 평창군이 관광지 홍보를 위해 마련한 ‘올림픽도시 평창으로 오세요’ 행사가 있었다. ‘조양호 일가와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대한항공, 한진 계열사 전·현직 직원과 시민들의 촛불집회도 열렸다. 각양각색의 단체와 개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고 주장하는 상설 홍보·모임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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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야경.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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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본 광화문과 해치상(해태상).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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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여러 가지 깃발이 펄럭이고 천막이 쳐지는 곳이지만, 광화문 광장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 있는 도심 속 시민 휴식처이기도 하다. 질서정연하게 구호 외치는 모습, 나라를 크게 걱정하며 분통 터뜨리는 모습이 두루 구경거리가 된 지 오래인데, 광화문 광장에는 실제로 구경거리가 많다. 광장 좌우엔 왕복 10차선 차로를 오가는 차량들로 붐비고, 곳곳에서 확성기 소리 소란해도 광장 구석구석, 지하 공간 구석구석에 흥미진진한 보고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이 소란스러움과 흥겨움을, 어좌에 앉아 인자한 표정으로 말 걸어오는 세종대왕님과 반성 없는 왜적을 향해 호통 치는 준엄한 표정의 이순신 장군이 함께 한다.

광화문 광장은 본디 ‘육조거리’로 불렸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조선시대 핵심 관아들이 도열해 있던 거리였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아 경복궁 앞에 널찍한 길을 내고 좌우에 이·호·예·병·형·공조의 육조 관아를 배치했다. 관아 주변과 종로 등 대로 주변에는 민가와 상점가가 빼곡하게 자리 잡았었다. 일제강점기에 이뤄진 옛 건물 철거와 도로 확장, 광복 이후 최근까지 급격히 진행된 도심 개발로 궁궐 앞 옛 거리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육조거리 좌우 뒷골목에 일부 옛 흔적들이 발굴된 집 터와 상점 터로, 표석으로 남아 있다. 의정부 터 등 일부 관아 건물 터에서는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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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동상 앞 설명판을 보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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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광화문 광장’이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한 건 지난 달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계획안’을 발표하면서다. 10차선 도로인 세종대로를 왕복 6차로로 줄이고 우회로를 넓혀, 2021년까지 광장을 현재의 3.7배 규모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도로 한가운데 자리 잡은 현재의 광장과 서쪽의 도로를 모두 시민광장으로 만들고, 광화문 앞쪽을 옛 모습대로 복원해 역사 광장을 조성한다는 안이다. 반대 여론도 있다. 광장 일대의 교통 혼잡과 주민 주거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다. 서울시는 여러 의견을 모아 오는 7~8월 세부 계획을 확정하고 새로운 광화문 광장 설계 공모에 들어갈 예정이다. 광화문 광장 인근 청진동 상가의 한 식당 주인은 “교통 문제도 잘 풀어서 광화문 광장이 세계적인 명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봄날도 끝자락이다. 이 봄이 떠나기 전에 서울 한복판 광화문 광장 한번 걸어보자. 걸으면서 이 참에 광장에서 태극기·성조기가 펄럭이는 연유도 알아보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육조거리에 대해 알고 나면 광화문도 경복궁도 종로 거리도 다시 보인다.

광장 주변 거리도 변하고 있다. 외지로 나갔던 광화문 주변 토박이 젊은이들이 돌아와 문화 공간을 내는 등 ‘젊은 광화문 만들기’를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근근이 살아 남고 또 새로 조성된 소공원들은 빌딩 사막 사이의 오아시스로 자리 잡았다. 맛집·멋집 빼곡하게 이어지는 광장 주변 뒷골목엔 돌아보고 더듬어볼 만한 옛 정취도 적잖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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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사연도 많네 - 경복궁 정문 광화문과 광장 변천사


광화문 광장의 역사는 조선왕조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심 관아 거리였고, 광복 뒤 권위주의 시대엔 시민 저항의 공간이었다.

현재 광화문 광장의 모태가 된 육조거리는 조선 건국(1392년) 뒤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1394년) 경복궁을 지으면서(1395년) 함께 만들어졌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황토마루(세종대로 사거리)까지 길 양쪽에 의정부를 비롯해, 이·호·예·병·형·공조 등의 관아 건물이 배치되면서 형성된 거리다.

광화문과 광화문 앞 거리는 온갖 곡절과 수모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본디 한양을 설계했던 정도전은 경복궁 남쪽의 정문에 ‘사정문(四正門)’이란 이름을 붙였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光化門)으로 이름을 바꿨다. ‘임금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궁궐과 관아거리가 초토화되면서 광화문도 불탔고,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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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상 밑 지하의 세종 이야기 전시관 일부.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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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 올해는 세종 즉위 600돌이 되는 해다.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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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들어 일제는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박람회, 1915년)를 개최하는가 하면, 1926년엔 경복궁 안의 일부 건물을 헐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광화문은 경복궁 동쪽으로 옮겼고, 육조거리 이름도 광화문통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왕궁의 위엄은 사라지고, 광화문 앞 거리는 식민지 지배의 중심 공간으로 전락했다. 광복 뒤 권위주의 시대가 이어지면서 세종로 거리, 세종로 광장으로 불리던 거리는 권력 홍보 공간이자, 권력에 저항하는 시위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 거리에서 생일 축하 퍼레이드를 펼치곤 했다. 한국전쟁 때 파괴됐던 광화문은 콘크리트 건물로 원위치 부근에 다시 지어졌고(1968년), 앞 거리엔 초대형 아치가 세워졌다. 아치는 ‘경축, 박정희 대통령 취임’ 따위의 홍보 간판으로 장식됐는데, 이는 전두환 때까지도 온갖 경축·선전 아치 등으로 쓰였다. 이 시기 광화문 앞 거리는 오직 차량을 위한 도로일 뿐 시민을 위한 거리는 아니었다. 광화문 앞에서 서울역 앞까지 2.2㎞ 도로에 횡단보도가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중앙청)이 철거됐고, 2006년엔 광화문 광장 조성 계획 발표와 함께 광화문 복원 공사가 시작됐다. 현재의 광화문 광장이 완성된 것은 2009년, 광화문 준공은 2010년이다.

광화문 광장에는 두 위인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1968년 콘크리트 광화문 건립 때 함께 세워졌고, 세종대왕 동상은 2009년 10월9일 한글날에 선보였다. 세종대왕 동상 건립 당시 일부에서 한양과 육조거리를 설계한 정도전의 동상도 세우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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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광화문 앞 좌우엔 커다란 해치상(해태상)이 세워져 있다. ‘해치’는 선과 악, 죄가 있고 없음을 식별할 줄 안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발음이 변하면서 ‘해태’라고도 부른다. 궁궐 앞에 해치상을 설치한 것은 성군을 도와주는 동물로서 왕의 권위를 나타내지만, 오가는 관리들에게 행실을 경계하도록 일깨워주는 구실도 한다. 광화문 앞 해치상은 1867년 경복궁 중건 때 처음 세워졌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광화문 광장

서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 세종대로 한가운데 길게 조성한 광장. 광화문에서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길이 550m·너비 34m 규모. 시민 휴식처, 집회 장소로 이용됨. 조선 건국 뒤 경복궁을 지으며 앞에 조성한 관가, 육조거리(육조대로)가 시초임. 2021년까지 광장 확장 공사가 이뤄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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