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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진짜 드루킹’ 멀린이라면 한국 사회에 뭐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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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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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댓글조작 혐의로 구속된 김아무개(필명 드루킹)씨가 공동대표로 있는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출판사의 모습. 파주/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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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친절한데다 귀엽기까지 한 <한겨레> 사회부 정환봉입니다. 오늘은 ‘드루킹’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드루킹’은 매크로를 이용해 포털 뉴스 댓글의 공감 수를 인위적으로 높여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구속된 김아무개(48)씨의 닉네임입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522호 법정에서는 김씨의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재판 시작 1시간 전부터 30여석의 좌석이 다 찼습니다. 대부분 기자들이었고 ‘태극기부대원’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습니다. ‘태극기부대원’들은 재판이 시작되기 10여분 전부터 몰려들었습니다. 이미 법정 안은 꽉 찬 상태라 몇 명만 재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못 들어온 이들이 밖에서 “왜 못 들어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김씨는 크게 긴장하는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김씨의 범죄사실은 평창겨울올림픽 관련 기사 1건의 댓글에 매크로를 썼다는 것이고, 재판에서 이 사실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오히려 긴장했던 것은 검찰 쪽이었습니다. 재판장이 증거 제출을 요구하자 검찰은 현재 분석 중이라 제출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재판장은 “증거 분석도 안 됐는데 기소를 한 건가”라고 질책했습니다. 재판장은 김씨가 사용한 매크로가 뭐냐고 검찰에 물었지만 검찰은 “수사 중에 있어 다음에 설명하겠다”고만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김씨의 변호인이 매크로에 대한 설명을 재판장에게 했습니다. 화가 난 태극기부대원들은 재판이 끝나자 “매크로도 모르며 무슨 재판을 하냐” “진실을 알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재판은 마무리됐습니다. 지금은 기사 하나가 문제가 됐지만, 김씨가 얼마나 더 많은 기사에 매크로 작업을 했는지는 아직 미궁 속에 있습니다. 경찰은 4일에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습니다.

드루킹은 ‘드루이드의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드루이드는 고대 영국에 근거지를 뒀던 켈트족의 제사장을 이릅니다. 왕보다 큰 권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드루이드는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대마법사 ‘멀린’입니다. 멀린은 아서를 태어나게 해 왕위에 올린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아서왕의 나라가 가장 번성했을 때 사랑하던 여자 마법사에게 배신을 당해 유폐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닉네임을 보면 김씨는 드루이드가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씨에게 용을 불러내고 안개를 소환하는 능력이 있을 리는 없습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는 마법을 부릴 수 없었지만 인터넷에서는 가능했습니다. 김씨에게 전설의 명검 ‘엑스칼리버’는 같은 작업을 반복하도록 해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킹크랩’이라는 은어로 불린 서버도 인터넷 댓글 전쟁을 치르는 비밀 무기가 됐습니다.

사실 매크로는 김씨의 독창적인 무기가 아닙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도 매크로는 등장합니다. 국정원의 민간인 협조자인 이아무개씨는 ‘지(G) 매크로’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포털사이트 네이트에서 자기 글의 추천수 등을 늘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여러 기업이나 유명 식당 등도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나 후기를 밀어내기 위해 매크로를 활용하는 홍보업체 등에 의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넷 맛집이 ‘맛없는 집’의 줄임말이 되어버린 것은 이미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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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개된 과정을 보며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여론이 무엇이냐’는 물음입니다. 김씨는 자신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론이 진짜 여론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돈과 힘을 가진 사람이 여론을 왜곡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입니다. ‘드루킹 사건’은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도구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할 때가 왔다는 일종의 경고 신호가 아닐까 합니다.

정환봉 24시팀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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