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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한국에살며]국제결혼은 나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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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5월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평소 말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달이다. 한국은 가족 중심 사회라고 하지만 요즘은 가정 형태가 많이 바뀐 듯하다. 80세를 넘긴 나의 시어머니께서 그러한 변화를 가장 많이 느끼셨을 것이다. 시어머니께서는 모두 바쁘다고 제사를 1년에 한 번만 합동으로 한다거나 외국인 며느리를 맞이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니께서 급격한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조차 든다.

제한이 많던 여성의 일생이 시대가 발전하며 결혼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생활 스타일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결혼이다. 일단 결혼을 하면 남자도 여자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위치가 형성되므로 결혼 전처럼 자유롭게 무엇이든 결정할 수 없고, 여러 면에서 제한이 생긴다. 이것이 어쩌면 독신주의자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 일지 모른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제결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국제결혼은 국경의 벽을 가족이 돼 쉽게 넘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문화 차이 등 불편한 일이 많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거부할지도 모른다. 나는 외국인이든 자국인이든 결혼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운명적인 만남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일보

요코야마 히데코원어민교사


나의 고향 일본 요코하마에는 ‘빨간 구두’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이 ‘빨간 구두’ 이야기는 실화로, 가난하게 살던 모녀의 엄마가 살기 힘들어 어린 딸을 외국인 선교사의 양녀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아이는 외국에 나가기도 전에 폐렴에 걸려 고아원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하지만 엄마는 죽는 날까지 아이가 외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외국에도 못 가고, 엄마와도 헤어진 채 혼자 쓸쓸하게 죽은 아이의 슬픈 이야기가 전래되면서 동요와 동상도 만들어졌다. 지금 아이의 동상은 바다를 향해 경치 좋은 공원에 세워져 있고, 그 주위는 행복한 가족들의 휴식터가 됐다.

지금 ‘빨간 구두’는 항구도시인 내 고향의 상징이 됐고, 관광상품까지 나와 있다. 매년 개항 기념일 축제 때 동네를 도는 퍼레이드가 있는데, 나는 초등학생 시절 빨간 구두 소녀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소녀 역할을 위해서는 빨간 구두를 신고 드레스를 입어야 했기에 예쁜 치마를 사 달라고 어머니에게 졸라 샀지만 빨간구두는 차마 말 못해 검은색 구두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다보니 보기 흉해 슬피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한국에 온 후 남편이 처음으로 사준 것이 자두색 구두였다. 고향에 있을 때는 빨간 구두의 이야기를 잊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빨간 구두의 운명이 내게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빨간 구두는 구두를 신고 자유롭게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는 자유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운명이라는 틀 안에 한정돼 있는 자유가 아닌가 싶다. 자유로운 세상이 돼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 결정도 운명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가지게 된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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