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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아시아초대석]아름다운 퇴장 김용환,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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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글로벌 개혁 승부
농협생명 체질개선 아쉬워

아시아경제

김용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퇴임식이 지난 26일 열렸다.(사진=NH농협금융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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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조영신 금융부장, 정리=박소연 기자] "할 일은 남았지만 뛰어난 후배가 있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됐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6일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3년 간 맡아왔던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본사에서 열린 퇴임식에는 범(凡)농협의 임직원들이 참석해 김 전 회장의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김 전 회장은 임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덕담을 나눴다. 그는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으면서 행복한 모습으로 정든 농협을 떠났다.

김 전 회장은 최고경영자(CEO)로서 농협금융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1980년 행시 23회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금융권에서 35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해외 네트워크 등을 농협에 전수했다. 김 전 회장은 농협금융지주의 내실을 다지고, 디지털ㆍ글로벌 등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글로벌 부분을 조금 더 내 손으로 돌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후임이 이를 완성할 것"이라며 "리스크, 여신관리, 디지털, 글로벌 부문에서 금융 지주사로서의 이름값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기반은 닦아 놓았기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담담히 퇴임 소회를 밝히던 그는 3년 전 취임 당시를 떠올리자 얼굴이 붉어졌다.

"처음엔 정말 눈 앞이 캄캄하더라"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2015년 4월 회장 취임 당시 농협금융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고 했다. 조선업, 해운업,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에서 대규모 부실이 누적돼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도 껍데기 뿐이었다. 지주사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리스크ㆍ여신 관리 등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할 부분의 경쟁력이 현저히 약했다.

김 전 회장은 "왜 이리 부실이 났나 살펴보니 업이 한창 좋을 때 안 들어가고, 남들 빠져나올 때 들어가고 그랬다"면서 "전체적으로 산업 분석을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당장 박사급 인력으로 산업분석팀부터 꾸렸다. 이들이 800개 업종을 치밀하게 분석하게 했다.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조선ㆍ해운업의 실패를 교훈삼아 산업분석 전담조직을 신설, 리스크관리를 개선했다. 금융지주회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엉성했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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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퇴임식이 지난 26일 열렸다.(사진=NH농협금융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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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1년 간은 시스템 갖추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2016년 5월 큰 결심을 했다. 한 번에 대규모 부실을 털어내기로 맘을 먹은 것이다.

그가 꺼낸 히든 카드는 '빅 배스(Big Bathㆍ과거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것)'였다. 무려 1조7000억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당시 순익으로 보면 농협금융이 4년을 꼬박 벌어야 나오는 돈이다.

김 전 회장은 "성격상 대충이 안된다"면서 "이걸 한 번 크게 털고 가야 농협이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충 감추지 않고, 특별 전담반을 구성해 향후 2~3년 내 부실 가능성까지 샅샅이 파악했다. 그 결과 2016년 상반기에는 2000억원의 적자 오명을 썼지만 하반기에는 5100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순이익은 전년 대비 20% 감소했지만 건전성 지표는 크게 개선됐다.

부실을 털어내자, 그의 시선은 여신심사제도로 향했다. 김 전 회장은 "농협은행의 여신심사가 타 은행들보다 약 보름이 늦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심사가 오래 걸리니 좋은 고객을 다른 곳에서 다 채갔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기로 작성된 과거 여신심사기록이었다. 옛 기록들이 전산화 돼 있지 않고 서류철 그대로 남아있었다. 깜짝 놀란 김 전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는 당시 "도대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말이 안된다"며 당장 표준심사 메뉴얼을 만들어 과거 정보까지 전부 전산화 하도록 지시했다.

김 전 회장은 "요즘은 심사 절차 때문에 좋은 고객을 다른데 뺏기는 일은 없다"면서 "여신심사를 '레벨업' 시킨 것, 그거 하나 만큼은 정말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농협금융의 '미래'를 준비했다. 바로 디지털과 글로벌이다.

우선 IT 시스템 구축 및 입찰과정을 투명하게 했다. 공개입찰을 진행할 때 평가위원장을 내부 사람이 아닌 외부 전문가로 두도록 하고, 준법감시팀도 참여토록 했다.

김 전 회장은 "디지털은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까 꾸준히 보고 받고 관심을 두는 정도로만 했다"면서 "최고경영자가 관심만 줘도 싹이 자라듯이 그 부문이 자생적으로 발전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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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퇴임식이 지난 26일 열렸다.(사진=NH농협금융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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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놓고, 널리 협력한다'.

디지털 부문에서의 농협금융의 기본 철학이 만들어졌다. 농협은행의 API(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를 핀테크 기업에게 개방해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개발토록 했다.

꾸준한 디지털 업그레이드를 통해 농협이 개발한 모바일 플랫폼 '올원뱅크'를 해외로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김 전 회장은 "일반적으로 플랫폼에 가입만 하고 실제로 사용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올원뱅크'는 실사용율이 80%에 가깝다"고 했다.

글로벌 분야는 현재 진행형이다. 농협금융은 해외 진출에서 후발주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과 실물의 융합이라는 농협만의 강점을 살려 아시아와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집중 공략에 나섰다.

중국의 경우 공소그룹 융자 리스 지분투자 이후 합작경영을 지속하고 있고 보험ㆍ은행 합작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미얀마에서는 현지 재계 1위 그룹인 '뚜(HTOO)그룹'과 농기계ㆍ종자 등 실물과 연계한 금융업 진출을 시작했다. 농협파이낸스 미얀마의 소액대출 사업 외연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은 현지 점포와 연계해 은행ㆍ증권 사업을 활성화하고 보험시장 진출도 예정돼 있다. 8개 자회사를 보유한 베트남 최대은행인 '아그리 뱅크(Agri Bank)'와 지난 1월부터 무계좌 송금서비스도 시작했다.

캄보디아는 소액대출회사(MFI) 인수를 통해 교두보를 삼을 예정이다.

김 전 회장은 "동남아 국가들은 외국계 금융사들이 돈만 벌고 나가는 것을 상당히 경계한다"면서 "자국의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농협은 현지 농촌에 농기계ㆍ농업기술 지원 등을 통해 현실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면서 "우리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계열사 중 아픈 손가락이 딱 하나 남았다는 것이다. 바로 농협생명이다.

김 전 회장은 "농협은행이 '빅 배스'를 했듯이 농협생명이 한 번 체질개선을 해야한다. 상품구성, 수수료 체계 등 전체적인 조정이 필요하다"면서 "그것만 하면 농협금융은 건강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 대한 충고로 "변화무쌍한 금융환경 속에서도 농협만의 저력이 분명 있다"고 했다. 이어 "농협이 국내외 '농심(農心)'을 잡아 세계적인 금융회사로 거듭나길 이젠 멀리서 응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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