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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유가족 위로·배려 위해 법정 엄숙주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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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심 재판부 이례적 ‘백서’ 발간

‘세월호 참사’ 재판을 심리했던 1심 재판부가 재판 과정을 189페이지에 걸쳐 꼼꼼히 기록한 백서를 발간했다. 세월호 참사 같은 큰 국가적 재난 사건을 심리하면서 재판부가 느낀 점과 향후 개선이 필요한 사안들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법원이 특정 사건에 대해 백서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백서에서는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들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 재판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1심 재판을 담당했던 광주지법 형사11·13부의 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와 장재용·권노을·임상은 판사, 당시 광주지법 공보관이었던 한지형 판사는 최근 <세월호 사고 관련 제1심 재판 백서>를 발간했다. 이 백서에는 검찰이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을 기소한 때부터 1심 판결을 할 때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재판부의 가장 큰 고민은 유가족이 법정에서 격앙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였다. 재판부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내부에서 준비회의를 하며 대책을 세웠고, 첫 재판이 열리기 전에는 사전 리허설까지 진행했다.

재판부는 유가족들이 슬픔에 찬 나머지 법정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항의를 하더라도 소란행위 발생 시 적용하던 기존 규정대로 퇴정을 명하거나 감치 또는 과태료 조치를 하지 않고, 오히려 유가족들이 응어리진 감정을 법정에서 풀어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심리 도중 유가족에게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고, 법정 앞엔 ‘피해자 의견서’를 비치해 언제든 유가족이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재판부에 제출할 수 있게 했다. 재판장이 발언할 때도 어려운 법률용어를 쉬운 단어로 바꿨다.

특히 증인신문에 앞서 유가족들이 증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별도로 받은 후 재판장이 대신 질문을 하기도 했다. 형사소송법상 피해자가 증인에게 직접 질문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하루아침에 혈육을 떠나보낸 유가족의 애타는 심정에 공감한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궁금한 것을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다는 심정으로 ‘공판조서’에 재판장과 검사, 피고인, 증인의 말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재하게 했다.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을 사상 처음으로 유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수원지법 안산지원으로 중계해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재판부는 한계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구속기간이 6개월에 불과해 일부 피고인은 석방해야만 했다”며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전문적인 조사와 다수의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의 결정에 의해 (6개월보다) 오랜 기간 구속할 수 있는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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