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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평화원정대] 제국·냉전의 유산 ‘타자라 열차’, 주민 생존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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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잠비아-탄자니아 기차로 5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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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5일(현지시각) 잠비아~탄자니아를 잇는 ‘타자라 열차’가 한 역에 정차하자 현지 주민들이 음식과 물건을 팔기 위해 기차에 몰려들고 있다. 이들에겐 기차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한겨레평화원정대도 이들을 통해 바나나, 사탕수수 등을 구해 맛을 봤다. 다르에스살람/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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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새벽 4시30분. 고요하던 열차 안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떡진 머리, 기름진 얼굴, 팅팅 부은 눈. 달콤한 잠을 빼앗겼다는 불평은 없고 환호성부터 터져 나왔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할 무렵, 목적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했다. 타자라(TAZARA) 열차에서의 58시간은 잊지 못할 고단함이었다.

타자라 열차는 잠비아와 탄자니아를 잇는다. 일주일에 두차례만 운행한다. 화요일은 급행으로 40시간, 금요일은 완행으로 60시간이 걸린다. 물론 이것은 안내된 시간일 뿐 이 열차는 ‘극악의 연착 열차’로 불린다.

유럽이 구리 옮기려 구상한 철도
중국이 건설해 1975년부터 운행

아프리카 경제 견인 기대했지만
자금·운영능력 부족, 운송량 급감
노동자들 임금 넉달 못받아 파업
“표 사지마” 화내 4시간만에 승차

총 1900㎞ 평균시속 60㎞로 달려
정차역 주변 주민들엔 생존 수단
지친 승객들에 과채류·곡식 팔아
작물재배 늘고 교역 활성화 기여


1900㎞ 구간을 시속 60㎞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열차는 더딘 아프리카 경제의 성장을 닮았다. 타자라 철도는 처음엔 유럽의 지배자들이 아프리카 내륙의 광물 구리를 항구로 실어나르기 위해 구상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기 시작하자 유럽은 철도 건설 지원을 외면했고, 미-소 냉전시대에 제3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중국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70년 중국의 기술과 자본이 들어와 철도 건설에 착수했고, 타자라 열차는 1975년 운행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자원을 수탈한 제국주의의 역사와 2차 세계대전 뒤 국제 지형의 변화가 오래된 철도에 아로새겨진 셈이다. 지금도 객차 내 팻말을 보면 중국에서 만들어진 기차라는 국기와 표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잠비아와 탄자니아, 그리고 중국의 기대와 달리 타자라 열차는 아프리카 경제를 이끄는 기관차가 되지 못했다. 운영자금과 철도 운영 능력의 부족은 운송량을 떨어뜨렸다. 한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잠비아와 짐바브웨, 말라위 등이 남아공 대신 탄자니아 쪽 물류통로를 이용하면서 수송수단으로서 타자라 열차의 위상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남아공의 소수 백인 정권이 물러난 뒤 가치도 낮아졌다. 1986년 120만t이었던 타자라 열차의 수송량은 2015년에 8만t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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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새벽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역에 타자라 열차가 도착했다. 한겨레평화원정대는 잠비아 카피리음포시역을 24일 출발했다. 총 이동시간은 58시간 걸렸다. 다르에스살람/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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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4일 타자라 열차를 타기 위해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서 북쪽으로 200㎞, 차로 24시간 거리의 카피리음포시에 도착한 날도 이런 모순이 폭발한 날이었다. 타자라 열차 노동자들은 경영난으로 올 초부터 넉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자 파업에 돌입했다. 표를 사려고 줄을 서자, 노동자들은 ‘협상이 완료되기 전까지 표를 사지 말라’며 화를 냈다. 우리는 4시간 동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기다린 끝에야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예약한 일등석 가족칸 객실에는 4개의 침대가 있었다. 칸마다 화장실과 세면대도 있다. 그러나 이등석부터는 편안함과 거리가 멀었다. 한 칸에 침대가 6개가 있어 허리를 펴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 때문인지 가운데 침대를 접어 아래층 침대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삼등석은 침대 없이 의자에 앉아 긴 시간을 버텨야 한다. 일등석 요금은 1인당 330콰차(잠비아 화폐, 우리돈 약 4만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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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5일(현지시각) 한겨레평화원정대 유덕관(오른쪽), 전종휘 기자가 기차에서 사탕수수를 먹고 있다. 다르에스살람/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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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시간이 넘는 장거리 이동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건 열차가 잠깐씩 정차할 때였다. 열차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이 모두 제공되는데, 아침은 달걀오믈렛, 소시지 2개, 땅콩버터 식빵으로 항상 같았다. 점심과 저녁으로는 아프리카의 주식인 은시마(카사바와 옥수수로 만든 빵)를 곁들여 생선과 쇠고기·닭고기 요리가 나오는데 입에 안 맞아 고역이었다. 이를 안 현지 주민들은 열차가 정차하면 옆으로 찾아와 곡식과 채소를 팔았다. 평화원정대도 순식간에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카사바와 레몬, 사탕수수, 바나나 등을 합쳐 4천원 정도에 샀다. 입맛을 되살리는 오아시스였다.

건설 과정과 성과가 어떻든, 지역 주민들은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 알았다. 타자라 열차 주변에서는 쌀과 채소 같은 돈벌이 작물 재배가 크게 늘었다. 타자라 열차가 고립지역의 교역을 활성화했다는 평가도 있다. 건설부터 운행까지 수십만명이 이 열차를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열차 안에서 만난 한 잠비아인은 “외부에는 이 열차가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요즘은 이 열차를 타는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있다”고 말했다.

평화원정대의 여정은 타자라에 앞서 이미 고행길이었다. 서울~부산이 버스로 5시간이면 닿는 나라 출신이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 탄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요하네스버그를 19시간 동안 달렸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잠비아 루사카까지 가는 ‘샬롬버스’는 무려 38시간에 걸쳐 1800㎞를 달렸다. 한국에서 가져온 여권과 비자를 보고도 짐바브웨 국경검문소는 “몰도바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울창한 숲과 나무, 끝없는 산, 창밖 길 위에는 지금도 비슷한 풍경이 계속 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원정대가 지나치는 아프리카엔 타자라 열차가 바꿔놓은 풍경처럼 다양한 평화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르에스살람/유덕관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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