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4 (화)

[오래전 ‘이날’]5월14일 천황이냐 일왕이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래전 ‘이날’]은 1958년부터 2008년까지 매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1998년 5월14일 천황이냐 일왕이냐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년 전 경향신문엔 ‘천황’(天皇)과 ‘일왕’(日王) 사이의 호칭 논란을 다룬 기사가 실렸습니다.

박정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외신기자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천황이 한국 정부의 공식 호칭이냐”는 질문에 “천황이 고유명사인데다 일본인들이 천황이라고 부르는 만큼 우리도 천황이라고 불러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외교통상부는 1989년 재일동포 지문 날인 파문으로 대일감정이 악화됐을 때 언론이 일왕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천황과 일왕의 중간쯤인 ‘일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왔습니다. 결국 5달 뒤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우리 정부는 천황 호칭 사용을 공식화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이 일관적이었던 건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아키히토 일왕과 만나 그를 ‘천황’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임기 말인 2012년 8월엔 독도를 직접 방문해 천황의 사죄를 요구했는데, 이때는 ‘일왕’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한일관계가 냉·온탕을 오가면서 호칭도 그때마다 변했던 겁니다.

한국인들이 천황 호칭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36년 식민 지배를 초래한 천황제 군국주의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천하를 지배하는 황제’라는 뜻의 천황과 실제 일본왕의 위상은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반면 지금의 천황은 정치권력과 관계없는 상징적 존재일 뿐이며, 천황이 일본 특유의 호칭으로 고유명사인 만큼 그대로 불러주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리 못지 않게 일본과 역사적 구원(仇怨) 관계인 중국도 천황 호칭을 사용하고 있고, 일본과 전쟁을 벌였던 미국도 ‘Emperor’라는 공식 표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현재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천황 대신 일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도 지난해 아키히토 퇴위 관련 기사에서 일왕이라고 표기했습니다.

▶관련기사: 일본 ‘헤이세이’ 시대 31년 만에 막...아키히토 일왕 2019년 4월30일 퇴위, 왕세자 5월1일 즉위

한일 협력 공로로 대한민국 수교훈장을 받은 고(故)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은 2015년 한국일보에 실린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왕’(日王)이라는 한자를 볼 때마다 무심코 라면을 떠올리고 만다. 일본 닛신(日淸)식품이 만든 ‘닛신라오(ラ王)’라는 컵라면이 있어 ‘일왕’은 그걸 연상시킨다. ‘라오’는 ‘라면의 왕’이다.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함부로 갖다 붙인 ‘일왕’이란 호칭에 거의 모든 일본인이 모욕당한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틀림없다.”

한일 관계의 개선에 천황 호칭도 꽤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고민하는 이라면 누구나 곱씹게 되는 지점입니다. 다만 한일 관계에는 논리 외적인 부분도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언론과 언중(言衆)의 습관이 바뀌기까지는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1998년 5월14일 나라가 망해도 직업을 잃어도… 무조건 ‘여자 탓’

경향신문

20년 전 경향신문엔 ‘남편의 화풀이 폭력’이 IMF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으로 소개됐습니다.

서울여성의전화 상담 통계를 기반으로 한 기사는 “IMF 후 남편의 아내 구타가 더 심해졌다”고 전합니다. “남편들이 IMF 경제난을 자신의 구타에 대한 합리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겁니다.

‘직장에서 쫓겨난 것도 아내 탓’ ‘다른 부인네처럼 돈 벌어오라’ ‘웃는 얼굴을 잘 짓지 않는다’… 아내를 때리고 의처증 증세를 보이는 이유는 제각각이었으나 모두 터무니없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남자 상사들이 ‘여자들 때문에 나라가 엉망이다’ ‘생계 부담이 없는 여자는 퇴사하라’며 여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푼다는 하소연이 많았습니다.

기사는 “남편의 화풀이 폭력이 늘어난데 반해 좌절에 빠진 남편의 기살리기에도 안간힘을 써야 한다”며 그 시절 여성들의 고충을 전했습니다.

전쟁이 나면 여성과 아동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많은 폭력이 집중된다는 지적처럼, 경제 환란기였던 당시에도 이중·삼중의 굴레가 여성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