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소송에 휘말린 인도네시아의 검정짧은꼬리원숭이(학명 마카카 니그라) 나루토가 찍은 셀카. [연합뉴스] |
당초 원고인 동물보호단체의 압박에 굴복한 사진작가는 오랜 소송에 지쳐 저작권을 일부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이 이를 가로막고 동물에겐 저작권이 없다는 판결을 다시 내놓았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제9 연방항소법원은 이날 원숭이가 찍은 사진이나 코끼리가 그린 벽화 등과 관련해선 동물에게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1심 판결을 재확인했다.
재판부는 "(현행 저작권법은) 동물에게 저작권법 위반 소송을 제기할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하지 않고 있다"면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인간뿐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에 더해 소송을 제기한 동물보호단체 '동물에 대한 윤리적 처우를 지지하는 사람들'(PETA)이 피고인 영국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의 소송비용을 대신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슬레이터는 2011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을 여행하던 중 당시 6살이던 검정짧은꼬리원숭이 '나루토'에게 카메라를 빼앗겼다. 나루토는 이 카메라로 수백장의 셀카를 찍었고, 이 중 일부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완성도를 지녀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그럼에도나루토와 검정짧은꼬리원숭이들은 아무 혜택도 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PETA는 2015년 이 사진들로 발생한 수익을 나루토를 위해 쓸 수 있도록 PETA를 관리인으로 지정해 달라고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은 2016년 동물은 저작권을 지닐 수 없다며 슬레이터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미 슬레이터는 재판비용 때문에 심각한 생활고에 처한 상태였다.
PETA가 1심 패소에 불복해 항소하자 슬레이터는 결국 작년 9월 수익의 25%를 관련 동물단체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소송 절차를 중단하는 데 합의했다.
동물에게도 인간과 동일한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인 PETA는 이를 통해 동물은 저작권 행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1심 판결을 파기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제9 연방항소법원은 관련 판례를 더욱 명확히 확립할 필요가 있고 "재판절차 중단 합의에 나루토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등 이유로 재판절차 중단 요청을 거부했다.
PETA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제프 커 PETA 법무자문위원은 2심 패소에도 슬레이터와의 합의는 계속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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