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지도자들 관상 보는 CIA… 용하네, 용해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美외교 숨은 무기 '얼굴 분석'… 미·북 회담 앞두고 김정은에 집중]

- 시진핑 '돌발 상황에 약하다'

美·中정상 만찬서 케이크 먹으며 시리아 공습 사실 밝히자 "아이들에게 가스 썼다면…" 동의

- CIA가 분석한 김정은은?

여느 독재자처럼 '내가 곧 내 나라'… 자신을 모욕하면 독하게 반응

이 조언에도 트럼프 "로켓맨" 비난

작년 4월 6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미·중 회담을 마치고 만찬장에 마주 앉았다. 트럼프 외손주가 나와 중국 민요 '모리화'를 불렀다. 이어 웨이터들이 캘리포니아산 포도주와 최고급 스테이크를 테이블마다 날랐다.

시 주석은 흐뭇한 얼굴로 스테이크를 썰었지만, 트럼프는 노리는 게 있었다. 미·중 회담 전, CIA가 트럼프에게 시 주석의 표정과 몸짓을 토대로 성격을 분석한 보고서를 트럼프에게 냈다.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무슨 일이건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실수도 적다. 그 대신 예상을 뛰어넘는 돌발적인 일에 약하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그래픽 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정보를 십분 활용했다. 스테이크를 다 먹고 초콜릿 케이크가 나왔을 때, 트럼프가 시 주석에게 "할 말이 있다"며 "방금 시리아 공격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허를 찔린 시 주석은 10여 초간 침묵하다 "어린이에게 가스를 사용한 사람(아사드)이라면 공격해도 된다"고 했다. 평소 '내정 불간섭'을 주장해왔는데, 엉겁결에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공격을 승인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걸 두고두고 써먹었다. 본인이 직접 폭스TV에 출연해 "시 주석이 괜찮다고 했다"고 몇 번씩 강조했다.

트럼프의 '한 방'은 CIA 심리 분석 덕에 가능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0일 보도했다. 심리 분석은 상대의 언행을 정밀하게 분석해 성격과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CIA는 시 주석을 분석할 때, 일명 '페이셜 프로파일링(facial profiling)'을 활용했다. 수사관들이 범죄 현장을 보고 범인을 짐작하듯, 심리학자가 나서서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과 몸짓을 분석하는 기법이다.

CIA의 심리 분석 기법이 새삼 관심을 모으는 건 남북 회담과 미·북 회담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은 그간 공개된 김정은의 표정과 몸짓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정은의 성격·심리상태·건강상태를 파악해 외교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2차대전 때부터 심리 분석을 활용했다. CIA의 전신인 미 전략사무국(OSS)이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종국에는 미치거나 자살할 가능성이 높은데, 자살할 경우엔 최후에 가장 드라마틱한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 예측한 게 대표적이다(1943년 보고서).

페이셜 프로파일링은 냉전의 무기로도 활용됐다. CIA는 1961년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거친 촌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힘을 숨기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다'는 보고서를 케네디 대통령에게 올렸다.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에 대해선 '비판받으면 감정적으로 불안정해지며, 에고이즘(자기중심주의)이 아킬레스건'이라고 썼다.

페이셜 프로파일링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건 1970년대 들어서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감정과 표정은 보편적·자동적이라는 게 근거다. 화를 내는 이유는 달라도 화났다는 감정은 똑같고, 화난 걸 드러내는 얼굴 근육도 같다. 뇌가 '감정을 숨기라'고 명령해도 뇌의 명령이 닿기 전에 근육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따라서 훈련된 눈으로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몸짓 분석까지 보태면, 심리 파악이 가능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 기법의 최강국으로 꼽힌다. CIA는 1990년 사담 후세인에 대해 '본인의 운명이 곧 이라크의 운명이라고 여기며, 양심 때문에 갈등하는 일이 전혀 없다. 불타는 벙커에서도 출구만 있으면 마지막까지 버틸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곧 내 나라'라는 사고방식은 김정은도 마찬가지라는 게 CIA의 분석이다. CIA는 지난해 트럼프에게 "김정은은 자기애가 강하고, 모욕에 독하게 반응하며, 본인과 북한을 따로 떼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올리고, "김정은 개인을 공개적으로 지목해 모욕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로켓맨' '매드맨' 같은 별명을 붙이지 말라는 얘기였다. 트럼프는 듣지 않았다.

일본도 2010년부터 심리 분석을 외교에 활용 중이다. 일본 총리가 주요국 정상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전문가 2~3명에게 의뢰해 종합적인 성격 리포트를 받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가 트럼프와 인간관계 맺는 데 이 보고서가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