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김지석의 화·들·짝] 서구 포퓰리즘과 다수파주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2008년 이후의 양상은 또 다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과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에서 보듯이, 자유민주주의의 본거지를 자처해온 서구가 3세대 포퓰리즘의 진원지다. 이주자 문제를 고리로 해 극우세력이 세력을 키우는 곳도, 개방과 개혁이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에 제동을 거는 주체도 서구다.

이들은 민주주의 원칙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수파주의로 한정한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슬람·반이민자 조처에서 보듯이, 다수가 지지한다는 이유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소수의 기본권을 부인하거나 침해하는 결정이 쉽게 이뤄진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대중주의)은 너무나 흔하게 쓰여 그 의미가 너덜너덜해진 용어다. 돈이 들어가는 모든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공격받을 수 있고, 특정 정치인의 높은 지지율 또한 포퓰리즘의 산물로 치부할 수 있다. 정치 경쟁자에게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을 찍어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은폐하려는 행태는 현대 정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흔하다.

하지만 정치 현상으로서 포퓰리즘에는 역사적 진실이 있다. 현대 포퓰리즘의 출발점에는 19세기 말 미국의 인민당(populist party)과 러시아의 나로드니키(인민주의자) 운동이 자리한다. 둘 다 기득권 세력을 믿지 않고 기층 민중을 정치의 중심으로 진입시키려 한 공통점을 갖는다. 대중과 눈높이를 맞춰 직접 호소하는 전략도 일치한다. 이런 모습은 이후 나타난 다양한 포퓰리즘을 관통하는 특성이 된다. 1세대로 부를 수 있는 이 시기 포퓰리즘은 현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는 때에 그 기반을 크게 확장한 점에서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20세기 중반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난 2세대 포퓰리즘은 공보다 과가 더 뚜렷하다. 인종 차별을 극대화한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 홍위병에 기대 문화혁명을 일으킨 중국의 마오쩌둥 정권, 선심성 정책으로 노동자층의 지지를 얻은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포퓰리즘은 서구의 복지국가 민주주의와 대비된다.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지구촌의 공통 규범으로 정착한 반면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부족 또는 일탈로 평가받게 된다. 2003년부터 8년 가까이 집권한 브라질의 룰라 정권은 예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이 정권은 저소득층 가구에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 등을 추진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빈곤율을 크게 떨어뜨리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내는 데 성공한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의 양상은 또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가결에서 보듯이, 자유민주주의의 본거지를 자처해온 서구가 3세대 포퓰리즘의 진원지다. 이주자 문제를 고리로 해 극우세력이 세력을 키우는 곳도 서구이고, 개방과 개혁이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에 제동을 거는 주체도 서구다. 포퓰리즘의 역사적 위상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구조적 요인도 이전보다 폭과 깊이가 커졌음을 시사한다.

지금의 포퓰리즘은 무엇보다 성숙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서구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깃발을 잃는다면 앞으로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느냐는 의문마저 생긴다.

미국의 공공철학·정치제도 전문가인 윌리엄 골스턴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에는 네 가지 개념이 뒤엉켜 있다. 우선 공화주의 원칙(republican principle)이다. 이는 인민 주권을 정통성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민주주의(democracy)로, 모든 시민의 평등과 포괄적인 시민권을 전제로 한다. 이는 다수결 원리에 의한 민주적 통치라는 또 다른 기둥으로 이어지며, 아울러 다수파주의(majoritarianism)의 한계를 규정한다. 시민들이 공공 결정에 영향을 주는 데 필요한 자유와 힘을 유지할 수 없다면 다수파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수파주의는 어떤 사회의 구성원 가운데 다수파가 그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에서 우선권을 갖는다는 정치철학을 말한다. 다수파는 흔히 민족, 언어, 종교, 계층 등의 정체성으로 정의된다.

셋째는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로, 법률에 의한 권력 행사를 공적 생활의 기초로 삼는 것을 이른다. 권력 분립, 견제와 균형, 지방자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자유주의(liberalism)가 있다. 정부가 정당하게 간섭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개인이 제 뜻에 따라 독립적이고 사적인 삶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원칙이다.

요약하면,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시민적 평등주의와 다수파주의 원칙을 융합하고 입헌적 형태를 취하는 공화주의 원칙에 기대는 동시에, 다수파 결정의 일탈에 대한 통제를 비롯해 합법적 공권력이 제한되는 자유주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강화한다.’ 이런 정치 질서는 인류가 이제까지 정치제도에서 이룬 성과를 집약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의 포퓰리즘은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 포퓰리즘은 공화주의의 근간인 인민 주권 원칙을 인정한다. 서구 포퓰리즘 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고 기존 정당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 원칙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수파주의로 한정한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슬람·반이민자 조처에서 보듯이, 다수가 지지한다는 이유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소수의 기본권을 부인하거나 침해하는 결정이 쉽게 이뤄진다.

입헌주의 원칙은 서구 포퓰리즘 세력에게 존중받지 못한다. 이들은 대중의 뜻을 법률의 위에 놓는다. 자유주의 원칙도 자의적으로 적용한다. 자신한테 동의하는 사람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나 소수자의 자유는 제한하거나 공격하려 한다. 되풀이되는 ‘가짜 뉴스’ 타령의 배경에도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있다.

결국 지금의 서구 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의 성과 위에서 탄생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는 이질적이다. 현재의 추세가 좀 더 강해져 선거와 다수파주의만 남는다면 자유민주주의는 그 토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게 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왜 포퓰리즘 추세를 막지 못하고 있을까?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수십년 동안의 신자유주의를 통해 심화하고 2008년 경제위기를 통해 낱낱이 드러난 불평등이다. 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으나 불평등이 완화되는 조짐은 거의 없다. ‘기득권층 대 대중’이라는 구도가 ‘어디든 갈 수 있는 엘리트 대 갈 곳 없는 중하층’이라는 틀로 고착되면서 공동체적 삶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심각한 문화투쟁의 양상을 나타낸다. 종교, 인터넷 매체, 민족(인종) 등도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 구실을 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서구의 모든 포퓰리즘 세력이 공격 대상으로 삼는 이주자 문제는 이런 모순의 집결처다. 쉽게 눈에 띄는 이질적 존재인 이들은 기존 체제에서 발언권이 약하다. 이주자와 관련한 이슈를 부각하면 세계화한 기득권층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 정치적으로도 유용하다.

다수파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취약한 나라에서도 성행한다. 중동 지역의 경우, 과거에는 힘 있는 소수 종파나 종족이 외부 지원을 받아 통치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다수 종파·종족이 주도권을 행사한다. 이들은 소수자에 대한 배제 정책을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집트, 이라크, 이란 등이 모두 그렇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된 이스라엘도 다를 바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보여주는 ‘강한 지도력’의 기본 원리 역시 다수파주의다. 어떤 식으로든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면 다른 원칙은 쉽게 희생되고, 장기 집권도 합리화된다.

유럽연합 회원국인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한 명의 외국인 난민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유럽연합 차원의 인권·노동 기준 등도 거부한다. 그는 최근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이겨 3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그가 내세우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는 다수파주의 포퓰리즘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 포퓰리즘과 다수파주의는 역사의 후퇴임이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속성 해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하고 실천을 통해 강화해나가는 것이 단순하지만 분명한 길이다. 그러면서 불평등을 완화하고 포용성을 높이는 구조적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린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