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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윤석헌 금감원장, 정치권 휘둘린 금감원 행정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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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 취임식 가진 윤 원장

“잠재 위험엔 선제적 대비

현실화 된 위험엔 엄중 대처

그게 금융감독의 본질”

독립성 방안엔 “현재 틀 내에서”



한겨레

윤석헌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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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을 갖고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수많은 과제에 포획돼 지향점을 상실해선 안 된다.”

윤석헌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취임 일성이다. 원로 학자 출신답게 원칙론에 입각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금감원의 감독 행정을 돌이켜보면 뼈가 담긴 발언이다.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검사 권한을 가진 금감원은 정치권력의 해결사 노릇이나 금융위원회의 손발 구실에만 머무르며 금융감독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윤 원장은 8일 연 취임식에서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는 “잠재 위험이 가시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동시에 현실화된 위험에 엄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금감원이) 오롯이 집행해야 할 ‘금융감독’의 본질”이라고 짚으며, “금융감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감독이 단지 행정의 마무리 수단이 돼서는 안 되며 ‘견제와 균형’을 통해 위험관리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원장은 특히 금감원이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해 발생한 금융감독 실패 사례를 거론하며, 금감원의 정체성을 재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많은 과제에 포획돼 금융감독의 지향점이 상실되면서 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저축은행 사태나 동양그룹 사태와 같은 금융소비자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감원을 둘러싼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로 인해 금융감독 본연의 역할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었고 금감원 또한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시장에 혼선을 초래한 점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윤 원장의 발언은 그의 오랜 소신인 동시에 진보 성향 금융학자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던 내용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금융개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금융정책에 금융감독이 휘둘리는) 현재의 금융감독 체계의 개편이며 금감원의 독립성 확보”라며 윤 원장과 같은 인식을 드러냈다.

다만 윤 원장은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식 뒤 기자들과 만나 ‘독립성 확보 방안’에 대해 “현재의 틀 내에서 최대한 찾아보겠다”고만 말했다. 학자 시절 주장한 ‘금융위원회 해체’를 뼈대로 한 감독체계 개편은 거론하지 않지만, 청와대로부터 최대한 자율성을 확보해 ‘운용의 묘’를 살린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윤 원장은 임명에 앞서 청와대에 금감원의 독립적 운용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윤 원장의 소신은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존중할 것이다. 금융위와도 (상명하달이 아닌) ‘파트너십’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 원장은 “금융감독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당당한 목소리로 소통하겠다”고도 말했다.

금융당국 안팎에선 현 정부가 핵심 금융개혁 과제로 꼽는 재벌개혁과 관련해, 윤 원장이 목소리를 앞세우기보다는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라는 금융감독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삼성생명법’ 개정과 ‘금융그룹 통합감독법’ 제정 등 재벌개혁 과제를 추진하면서 정치적 여론전을 펴기보다는 금융 계열사의 건전성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가치에 무게를 두고 윤 원장이 접근할 것이라는 뜻이다.

일부에선 공직 경험이 없고 학자 출신인 윤 원장이 금감원 수장 역할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금감원의 한 간부는 “금융감독의 현장은 교과서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압력과 업계의 로비, 금감원 직원들의 관성적 태도 등 윤 원장이 앞으로 넘어서야 할 장벽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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