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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미니다큐] 남북정상회담 기다리는 이산가족 칸트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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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네 번 다녀온 칸트 할아버지의 사연은?



(서울=연합뉴스) 왕지웅 기자 = 황해도 평산이 고향인 이산가족 이상종 할아버지.

어릴 적에 인민군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다가 간신히 도망을 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은 잠시일 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인민군에 차출되면서 지옥 같은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이상종 할아버지는 거짓을 강요하는, 자유가 없는 인민군으로 사는 삶이 죽기보다 싫어 1%의 가능성도 없어 보였던 전쟁터에서의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수십 발의 총알이 머리 위로, 다리 사이로 지나갔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모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하는 데요.

남한으로 도망 처와 자수한 후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던 할아버지는 대한민국 국군으로 다시 한 번 입대를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할아버지가 국군에 입대한 후 훈련이 끝나갈 즈음에 휴전이 선포되고 말았는데요.

전역 후 할아버지는 조금이라도 고향 땅에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고 싶어 동두천에 있는 미군 부대에 자원입대했습니다.

이후 이상종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미군 부대에서 생활하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지만, 고향에 동생을 두고 왔다는 미안함에 평생을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상종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전하는 영상 편지에서 "고향에 있는 광종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네 이름을 불러본다. 풀뿌리라도 먹고 여태까지 살았으면 좀 더 힘내서 오래 살아라. 나도 너 보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오래 살려고 그런다. 억지로라도 오래 살아서 이형 한 번만 꼭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나는 네 이름만 부르면 눈물이 나서 네 이름을 잘 안 부르려고 해. 꼭 억지로라도 오래 살아서 꼭 만나자. 사랑한다. 아우야!"라며 그리움을 전했는데요.

가족과 이웃들에게 칸트 할아버지로 불리며 살아가는 이산가족 이상종 할아버지의 하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촬영·편집 : 이재성, 내래이션 : 송지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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