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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거둘 것이 많은 그의 비범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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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과 용서의 삶에도

독재권력엔 굽히지 않아

극한 상황에도 낙천적 태도

민주인사들 ‘으악새’ 모임서

‘우스갯소리 만발’ 주연


【가신이의 발자취】 ‘50년 친구’ 후농을 떠나보내며

한겨레

1973년 유신 헌법 반대를 외치다 구속된 ‘야당 3총사’. 왼쪽부터 조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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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거둔다’고 할 때, 이 ‘거둔다’는 말에 종식과 수거(收去)의 뜻 외에 수확의 뜻이 겹쳐 있는 것은 예사롭지가 않다. 거두어 가는 것과 거두어 들이는 것이 어떻게 같은 말에 함축되어 있을까? 후농(後農) 김상현의 삶은 이 ‘거둔다’ 안의 상반되는 두 뜻의 동거에 해답을 주는 실증이 되고 있다. 그의 별세에 이은 부음과 추모에서 그 점이 재확인되었다. 그는 삶의 거둠을 통하여 거둘 것이 많은 삶을 보여주었다.

후농에 대해서는 흔히 마당발, 친화력, 타협과 용서라는 말이 따른다. 그의 인성에 이 땅의 정치인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편협과 과격을 초월하는 장점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그냥 무골호인은 아니었다. 그의 도량과 사람냄새는 유화의 표본이었지만 독재권력에 대해서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나는 그와 50년 가까이 형제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의 삶의 특징을 비범, 불굴, 낙천성으로 압축하고 싶다. 고등학교 중퇴의 몸으로 29살에 국회의원이 되어 6선을 한 입지전적 발자취도 비범의 한 자락이다. 흔히 말하는 타협과 용서의 실천 또한 비범에 포괄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불굴의 인간이다. 그 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박정희와 전두환이다. 박정희의 유신 선포에 순응했다면,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던 그가 추석 떡값 때문에 구속될 리가 없었다. 그것도 내무위의 여야 간사가 합의하여 모금 분배한 것인데, 야당 간사인 후농만 당했던 것이다.

또한 10·26 후 그가 전두환의 집권 야욕에 침묵했더라면, 보안사에 끌려가서 피투성이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조작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몰리어 고문과 옥고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불굴이 자초한 수난이었다.

나는 1972년의 야당 의원 탄압 사건에서는 후농의 변호인이었고, 1980년의 이른바 내란음모사건 때에는 남산(당시 중앙정보부) 지하실 바로 옆방에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고 징역을 산 공동피고인 사이였다. 그처럼 인생의 가장 험난한 시기에 서로 밀착해서 살아온 터이기에 그가 적어도 권력에 대해서만은 불굴의 투사였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가 있다.

한겨레

김상현


그는 또한 매사에 ‘낙천성’이라는 정서적 강점을 발휘하며 살아갔다. 그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비관으로 주눅 들지 않는 성품이었다. 그의 유머는 그런 낙천성의 산물로 보였다. 우리는 당시 박 정권의 탄압으로 해직, 추방된 동지들과 ‘으악새’라는 모임을 만들어 자주 만났고, 싸구려 집에서 식사를 하며, 고복수의 ‘으악새’를 단가처럼 떼창하기도 했다. 더러는 야외에도 나가고 테니스도 같이 쳤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침울이라는 것을 모르고(전혀 드러내지 않고?) 즐겁게 떠들곤 했다. 물론 우스갯소리가 만발하기도 했는데, 그 주연은 언제나 후농이었다.

“한승헌 변호사가 변호한 사람치고 징역 안 간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

이런 말은 상습적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히트작이 된지라 나도 카운터펀치를 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징역 가면서도 나보고 감사하다고 인사 안 한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라고 해.” 내 역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변호한 사람치고 석방 안 된 사람은 하나도 없어. 최소한 만기석방으로 다 나왔지 않아?”

후농에게는 이런 일화도 있었다. 결혼식장에 가서 틀림없이 봉투를 내놓고 왔는데,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축의금 봉투가 주머니에 그대로 있지 않은가? 놀라서 알아봤더니, 글쎄 취직 부탁 받은 이력서 봉투를 잘못 내놓고 온 바꿔치기 사고였다. 나는 후농의 후원회장으로서 후원금 모금 집회에서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 나서 이렇게 외쳤다. “보십시오, 후농은 자신도 실업자이면서 그처럼 남의 취직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인물입니다. 여러분!” 물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후농! 하늘나라에서는 탄압도 없을 터이니, 전생에서 겪은 고난 속의 은총을 되새기며 편히 쉬십시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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