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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김지석의 화·들·짝] 한반도 ‘분단 극복’의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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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분단의 끝이 보인다는 것은 세 가지 힘이 크게 약해졌다는 말과 동의어다. 우선 체제·이념 대결은 소련의 붕괴 이후 사실상 끝났다. 동아시아 대분단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으나 그 규정력은 예전 같지 않다. 남북 사이 적대감도 과거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 적대감에 관한 한 시간은 평화 쪽에 있다.

한반도가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남은 것은 모순의 강도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이제 그 끝이 보인다. 지금의 한반도가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새 질서의 일차적인 표현은 평화·협력이다. 그 위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폭력과 대결을 끝내고 공존공영하는 세계 체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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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이 사라질 날이 다가온다.

핵 문제가 풀리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휴전선 자리는 통일 때까지 남북 경계선 정도로 유지될 것이다. 전쟁까지 거론된 지난해를 생각하면 꿈같은 상황이지만 긴 시야에서 보면 그렇지가 않다. 분단 극복으로 향하는 동력이 차곡차곡 쌓여왔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분단과 지속에는 세 가지의 큰 힘, 곧 세 가지의 큰 모순이 작용해왔다. 첫째는 지구촌 차원의 체제·이념 대결이다. 냉전 시절 남북한은 체제 대결의 맨 앞에서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전시장 구실을 했다. 휴전선 부근은 지금도 지구촌에서 병력이 가장 밀집한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구도는 남쪽의 고도성장에 기여했다. 반면 냉전 초기에 괜찮았던 북쪽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사회주의권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경제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대비는 긴장 완화 쪽으로 작용하기보다 북쪽의 핵무장 시도를 비롯해 분단 구조를 지속하는 힘이 됐다.

둘째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결을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대분단구조다. ‘미국·일본 대 소련·중국’으로 시작된 대분단구조의 기본 틀은 미-중 수교를 거치면서 미국·일본 대 소련으로 바뀌었다가, 금세기 들어 미국·일본 대 중국이라는 형태로 이어진다. 양쪽 사이에 한반도, 대만,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남중국해 등이 있고, 휴전선은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경계선을 이룬다. 대분단구조와 남북 분단은 서로를 강화하면서 지속돼왔다.

셋째는 남북 사이 적대감이다. 해방 직후의 잠정적 분단과 이념 대결이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것은 한반도 역사에서 엄청난 비극이다. 이로 인한 적대감은 지구적 냉전 체제를 지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북 정권은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적대감을 기본 동력으로 활용했으며, 정치적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생산했다.

분단의 끝이 보인다는 것은 이 세 가지 힘이 크게 약해졌다는 말과 동의어다. 우선 체제·이념 대결은 소련의 붕괴 이후 사실상 끝났다. 국가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중국은 자신을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규정한다.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이념이 아니라 서방국에 대한 자신의 차별성을 강조하려고 이 용어를 쓴다. 중국은 최대 무역국이자 세계의 공장으로서 지구촌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 됐다. 북한이 외치는 ‘사회주의 고수’도 대결보다는 급격한 체제 변화를 경계하는 성격이 강하다.

동아시아 대분단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으나 그 규정력은 예전 같지 않다. 냉전 시절에는 체제·이념 대결과 강력하게 얽혀 있었으나, 이젠 미·일-중 패권 경쟁의 완충 구조로 위상이 바뀌었다. 패권을 다투는 이들은 자신한테 유리한 결과가 확실하지 않은 한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의 동아시아와 같은 장기 패권 경쟁 구도에서는 더 그렇다. 이는 거꾸로 남북한 또는 통일된 한반도가 어떤 위상을 갖느냐에 따라 대분단구조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크게 약해질 수 있음을 뜻한다.

남북 사이 적대감도 과거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전쟁이 끝난 지 65년이 지나 남북 주민 대부분이 전쟁과 관련한 직접 경험에서 벗어나 있다. 남쪽의 경우, 나이 든 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 상당수의 반북 정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북한의 구체적 행태에서 비롯한다. 이런 상대적 적대감은 남북 관계의 수준과 내용에 따라 유동적이다. 2000년 이후 여러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상황이 노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해줬다. 적대감에 관한 한 시간은 평화 쪽에 있다.

세 모순은 분단과 관련한 객관적 조건을 이룬다. 여기에 남쪽의 주체적 여건이 적절하게 작용해 분단 극복으로 가는 동력을 키운다. 이것도 세 가지다.

먼저 북쪽을 압도하는 생산력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본 남북 격차는 45배, 1인당 소득은 22배에 이른다. 북쪽으로선 도저히 경쟁이나 추월을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다. 북쪽이 국방에 자원을 집중하더라도 남쪽을 이기기는 불가능하며, 앞으로 격차는 더 커지기가 쉽다. 북쪽으로선 고된 현상 유지보다 상황 변화를 꾀하는 쪽이 훨씬 낫다.

남쪽의 민주화도 중요하다. 1987년 6월항쟁을 분기점으로 민주화 시대에 접어든 남쪽은 여러 차례의 평화적 정권 교체와 2016~17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민주 역량을 크게 강화했다. 정권의 정당성이 커지면서 상황 변화를 담보할 수 있는 힘이 그만큼 커졌다. 과거에는 정권의 성격에 따라 정책이 뒤집히는 일이 적잖았으나 이제는 다수 국민이 정책의 지속을 뒷받침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전략과 의지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북쪽의 호응을 끌어낸 배경에는 이전 정부의 노력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전향적인 시도가 없었다면 북쪽 정권은 남쪽의 진의를 의심했을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의 임기는 4년이나 남아 있다. 전략과 의지가 관철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이런 주·객관적 여건 변화가 합쳐져서 분단 극복으로 향하는 동력이 증폭된다. 짧으면 1~2년, 길어도 4~5년 안에 세 가지 모순은 새로운 변화를 겪을 것이다.

우선 체제·이념 대결은 완전히 사라진다. 중국이 그렇듯이 북쪽도 사회주의 담론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내용에서는 시장경제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복원 등 남북 경협이 제 궤도에 오르면, 빠른 속도로 한반도 경제권이 만들어질 것이다. 400개에 이르는 북쪽의 장마당이 그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된다.

남북 사이 적대감은 일부 나이 든 세대를 제외하면 없어지거나 중립화할 것이다. 중립화란 정책에 대한 호불호처럼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비판과 지지가 갈린다는 뜻이다. 지금 남북 정권을 주도하는 세력은 평화·협력 원칙을 지켜나가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당장 이런 흐름이 바뀔 만한 변수는 별로 없다. 우려되는 것은 남쪽보다는 북쪽 강경파의 움직임이다. 비핵화의 불안을 덮을 만한 안전보장 조처가 취해지지 않고 경제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예상되지 않으면 일정한 반발이 예상된다. 그 경우에도 평화·협력의 큰 흐름 자체가 뒤집히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은 쉽게 마무리될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동아시아 대분단구조는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한다. 경쟁은 하더라도 적대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갈등을 풀어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가 중심이 되는 동북아 평화협력체가 그래서 긴요하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도 비슷한 틀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대분단구조는 서서히 소멸의 길을 걷거나 불안하지 않은 다극구조로 바뀔 것이다.

근대 이후 한반도에는 세계사의 모순이 집약돼왔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한반도는 지구촌의 마지막 식민지가 됐다. 서구 제국주의의 거대한 힘이 지구촌의 거의 전부를 직접 장악한 뒤 그 축적된 모순이 한반도의 식민지화로 마침표를 찍었다. 일제의 식민 지배는 다른 어느 곳보다 가혹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세계사의 모순이 다시 한번 한반도 땅에 집약됐다. 분단된 남북 주민의 삶은 힘들었고 모순 해결로 향하는 길도 그만큼 험난했다. 같은 분단국이었지만 세 모순이 같은 차원에 있었고 적대감이 적었던 독일은 체제·이념 대결이 끝나는 순간 바로 통일을 이뤘다.

한반도가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남은 것은 모순의 강도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이제 그 끝이 보인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한반도가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한 세기 이상의 세계사가 한반도에 누적시킨 모순의 주술이 풀리고, 그 속에서 생겨나는 새 힘이 세계를 바꿀 것이다. 새 질서의 일차적인 표현은 평화·협력이다. 그 위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폭력과 대결을 끝내고 공존공영하는 세계 체제가 있다.

한반도 분단 극복의 동학은 새로운 세계사의 동학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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