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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나라 세우고 독선에 무너진 '건국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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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에서 태어난 사생아

美 초대 재무장관에 올라 미국 자본주의 기틀 다졌지만

"실수 인정 않고 오만" 비판도

조선일보

알렉산더 해밀턴|론 처노 지음|서종민·김지연 옮김|21세기 북스|1428쪽|6만원

미 합중국 헌법을 제정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가운데 알렉산더 해밀턴(1755 또는 1757~1804)처럼 극적인 인생을 산 이는 없다. 노예와 매춘부가 우글대던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고아로 자랐지만 그 나이 아이들에게선 볼 수 없는 절제와 노력으로 10대 후반 섬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고, 이후 출세 가도를 달린 끝에 미국 초대 재무장관직에 올랐다. 그는 지력(知力)을 발휘해야 하는 모든 분야에서 타인을 압도했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까지 갖췄다. 워싱턴과 제퍼슨 등 국가 지도자 대부분이 농업국가를 미국의 미래라고 생각할 때, 그는 "미국은 사업 천재들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사유재산과 특허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등 미국 자본주의의 기틀을 닦았다. 하지만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해 타인을 포용하는 데 인색했고 인간관계에 서툴렀다. 미국 초기 대통령을 지낸 이들 가운데 워싱턴을 제외한 제퍼슨, 애덤스, 먼로와 모두 불화했다. 부통령 에런 버의 결투 요구를 받아들였다가 총에 맞아 숨진 그의 최후는 빛나는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 한 편의 부조리극이었다.

2005년 발표된 이 전기는 부담스러운 분량임에도 인터넷 서점 아마존 독자 서평이 4000개에 육박할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해밀턴의 삶이 워낙 극적이기도 했지만, 그가 이룬 위대한 성취와 천재적인 능력 이면에 도사린 열등의식과 엘리트 특유의 협량한 품성까지 세밀하게 복원해 낸 저자의 역량이 흡입력을 높였다. 해밀턴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편지와 일기, 각종 기고문도 풍부하게 실었다.

조선일보

미국 재무부 건물 앞에 서있는 알렉산더 해밀턴 동상. /게티 이미지 코리아


해밀턴은 평생을 통해 출세를 갈망했다. 섬에서 살 때 들어간 무역회사에선 "사장님, 저를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조숙한 야심가였고, 미국 독립전쟁이 벌어지자 마침내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다니던 킹스 칼리지(현 컬럼비아대)를 중퇴한 뒤 워싱턴 장군 휘하에 들어가 전공(戰功)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뉴욕 명문가 집안의 딸인 엘리자 스카일러와 결혼하며 든든한 정치적 배경도 얻었다. 훗날 그가 처형에게 보낸 편지에는 "세상이 어떻게 나 없이 돌아간다는 말이냐"는 오연한 고백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노력으로 성공을 일궈낸 정직한 천재였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엔 훗날의 성공을 상상하며 독서로 밤을 지새웠고, 미국에선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다. 헌법 해설서인 '연방주의자(The Federalist)'의 주요 저자이기도 하다. 공직자로서 그는 법과 원칙을 신봉했으며 군중심리를 경계했다. 미국의 독립을 위해 전장(戰場)을 누빈 그였지만, 뉴욕 시민들이 친영(親英) 신문 '뉴욕 가제티어'에 난입해 인쇄기를 부수고 편집장을 감금하자 "우리 이웃들이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법질서의 훼손과 언론 자유 침해에 단호히 맞섰다.

국가 건설에선 원맨쇼 수준의 능력을 발휘했던 그가 어이없게도 마리아 레이널즈라는 여성의 유혹에 넘어갔다가 그녀의 남편에게 협박당하고 돈을 뜯겼으며, 심지어 장관실에 불러들여 사과하는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은 의외다. 성공한 관료로서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던 1781년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이런 약점도 있었지만 그는 명예를 중시했으며 그것을 국가의 발전에 접목한 인물이었다. 독립전쟁에 기여한 대가로 국가가 지급한 토지와 연금을 사양했으며, 공직에서 물러났을 때는 빚을 져야 할 만큼 청렴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누군가를 한 번 미워하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가며 지속적으로 증오했던 해밀턴의 성격은 정치인으로선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연방당 소속이었던 그는 자신의 당내 위상만 믿고 같은 당의 존 애덤스 대통령과 내분을 빚었다가 1800년 대선에서 민주공화당에 정권을 내줬다. 이후 연방당은 몰락했고 민주공화당이 24년이나 집권을 이어갔다. 정권만 잡으면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독선에 빠져드는 이 땅의 정치인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역사의 한 장면이다.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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