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잔혹한 지도자, 유연한 승부사 … 김정은의 두 얼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정은을 말하다

① 핵 야망과 체제 생존 사이 고민

두 얼굴의 사나이가 온다. 사흘 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마주한다. 북한 핵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비롯한 민족의 명운이 걸린 현안을 숙의할 담판이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한반도의 절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절대 권력을 세습받아 벌써 집권 7년차다. 하지만 우리가 그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서울 핵 불바다와 워싱턴 타격으로 겁박하던 그의 얼굴이 생생한데,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평화와 비핵화를 설파하는 최근 유연한 승부사의 모습은 어색하다. 엇갈리는 정보와 판단은 오히려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야누스(Janus)의 지도자’ 김정은을 해부해 본다.

2010년 9월 28일 평양 대성구역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국가주석 김일성(1994년 심근경색으로 사망)의 시신이 안치된 대리석 건물 앞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수백 명 규모의 노동당과 군부 간부진이 도열했다. 노동당 전원회의 참가자를 위한 기념촬영 자리다. 김정일의 오른편으로 이영호 총참모장이 자리했고, 왼쪽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앉았다. 눈길을 끈 것은 이영호 바로 옆에 두 손을 가지런히 한 채 자리 잡은 인민복 차림의 청년이었다. 당시 나이 26세. 베일에 싸였던 후계자 김정은이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 순간이다.

중앙일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정은의 전격적인 권력 무대 등장은 충격을 던졌다.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3대 세습을 강행할 것인가는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김정일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남측 인사들에게 “내 대(代)에서까지 그게 가능하겠냐”며 연막을 피웠다.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2009년 10월 외신 인터뷰에서 “현 시점에서 후계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북한은 김일성 일가를 의미하는 소위 ‘백두혈통’ 논리를 띄우며 ‘혁명 계승’의 비밀작업을 착착 진행시켰다. 김정은 찬양 가요인 ‘발걸음’이 보급됐고 ‘청년대장 김정은’을 찬양하는 선전포스터와 벽화가 등장했다. 2008년 여름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김정일은 막내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최종 낙점했고 자신만의 통치 노하우를 현장학습을 통해 물려줬다. “믿을 건 핏줄뿐”이란 생각이 작용한 듯하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숨지자 김정은은 절대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었다.

김정은식 통치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였다. 말의 성찬이었고, 진단은 있지만 처방은 따르지 않는 국면이 이어졌다. 속성과외식으로 익힌 리더십은 미숙한 정책과 시행착오를 낳았다.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그는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온몸을 좌우로 흔들며 어색해하던 그의 언급은 미덥지 않았다. 결국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파탄난 민생은 도돌이표를 찍고 있다.

김정은 시대의 전략노선으로 2013년 3월 야심차게 제기한 ‘경제·핵 병진’ 정책은 불과 5년여 만인 지난 20일 운명을 다했다. 김정은이 이날 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언했다”는 게 노동신문의 보도지만 실상은 다르다. 당초 핵보유로 여력이 생긴 국방비를 민생에 돌리겠다는 병진노선의 구상은 헝클어졌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자초했고 북한 경제는 ‘중국’이란 산소호흡기마저 떼인 채 질식상태에 빠졌다.

간부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과 강등·해임은 ‘독재권력의 잔혹한 지도자’란 인식을 안팎에 심어줬다. 전현준 동북아평화연구원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존경받지 못한 바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돼라’는 마키아벨리식 통치술을 그대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12월 이뤄진 고모부 장성택에 대한 ‘반국가 혐의’ 처형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친인척도 무참히 살해하는 인물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남겼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이복형 김정남이 독극물 테러로 살해당했던 게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북한 공작원 소행으로 지목된 것도 마찬가지다.

극도의 호전성을 보여준 김정은의 대남 위협·도발은 우리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부채질했다. 그는 핵을 내세워 공공연히 ‘서울 불바다’를 위협했다. 대남 특수부대의 청와대 타격훈련까지 벌여놓고 “남조선의 사등뼈(척추)를 부러뜨리고 타고 앉으라”고 독려했다. 후계자 시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이 과거 후계 시기 아웅산 테러나 대한항공기 폭파를 자행한 것과 유사한 행보다.

지난 1월 신년사를 계기로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까지 치닫고 있는데도 김정은의 유화 제스처에 대해 찜찜하다거나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과거 행태 때문이다. 염돈재 전 국가정보원 차장은 “남한에서 보수정권이 무너지는 등 북측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다는 판단에 따라 위장 평화공세에 나선 것”이라며 “지난해 말까지 드러내 온 도발적이고 잔혹한 이미지가 김정은의 본 모습에 가까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정은의 과거 행태에 집착하기보다 변화된 태도와 정책노선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긴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호랑이 등에 탄 모양새”라며 “그 조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언적이나마 경제·핵 병진노선에 대해 사실상 포기를 선언하는 등 변화의 모습을 보이는 대목도 분명하다는 얘기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개인의 성향보다는 정치인으로서 김정은이 누구인지에 방점을 두는 게 그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더십을 발휘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김정은 역시 조성된 정세에 맞춰 변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글 싣는 순서>
① 핵 야망과 체제 생존 사이 고민

② 후계 권력 장악한 로열패밀리 막내

③ 문제는 민생, 개혁·개방 할 수 있을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yjlee@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