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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아베 흔들리자… 칼 갈던 2인자 이시바, 칼 뽑아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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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총리 1순위로 꼽히는 이시바, 자민당 총재 선거 출사표]

아베와는 역사·외교관 등 정반대

야스쿠니신사 참배 공개 반대하고 과거사 사죄 '무라야마 담화' 옹호

그간 와신상담, 절호의 기회 맞아

아베는 올들어 스캔들 3건 터지며 정권 지지율 브레이크 없이 추락

'포스트 아베' 1순위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1) 전 방위상이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혔다. 23일 일본 민영방송에 출연해 출마하겠다는 뜻을 자신의 입으로 명확하게 밝혔다. 오는 6월 20일 정기국회가 끝난 뒤 공식 발표를 하고, 이후 석 달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겨뤄서 9월에 승부를 보겠다는 로드맵이다.

아베 총리 입장에선 결코 반갑잖은 소식이다. 그만큼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아베는 지난 2월부터 국내 스캔들 세 건이 한꺼번에 터져 정권 지지율이 브레이크 없이 하락 중이다. 지난주 미·일 회담 때 외교적 성과를 거둬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때마침 국내에서 재무성 차관이 여기자들을 상습 성희롱하다 들키는 바람에 "이 정권, 도대체 뭐냐"는 비판이 "아베 잘했다"는 칭찬을 덮어버린 측면도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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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이미 '위험 수역'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내각 지지율이 20%대이면 '위험수역'으로 보고 20%로 떨어지면 총리가 물러났다. 그런데 최근 한 민방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 지지율이 27%까지 주저앉았다(NNN방송 16일 조사). 아사히(31%)·마이니치(30%)·요미우리(39%)·NHK(38%) 조사에서도 매달 뚝뚝 떨어지는 추세다. 아베 입장에서 보면 이시바가 '하필' 이때 출사표를 던졌다.

이시바는 정치 인생을 통해 여러 차례 아베와 겨뤄왔다. 시작은 2012년 9월 총재 선거였다. 전체 당원 투표에선 이시바가 아베를 199대141로 눌렀지만 의원들만 참여한 결선에서는 아베가 이시바를 108대89로 역전했다. 이시바 입장에선 다 이기고 총리 자리를 뺏긴 셈이다.

이시바의 당내 입지가 아베만 못했던 게 원인이었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의 외손자로 태어나 한 번도 자민당을 떠난 적 없는 아베와 달리 이시바는 한때 자민당 주류에 반발해 탈당도 하고 파벌 탈퇴도 했다.

아베는 총리 관저에 입성한 뒤 이시바에게 3년 반 동안 '지방창생상'이라는 특임 각료 자리를 맡겼다. "정권을 비판하지 못하게 자기 밑에 묶어두고 고삐를 채워두려는 의도였다"고 보는 정치 평론가들이 많다. 3년 뒤 열린 다음 자민당 총재 선거 때는 아베 총리의 기세에 눌려 아예 출마 자체를 못하고, 아베가 '무투표 재선'에 성공할 때 박수만 쳤다.

이 구도가 올 들어 뒤집혔다. 재무성 관리들이 총리 부부가 낀 스캔들을 덮으려고 공문을 조작한 사실이 들통났다. 이어 총리 비서가 지자체 관리들에게 압박을 넣고 다닌 사건, 방위성이 자위대 해외 파견 기록을 줄곧 감춘 사건이 잇달아 터졌다. 차기 총재감을 묻는 NHK 조사에서 아베를 택한 응답자가 계속해서 줄고(31%→24%→23%), 이시바를 꼽은 응답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20%→22%→28%) 결국 역전됐다.

전문가들은 "이시바와 아베는 둘 다 보수 성향이지만 안보관만 빼고 역사관과 외교 노선은 크게 다르다"고 지적한다. 안보관은 둘 다 강성이다. 심지어 이시바가 아베보다 더하다. 이시바는 고이즈미 정권 때 방위상을 하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2012년에는 '군을 보유한다'고 명기한 자민당 개헌안을 만들었다. "유사시 해외 일본인을 구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역사관과 외교 노선은 보다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군부가 폭주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단지 죽었다고 그들이 모두 영령이 되는 거냐"며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일반 전몰자를 기리는 공간에 전범이 합사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익 성향 각료가 과거사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비판하자 "(주변국의) 오해를 사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문제는 당내에 적이 많은 이시바가 과연 아베 총리를 꺾을 만한 힘을 모을 수 있느냐다. 아베 총리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작년 8월 자민당이 도쿄도의회 선거에 참패했을 때도 수많은 정치평론가가 "아베 정권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하지만 두 달 뒤 총선에 압승한 사람은 야당이 아닌 아베였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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