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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생생확대경]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일자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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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집 근처에 단골 국밥집이 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데다 푸짐한 콩나물 국밥이 6000원 밖에 안 했다. 야근 뒤 허기진 배를 달래기도 좋았고, 술 마신 다음 날 속을 풀기도 적당했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 24시간 영업을 중단했다. 일하는 아줌마는 4명에서 3명으로 줄었고, 국밥 가격은 7000원으로 올랐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기존 방식대로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음식점 주인은 설명했다.

정부의 취지는 최저임금을 올려 국밥집 아줌마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줌마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만 줄었고, 심지어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생겼다. 단골 고객들은 예전처럼 24시간 아무 때나 가지도 못하면서 1000원이나 더 주고 국밥을 먹게 됐다.

이 국밥집의 사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최저임금을 16.4%나 올렸다. 소득 주도 성장을 앞당기기 위해 한꺼번에 왕창 올린 것이다. 그러나 그 뒷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인건비에 부담을 느낀 고용주가 직원 수를 줄이자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해고까진 아니더라도 휴게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임금을 사실상 동결하는 경우도 생겼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분은 결국 물가에 반영됐다. 최저임금 인상이 직접 반영되는 가사 도우미료와 공동주택 관리비는 지난달 전년동월 대비 각각 10.8%, 6.8% 올랐다. 국밥집의 사례처럼 최저임금 인상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외식비도 2.7% 올랐다. 생활 물가가 치솟으면서 오히려 실질 소득이 줄어들게 생긴 것이다.

부작용은 올해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올해와 내년에도 10% 중반대의 인상률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미 외식·유통업계에선 급격한 인건비 상승을 피하기 위해 아예 무인 키오스크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 정책이 일자리를 없애고 있는 셈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건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주 52시간 근무를 강제하면 그동안 주 68시간씩 일했던 근로자의 소득은 줄어들 게 뻔하다. 이 역시 소득 주도 성장에 배치되는 결과다. 물가는 오르고 살림은 팍팍한데 소득까지 줄게 생긴 직장인들 사이에선 ‘투잡’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 낳을 부작용은 현장에서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예견돼 왔다. 그런데도 정부만 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얼마 전 만난 국밥집 주인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 경험도, 회사원 생활도, 평생 한 번 안 해본 사람들이 대통령, 총리, 장관 다 하고 있잖아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서 정책을 만드니 이 모양 이 꼴일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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