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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흡연카페도 담배 꺼!"…'연기'만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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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금연구역 5년새 2배↑, 길거리 무작위 흡연자들 늘어…'풍선효과'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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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낮 12시30분.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옆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들은 담배 한 가치씩 꺼내들고 불을 붙였다. 10명 넘는 직장인들이 뿜는 담배연기가 사방에 흩날렸다. 지나가던 직장인 신모씨(26·비흡연자)는 코를 감싸쥐고 숨을 참은 채 걸음을 재촉했다. 신씨는 "금연구역을 늘리면 뭐하느냐"며 "흡연자들은 어떻게든 피운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금연구역이 늘면서 흡연자들의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흡연자들에게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흡연카페마저 7월부터 금연구역이 된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당구장·스크린골프장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됐다.

문제는 갈 곳을 잃은 일부 흡연자가 아무데서나 담배연기를 흩날리고 있는 것. 비흡연자들이 겪는 '간접흡연' 피해도 커지고 있다. 아예 '흡연부스'를 설치해달라고 흡연자들은 호소하지만 정부와 대다수 지자체는 국제적 추세와 맞지 않다며 선을 긋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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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금연구역' 지정 현황. /자료=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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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금연구역은 지난해 132만4887곳으로 나타났다. 지자체가 조례로 정한 금연구역(10만7777곳)까지 합치면 총 143만2664곳에 달한다.

이는 5년 전인 2013년(66만4992곳)의 2.15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만큼 금연구역이 급증했다. 음식점·카페·제과점·게임방·PC방·만화방 등은 물론이고 지정된 아파트단지의 복도·계단·엘리베이터·지하주차장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최근 들어서는 흡연자들의 보루로 불린 곳들까지 금연구역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구장, 스크린골프장, 체육도장 등 실내체육시설은 지난해 12월3일부터 금연구역이 됐고, 오는 7월부터는 '흡연카페'도 같은 처지가 된다.

하지만 '사면초가'에 놓인 흡연족(族)들의 담배연기는 역설적이게도 더 몰리거나 어디로든 흩날리게 됐다. 담배를 쉽사리 끊을 순 없고, 그나마 담배를 피우던 곳마저 사라지니 길거리 또는 건물 옆 등에서 아무렇게나 피우는 것. 이른바 '풍선효과'(어떤 부분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부분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것)다. 이들 대다수는 금연구역도 아니라서 위법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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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낮 12시10분쯤 한 남성이 서울시청 일대 한 도로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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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23일 낮 12시부터 12시30분까지 서울 중구 일대를 다니며 살펴봤다. 불과 10분 만에 대형빌딩 옆, 편의점 옆, 자전거 거치대, 길거리 등에서 흡연자 30여명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카페 정문 앞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이도 있고, 경찰서 건물 옆에서도 여럿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목격됐다. 담배연기는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날렸다. 간접흡연의 피해는 고스란히 지나가는 행인들의 몫이었다.

이 과정에서 만난 흡연자들은 "금연구역만 늘려 그렇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인 정동훈씨(33)는 "담배를 팔았으면 피울 곳을 마련해줘야지 무턱대고 금지만 하면 어떡하느냐"고 비판하며 "당연히 되는 대로 피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최모씨(31)도 "흡연자들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데, 담배 피울 곳이 없다"며 "흡연장소를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이들의 흡연구역이 실효성도 거두는 것도 일정부분 사실이다. 대표사례로 서울역 8번 출구 인근 도로는 담배 연기가 만연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2016년 12월 흡연부스를 설치한 뒤 길거리 흡연자들이 확연히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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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서울역 8번 출구 인근 좁은 도로는 흡연자들로 북적였었다.(왼쪽) 하지만 이후 중구청이 흡연부스를 신설한 뒤 간접흡연 폐해가 줄었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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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법도 발의돼 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금연구역의 흡연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신 의원은 "현행법은 흡연실 설치가 임의규정이라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흡연자들이 통행로에서 흡연해 간접흡연 피해가 심각하다"며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보건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 관계자는 "한국이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 국가인데, 흡연시설을 확충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며 "일부 지자체에서 흡연부스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은 알지만 좀더 논의해봐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남형도 기자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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