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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⑰] 조성렬 "北핵실험 중단, 비핵화 이전 신뢰 구축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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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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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일 개최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1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하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결정서엔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한다”며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됐다. 그러면서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라며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이날 회의에서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됐고 운반 타격 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됐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말했다.

노동당이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에서 추가적인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데 대해,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구두로만 약속해 온 것을 공식기구 의결을 통해 공식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앞서 김정은은 방북한 우리측 특사단에 추가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면서 “이 약속을 공식기구에서 의결함으로서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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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비핵화 프로세스./조성렬 수석연구위원 제공


최근 ‘한국형 비핵화 프로세스’를 발표한 조 수석연구위원은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문가 자문단 회의에서 비핵화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한국형 비핵화 프로세스’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대상과 북한이 요구하는 한미의 군사위협 해소 및 체제안전 보장 방안들을 모두 망라하는 ‘포괄적 합의’를 이룬 뒤, 북미정상회담에서 핵 폐기에 따른 보상 내용을 규정한 ‘일괄적 타결’을 시도하고,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방안이다. ‘일괄적 타결’은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을 현재·미래의 핵, 과거의 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3개의 패키지로 구분해, 각각 패키지별로 보상한다. 이 아이디어는 문재인의 한반도 정책 중 비핵화 전략인 ‘단계적·포괄적 접근’과 맥을 같이해, 문 대통령이 수용할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로 꼽힌다.

이날 진행된 전문가 자문단 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첫 마이크를 조 수석연구위원에 넘겼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이 자리서 “한국이나 미국의 정권 교체는 (비핵화)협상의 동력을 잃어버리는 주요 요인”이라며 “문 대통령만의 시간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3종 패키지에서 현재와 미래의 핵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며 “의외로 시간이 적게 들 수 있는 게 ‘과거의 핵’(만들어진 핵무기)”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탄두는 핵물질과 기폭장치로 구성되는데, 기폭장치 제거를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며 “여기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비핵화 회담에 있어서 ‘남북미 3자 협의체’와 ‘정확한 목표 대상 설정’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조기 성과(Early Harvest)를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기 성과를 거두려면 남북미 3자 간의 대화가 가장 바람직하다”면서 “중국이 들어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계속 ‘왜 우리를 빼냐. 과거에도 4자회담을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며 판에 들어오려고 한다”며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 안전만 보장해준다면 주한미군이 주둔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중국 입장은 전혀 다르다.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원한다. 그래서 북한에게 ‘우리가 원조해줄테니까 좀 더 버텨봐’라며 회담을 파투내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또 “북한에 요구할 카드를 한번에 다 해야지, 다음에 가서 ‘아차, 이걸 깜빡했다’ 식으로 추가하면 안된다”며 “우리의 요구가 늘어나면,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 결국 협상은 지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남북 대화 결과는 조약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그 내용에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는다면 즉시 대북 제재를 복구한다는 조항이 붙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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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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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 수석연구위원과의 인터뷰 전문.

-북한 노동당이 20일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비롯해 추가적인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21일 보도됐다. 이러한 북한의 조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까지 구두로만 약속해 온 것을 공식기구 의결을 통해 공식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앞서 김정은은 방북한 우리측 특사단에 추가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당기구를 통해 공표한 것이다. 일단은 비핵화 실현 이전에 상호간 신뢰 구축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상당히 의미가 있다.”

-김정은의 구두 약속을 당 결정서로 채택한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

“북한 연구자 입장에선 김정은의 약속과 당의 공식 결정은 동일하다고 본다. 하지만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김정은의 입장에선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대외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이다. 또한 (비핵화)약속을 공식기구에서 의결함으로써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게 됐다.”

-이런 조치가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나왔다. 이것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실제적인 비핵화 조치에 신뢰구축 조치를 취한 것으로 봐야 한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분위기가 조성됐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까지 나온 건 아니다. 이건 회담 결과로 도출해야 한다.”

-자신들의 사전조치의 대가를 우리에게 요구하진 않을까?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에 대응하는 카드는 한미연합훈련이다.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긴 어렵고 지난번처럼 전략자산을 전개하지 않는 형태의 로우키로 하겠다고 답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이러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긴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한미훈련은 합법적인 조치인 반면, 북한의 핵실험은 불법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17일 청와대에서 전문가 자문단 회의가 있었다. 어떤 제안을 했나?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와 김정은의 시간표가 너무 차이가 난다는 얘기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는 1년 내지 2년 내에 비핵화를 완성하는 거라면 김정은의 시간표는 고무줄이다. 충분한 보상과 있다면 빨리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는 비핵화라는 게 이제 상당히 질질 끌 수도 있는 일이다. 과거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보면 바로 얼마 뒤 미국 정권이 바뀌지 않았나. 당시 부시가 당선되면서 미북 대화가 동력을 잃어버렸다. 2007년의 경우에는 남북정상회담 두 달 뒤에 우리 정권이 바뀌었다. 한국이나 미국의 정권교체는 협상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2년 8개월 정도 시간이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3년 반에서 4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 트럼프의 시간표와 김정은의 시간표의 차이가 너무 크니 문재인 대통령만의 시간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의 시간표는 고무줄’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문 대통령도 ‘(북한의 진정성을)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북한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나 미국, 중국과 접촉하는 걸 봤을 때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기대를 해볼 만 하다’고 했다. 나도 너무 낙관하기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특사로 북한을 다녀온 뒤 공개한 메시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 많았다.

“우리가 처음 남북대화를 시작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번 회담의 의제는 비핵화가 돼야 한다. 비핵화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지금 어떤가, 결국은 비핵화가 의제가 됐다. 그다음 김정은이 비핵화 의사를 밝혔다고 하니까 ‘그걸 어떻게 믿느냐. 특사가 전한 이야기일 뿐, 김정은의 육성으로는 확인이 안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뒤에 김정은이 3월 26일 시진핑을 만나 비핵화 메시지를 내놨다. 그러니까 이제는 ‘일년 내에 비핵화를 완료해야 한다. 또는 일년 반 내에 안되면 의미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난 이런 게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가 진정성이 있다는 말인가.

“북한은 지난 10년간 비핵화를 의제로 하는 어떠한 회담은 물론, 이와 관련된 대화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정은이 비록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전제조건을 깔긴 했지만 어쨌거나 대화에 나왔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국제 전문가들이 ‘비핵화를 전제로 미북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한 것인데, 이게 잘 안 지켜질 경우에는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된다’고 말한다. 북한이 지금와서 비핵화 약속을 되돌릴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다만 우리는 북한이 여러가지 구실을 대면서 비핵화 협상을 지연시키는 것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핵화 타임테이블을 제시하지 않은 비핵화 합의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인 비핵화 시간표를 설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이 요구할 체제 안전 보장도 시간으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CVID(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CVIG(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검증가능한 체제 보장)를 해줄 수 있느냐. 또 북한이 얘기한 군사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안나왔다. 북한 과거 주장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성격전환을 포함한 한반도에서의 군사 구조 재편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군사 구조 개편을 거론한다?

“이제는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제도화하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은 결국 내정 불간섭, 불가침, 상호존중 이런 것일 텐데 이를 제도화하자는 말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대북 삐라를 뿌릴 때 지금은 고압가스 관리법과 같은 법령을 적용해 단속한다. 하지만 남북 간에 상호불가침과 체제안전, 내정 불간섭을 약속하고 남북 기본협정에 따른 법령을 새로 만든다면, 대북 삐라에 대해서 관련법에 따라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실질적인 법 강제력을 가지고 남북 간의 합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1991년에 채택됐던 남북기본합의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담겼었는데 북한은 내부적으로 발효 절차를 다 밟았다. 최고인민회의에서 동의 절차를 거치고 수령에 의한 발효절차를 다 거쳤다. 그런데 우리는 국회에서 동의 과정을 안 거치는 바람에 기본합의서에 대한 법적 효력이 없는 상태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지키지 않은 건 북한이 아니었나.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당시 기본합의서가 조약 수준까지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해각서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남북 대화의 결과를 조약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 내영에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는다면 즉시 대북 제재를 복구한다는 조항이 붙어야 한다.”

-비핵화에 대해 남북은 어떤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가?

“이번엔 포괄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핵 시설을 기준으로 비핵화 조치는 ‘가동중단-불능화-폐기’ 단계를 밟게 되고, 과거의 핵무기는 한 군데에 모아두고 국제기구가 이를 감시하되 북한에서 반출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진행하면 트럼프의 시간(대통령 재임 기간)과 문재인의 시간을 못 맞춘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선 핵 문제를 3개 패키지로 나눠 대응해야 한다. 첫 번째는 현재와 미래의 핵, 이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과거의 핵(이미 만든 핵)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이중 의외로 시간이 적게 들 수 있는 게 과거의 핵이다. 물론 과거 핵 폐기 얘기를 꺼내면 북한이 펄쩍 뛸 수 있다. 핵탄두는 핵물질과 기폭제가 있는데, 분리보관하기 때문에 핵물질의 해외반출과 기폭장치 제거를 동시에 해야 한다. 여기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수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는 이걸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우리는 무엇을 내줄 수 있나.

“최근 얘기가 나오는 미북관계 정상화 카드 정도로는 부족하다. 외교관계라는 건 잘 풀리다가도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과 과거 핵을 맞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경제 원조를 줄 것 같진 않다. 줄 수 있는 카드라면 일단은 제재 해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북한이 다시 핵개발로 돌아서면 바로 제재를 복구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ICBM을 가장 먼저 폐기하겠다고 하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그렇다. 문제는 과거 핵 폐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ICBM 폐기를 먼저 하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플루토늄은 거의 윤곽이 드러나서 문제가 없는데, 고농축우라늄(HEU)이 문제다. 북한이 HEU 시설을 2013년에 2배로 증설했다고 하더라. 2009년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북한이 HEU 시설을 공개했을 때 원심분리기 2000개 정도를 보여줬다고 하더라. 그런데 2013년에는 시설을 증설해 원심분리기가 4000개였다. 최근에 정부 관계자를 만나서 이야기했는데 원심분리기 4000개면 고농축우라늄이 80kg 나온다고 하더라. 80kg은 핵탄두 4기 분(※핵탄두 1기엔 HEU가 15~20kg 가량 들어간다)이다.”

-어렵지만 그래도 과거의 핵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만든 핵부터 (해결)하자는 거지. 현재와 미래의 핵을 폐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또 몰래 어딘가에서 핵개발을 지속할지도 모르지 않나. 그것은 그때 가서 잡는다고 생각하고, 지금 북한이 확보한 핵물질을 먼저 없애는 게 급선무다. 과거가 없어지면 현재가 없어지고 현재가 없어지면 미래도 없어진다.”

-북한 내 플라토늄과 우라늄 제로를 만들어놓자는 말인가.

“그렇다. 이미 만들어 놓은 과거의 핵을 없애는 게 먼저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핵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 미래 핵은 연락사무소, 대사급 외교, 외교관계 등의 선물을 주며 교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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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윤희훈 기자


-요약하면 ‘현재·미래의 핵’ ‘과거의 핵’ ‘ICBM 등 발사체’, 3개 패키지를 놓고 협상을 벌이자는 것인데.

“이 3개의 패키지를 동시에 끝내겠다고 목맬 필요가 없다. 대신 우리는 북한이 이 3개를 포기했을 때 줄 수 있는 보상 카드가 나와야 한다. 체제 안전은 기본이고 그 다음에 현재와 미래 핵, 과거 핵, ICBM을 각각 처리하면 뭘 주겠다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 부분을 나는 일괄타결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패키지 딜(Package Deal)이 아닌 패키지스 딜(Packages Deal)로 봐야 한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시간은 얼마나 소요될까?

“국방부 전직 관계자로부터 들었는데, 국방부에서 검증한 결과, 2년안에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1~2년 안에 핵폐기가 가능하다’는 메시지와 상통한다.

“그렇다고 본다. 정말 제대로된 비핵화, 핵을 폐기하고 방사능 제염까지 하려면 10~20년 가량 걸린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고, 핵심적인 부분, 영변원자로 등 핵심시설을 봉인하고 해체하는 방안으로 하면 된다.”

-미국과 러시아가 군축을 결정하고 1~2년 안에 미사일 수백개를 줄인 것과 같다고 보면 될까?

“그렇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다만 그렇다면 우리가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냐는 것이다. 지금 이란 핵협상도 트럼프가 탄도미사일도 포함시키려고 하고, 군사시설 사찰을 요구하고 이렇게 계속 옵션을 추가하면서 미뤄지고 있다. 북핵도 이런식으로 하게 되면 미국이 요구하는 것에 북한은 더 내놓으라고 할 것이고, 결국 협상은 지연된다. 이걸 염두에 두고 문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첫번째는 남북미 3자협의체로 해야 한다. 두번째는 목표 대상을 정확히 해야 한다. 한번에 다 해야지, 다음에 가서 ‘아차, 이걸 깜빡했다’ 식으로 추가하려고 하면 안된다. 그러면 또 어긋난다고 했다. 지금 일본은 ICBM 뿐만 아니라 중거리미사일인 IRBM도 해결하자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목표가 늘면 안된다. 이런 제안을 정의용 실장이 열심히 메모하더라.”

-김정은이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할 정도로 절실한 상황인가. 북한이 많은 보상을 요구할 것 같다.

“제재 해제와 북일 관계 정상화 등에서 발생할 식민지 배상금 등도 북한에 보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지금 약간 아쉬운 것은 중국이 현 대화 국면에서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북중 관계가 냉랭한 상태에서 남북미가 회담을 하면 북한 비핵화를 충분히 빨리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봤었다. 그런데 최근 북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변수가 생겼다.”

-그래도 5·6월에 있을 미북정상회담까지는 중국이 아직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

“없다. 외신을 보니 6월에 시진핑 주석이 방북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시진핑 주석도 지금 급한 것이다. 지금 중국은 신경이 곤두서 있다. 북한이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어쨌든 기회가 된 김에 남북미 사전협의체를 구성해서 비핵화와 관련한 얘기를 사전에 조율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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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30여개 북한 인권 단체 대표들이 모여 “내달 열릴 남북 정상회담 의제에 북한 인권 문제를 반드시 포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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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인데, 체제 안전 보장이라고 하면 결국 내정불간섭 원칙이 포함된다. 내정불간섭이라고 하면 북한 인권 문제, 특히 북한에서 대량 살상 사태가 일어나려 할 때, 인도적 차원의 개입 또한 안된다는 것 아닌가.

“R2P(보호책임원칙·responsibility to protect) 문제인데, 이게 어려움이 있다. 사실 이걸 생각 안해본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 같은 경우는 결국 타협을 해야될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인권도 중요하니 정말 포기할 수 없다. 아무리 핵이라고 할지라도 이건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 무조건 해야 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비핵화가 중요하지 않나. 정치에는 우선순위란 게 있을 수 밖에 없다.”

-이걸 배제하고 비핵화 합의를 했다 하자. 그렇다면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부각됐을 때 우리가 모르쇠로 행동하면 비난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이 부분은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전문가들이 조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인권 문제는 건드리지 않겠지만, 유럽같은 경우 국교정상화 할 때 인권 문제를 반드시 거론하기 때문에 북한도 일정 수준의 노력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국가들과 수교를 위해 국제인권기구의 아동보호조약에 가입한다든지,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남북미 사전협의, 더 나아가 남북미 군사회담 얘기를 하는데, 주한미군 철수 등 기존에 북한이 말해왔던 군사적 이야기와는 궤가 다른 것 같다.

“2007년도에 미국의 싱크 탱크인 ‘아틀란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의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다. 거기에 보면 ‘한반도 평화 문제는 남북미중이 논의하고, 남북미 간 3자 군사협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97~1999년 사이 남북미중 간의 4자 회담이 열렸을 때 북한에서 주한미군 철수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당시 미국 대표가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 균형이 깨진다’라고 대답했다.”

-남북미 군사회담이라는 아이디어를 최초에 미국이 제안했다는 말인가.

“당시에 미국이 얘기했고, 북한도 3자 군사기구에 대해서 얘기를 해왔다.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체하는 새로운 3자 군사기구를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빼놓고 그런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이냐’라고 걱정한다. 중국은 과거 6자회담 의장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조기 성과(Early Harvest)를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기 성과를 거두려면 남북미 3자 간의 대화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면 북한이 주한 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을까.

“북·중 관계사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히려 북한은 중국의 부상 때문에 핵을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은 겉으로는 미국 때문에 핵개발을 했다고 한다. 나는 북한 핵개발의 숨은 이유는 사실 중국이라고 본다. 북한은 중국과 1600km의 국경을 접하고 있고, 90% 이상 중국에 무역을 의존하고 있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친중파였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이 김정은을 대체할 인물로 장성택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후기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흥선대원군을 납치해 심양에 유폐시켜버리지 않았나. 2015년 목함 지뢰 사건 때도 유사한 징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북한은 준(準) 전시상태였는데 중국이 접경 지역에 군대를 전진배치했다. 북한이 엄청난 위협을 느꼈다고 본다. 나는 지금도 북한에 핵이 없다면 중국의 특수부대가 평양을 일시 점령할 수 있다고 본다. 극단적인 얘기긴 하지만 핵 없는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북중 관계는 혈맹 관계라고 하지 않나.

“실제로 북한 측 사람들을 만나면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오히려 중국의 부상 이후 북한이 미국을 재평가했다고 본다. 전략적인 입장에서 체제 안전만 보장해줄 수 있다면 오히려 주한미군의 주둔 자체가 동북아에 안정될 수 있다고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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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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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인가.

“그래서 체제 안전만 보장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문 2항에 보면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여기에 기반해서 통일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나와있는데 이런 점에 착안해 남북 연합 추진 공동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남북기본협정의 법제화를 통해 북한이 체제 안정성을 보장받고, 남북 간 평화 공존이 제도화되면 통일까지는 아니지만 대외적으로 남북연합 기구를 통해 민족 문제와 관련된 것은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보통 이런 연합체가 활성화되면 안보도 공동으로 운용할 수 있다. 서로 상호불가침을 넘어서 대외적 공격에 대해 서로 협조한다는 얘기까지도 할 수 있다.”

-연합기구라는 건 결국 궁극적인 통일기구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봐야 한다. 결국은 통일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당연히 주한미군 주둔은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미군 입장에서도 굳이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가져다 놓을 이유도 없으니 북한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많은 전문가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다르다’라고 하는데 절대 다르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양측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차이가 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도 지금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는 동결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동결은 비핵화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 얘기를 했다. 서훈 국정원장도 역시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것을 우리가 비핵화라고 하겠느냐’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완전한 비핵화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북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일단 다음주가 남북정상회담인데,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되려면?

“패키지 딜을 담아야 한다. 일단 포괄적으로 담는거다.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그 다음에 북한의 특정 전략무기를 해결하겠다는 큰 틀의 합의를 해야 한다. 큰 틀의 합의를 위해선 미국과의 협의도 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포괄 합의할 아이템과 북미정상회담에서 일괄 타결할 아이템이 다르면 안된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향한다’와 같은 선언적 합의만 나오는 건 아닐까?

“과거 9·19 공동선언에 나온 것처럼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이라는 표현이 들어갈 것이다. 뭐 우리 입장이겠지만 어쨌든 ‘모든 핵무기와 핵 시설을 폐기한다’는 선언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베스트인데, 정부의 의지가 그 정도로 확고하다고 보나?

“그건 모르겠다. 아무튼 나의 제안은 ‘포괄적 합의, 일괄 타결, 단계적 이행’이다. 이 틀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하더라.”

-오늘 전문가 자문단 회의에서 ‘남북정상 통화’와 관련해선 언급이 없었나? 핫라인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한다와 같은.

“그런 얘기는 한 마디도 안 나왔다. 사실 나올 때가 됐는데 안 나왔다.”

조선일보

문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 원로 자문단이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오찬간담회를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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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에서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많이 반영된다고 보나?

“전문가들의 메시지를 굉장히 많이 수용한다고 느낀다. 제가 특정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부처에서)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연락이 온다. 지난해 12월에 강조한 내용이라도 그때와 지금은 또 상황이 달라졌으니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옛날 이야기만 계속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안된다.”

-지금 정책입안자들은 북한이 진정성이 있다고 보고 있나? 대통령은 있다고 보는 것 같긴 한데, 야당에선 ‘진정성이 없다’고 계속 주장한다.

“내가 볼 때 공무원들 중에서는 아직도 지금 상황을 못 쫓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현직도 그렇고 전직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안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북한이 정말 변할까’라고 말하더라.”

-북한의 지연 전술에 많이 당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래서 회의론도 많다.

“지금은 국면 전환 시점이다. 2차세계대전 후 얄타 체제가 만들어졌다. 얄타 체제에서 독일을 분할하고, 일본에선 미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에 공산주의가 확 퍼지자 미국이 이래선 안되겠다고 해서 만든게 ‘52년도 샌프란시스코 체제’다. 그리고 또 한번이 1989년 몰타 체제가 만들어진다. 이를 계기로 한·러 수교, 한·중 수교가 이뤄졌다. 이때까지의 흐름은 국제사회의 변화에 우리가 편승해온 것이다. 2000년부턴 미국의 유일패권체제가 만들어지면서 국제적인 지각 변동이 없었다. 김대중정부 들어 우리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론 다 실패했다. 실패 원인을 찾자면 임기말이었던 것도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발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았다. 미국은 남북이 화해하는 게 나쁠 건 없지만 굳이 자기네들이 뛰어들어서 질서를 구축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상황이 다르다는 건 결국 핵 위협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나는 ‘균형력’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건 ‘Balance of Power’(힘의 균형)가 아닌 ‘Power of Balance’(균형을 맞추는 힘)를 말한다. 이게 미국을 움직이는 힘이 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이 동시에 열릴 수 있게 된 동기는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성은 실질적인 협상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진정성이라는 게 ‘김정은의 본심’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말인가?

“중국도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7년간 북한과 미국, 중국의 사이가 계속 안좋았던 가장 큰 이유가 북핵이었다. 2012년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이 2013년 3월 양회에서 ‘신형 대국관계’를 선언했다. 당시 북한이 2012년 12월 은하 로켓을 쐈을 때만 해도 중국은 ‘이게 동아시아의 질서를 훼손하는 건 아니다’며 북한을 두둔했다. 그런데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까지 강행하자 중국의 상황 인식이 달라졌다. 미국도 ‘신형 대국 관계를 맺겠다고 하면서 ‘동네 깡패’(북한) 하나 못 다루냐’는 식으로 중국을 비난했다. 그때부터 시진핑은 북한을 완전 배제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중국이 북한을 껴안으려고 한다.

“아까 한 이야기가 이거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잘 끝나면 좋은데, 북한으로서는 불안하니까 보험용으로 북중정상회담을 하는 것이다. 판이 잘못하면 복잡해질 수 있다. 중국은 계속 ‘왜 우리를 빼냐. 과거에도 4자회담을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며 판에 들어오려고 한다. 내가 봤을 때,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 안전만 보장해준다면 주한미군이 주둔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중국 입장은 다르다.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원한다. 그래서 북한에게 ‘우리가 원조해줄테니까 좀 더 버텨봐’라며 회담을 파투내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문 대통령이 ‘남북미 정상회담’을 말하는 걸 보면, 우리 정부 역시 중국을 배제하고 싶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난번 회의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문 대통령을 몇개월 모셔보니 참을성이 굉장히 강한 분이다’고 하더라. 자신의 목표를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중국 측 인사를 만나 ‘지난번에 이해찬 특사가 갔을 때도 하대하더니, 이번에 정의용 실장이 설명하려고 갔는데도 또 하대를 했느냐’고 한소리 했다. 중국에서 한정이랑 양제츠가 왔을 때 전문가 그룹에선 ‘우리도 그들의 의전을 낮춰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 우리나라 국익을 위해서 그러면 안된다. 중국과는 잘 지내야 한다’며 제안을 물리쳤다고 한다. 어쨌거나 문 대통령이 지금 중국에 대해선 감정이 좋을 것 같진 않다. 또 실리적으로도 북한과 미국만 붙여놓으면 싸울 수도 있고 하니, 둘의 대화가 매끄럽게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들어가는 거다. 하지만 중국이 들어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얼마 전에 조동호 원장이 헬싱키에서 열린 남북미 1.5트랙 대화에 다녀왔다. 혹시 북한 측의 태도가 달라졌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

“조 원장보다는 김준형 한동대 교수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전해들었다. 김 교수 이야기로는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부국장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젊은 연구원 2명이 왔는데 이들이 ‘아직은 제제가 스며들지 않았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제재가 북한 체제를 위협할 정도가 되면 그 때는 자기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최후의 수단을 쓸 수 밖에 없다’고 했다고 들었다.”

-조동호 원장이 최근 기자들을 만나 ‘북한 측에서 6자회담 체제는 한물갔다고 이야기했다’고 했는데.

“조 원장으로부터 듣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맞는 말이긴 하다. 지금 북한은 6자회담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6자회담 뿐만 아니라 4자회담도 원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비핵화 다자회담이라고 말하는 거다. 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할 때에도 3자 종전설을 이야기했다. 요는 중국이 들어오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최근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등 미국 학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다들 ‘김정은의 진정성’을 묻더라. 그래서 ‘나도 진정성은 의심하지만 10년만에 열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니 동의한다고 하더라. 반대로 나도 그들에게 ‘너희는 트럼프의 진정성을 믿느냐’고 질문했다. 그러니 ‘자기들도 안 믿는다’고 하더라.(웃음)”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1958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공대를 나와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했다. 일본 도쿄대 및 게이오대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국제관계연구센터장 및 기획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을 맡고 있으며,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및 남북정상회담 전문가 자문단으로 활동 중이다.

[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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