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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ESC] 새우젓 동네 진짜 맛은 뜨끈한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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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의 젖줄 한강은 맛의 이동로

염창동은 소금장수들 마을

마포나루엔 돼지갈비 등 유명

예전엔 뱅어·웅어구이도 별미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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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서울의 역사이자 젖줄이다. 한강은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한반도를 가로질러 굽이치다 금강산에서 내려온 북한강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품고, 서해로 흘러들어가며 그 대장정을 끝낸다. 수량이 풍부하고 지류가 잘 발달되어 있는 한강은 오랜 세월 우리의 식수원이자 농업용수의 공급원이었으며, 수상 교통의 요지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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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 수변무대에서 열린 `제8회 마포나루 새우젓축제'.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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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와서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한강의 위상은 더욱 커졌다. 조선의 관리들은 각 지방에서 거둔 세곡을 한강의 뱃길을 이용해서 운반했다. 세곡뿐 아니라 각지의 특산물과 소비 도시 한양이 필요로 하는 식량, 소금, 목재 등 각종 생필품도 한강 수로를 통해 운송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대동법이 실행되면서 한강을 통한 물동량이 더욱 증가하였고 강변의 여러 나루터는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특히 광나루에서 양화나루까지를 일컫는 경강지역은 전국적인 수상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곳을 근거로 활동하던 경강상인들은 거상이 되어 큰 세력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경강 유역의 나루터 중에서도 마포나루는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곡물이나 소금, 해산물 및 젓갈류 등으로 성시를 이루었는데 그중에서도 새우젓이 많이 거래되어 통칭 ‘새우젓 동네’로 불리기도 했다. 물자의 유통경로로서 한강의 전성기는 강가의 동네 이름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염리동은 소금장수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라 붙은 이름이고 염창동은 소금창고가 있던 곳이라 생긴 동명이며, 광흥창동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양 사람들은 한강을 통해 운반된 소금과 새우젓으로 김치도 담가 먹고 새우젓찌개도 흔히 끓여 먹었는데 그런 관습은 지금까지도 서울음식에 남아 있다.

장터에는 많은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고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요깃거리가 필요했다. 장마당의 음식으로는 맛으로나 효용으로나 탕반을 당할 것이 없다. 그 시절 저잣거리에서 이름을 떨치던 마포의 설렁탕은 지금까지도 지역의 명물로 자취가 남아 있다. 마포 하면 흔히 연상하게 되는 돼지갈비의 유래에 대해서도, 당시 나루를 드나들던 수많은 선박의 안녕을 비는 굿판의 뒤풀이 음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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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 수변무대에서 열린 `제8회 마포나루 새우젓축제'.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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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나루 어시장. 정부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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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통로로 큰 역할을 했지만 그곳에서 잡히는 물고기까지도 옛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했다. 한강 일원에 서식했던 어류야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겠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유난히 많이 받은 것으로는 뱅어와 웅어를 꼽을 수 있다.

뱅어는 몸빛이 백색을 띠고 투명하기 때문에 한자로는 ‘백어’라고 하는데 조선의 원조미식가 허균의 <도문대작>에도 “얼음이 얼 때 경강에서 나는 것이 매우 좋다”고 했다. <난호어목지> 역시 한강에서 나는 뱅어를 최고로 꼽고 있으며, <세종실록>의 지리지에는 겨울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시기에 지금의 가양동 일대에서 잡히는 뱅어를 제일 먼저 나라에 바친다고 기록하고 있다. 웅어 역시 임금님의 밥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생선이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웅어를 ‘도어’라 하고, 속명을 ‘위어’라 하였으며, 빛깔이 희고 맛이 아주 감미로워 횟감으로는 상등품이라 하였다. 웅어는 회도 좋지만 구이나 매운탕, 완자를 만들어 먹어도 좋으며 젓갈을 담가도 맛이 별스럽다.

조선시대에는 행주나루 부근에 궁중의 음식 관련 업무를 맡아보던 사옹원 소속으로 위어소를 두고 웅어를 잡아 왕실에 진상할 정도였다. 이제는 한강에 뱅어도 웅어도 살지 않는다. 공해 때문에 강이 오염되어 없어졌다고도 하고,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설치된 수중보로 인해 물길이 막혀 자취를 감추었다고도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한강에 살고 있는 어류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붕어나 뱀장어, 잉어가 심심치 않게 잡히고 만만치 않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낚시꾼들이 한강으로 몰린다는 보도도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서글픈 것은 강의 높은 중금속 오염도 때문에 그 물고기들이 식용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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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회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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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열린 마포나루굿 재현 장면. <한겨레> 자료 사진


한강이 우리에게 제공한 먹거리는 그것뿐이 아니다. 지금은 집마다 냉장고에 그득해서 발에 차이는 물건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임금님의 하사품으로 고관대작이나 어쩌다 얻을 수 있었던 귀하디귀한 존재, 얼음도 한강에서 채취하던 것이다. 이제 와서 그 자국은 당시 한강에서 캔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하던 빙고가 동빙고동이나 서빙고동이라는 지명에 겨우 남아 있는 정도다. 강은 의구한데 옛날의 물고기들은 모습을 찾을 수 없고, 강물도 옛적의 그 맑은 강물이 아니며 소금배가 다니던 뱃길로는 유람선이 다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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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소망은 강의 오염이 제발 좀 덜해져서 한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에 마포나루 인근에서 빚던 삼해주 한잔을 곁들여 안심하고 푸지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것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겸 음식문화평론가

한강

한강의 <흰>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6년에 <채식주의자>로 같은 부문을 수상한 이후, 한강의 작품이 다시 후보에 오른 것. 또한 한강은 한국의 중부를 가로지르는 큰 강의 이름이다. 사람 이름과 강의 이름, 두 고유명사가 같아서 한강을 통해 한강을 떠올리게 된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과 개발의 역사가 역동적으로 흐르는 한강은 다양한 놀 거리가 있고 문화 행사가 이어지는 시민의 쉼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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