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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조달 마피아 퍼주기 담합’ 의혹, 한국은행 덮고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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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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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3600억 규모의 통합 별관 공사 ‘퍼주기 입찰 담합’ 의혹과 관련하여 기획재정부의 유권해석에‘백기항복’ 했다. 국가계약법상 기술제안 입찰 경우 예정가를 초과한 계약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기재부의 유권해석에 대해 한국은행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평가점수를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통일하는 방법으로 예정가 보다 높은 입찰금액을 써낸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한 조달청의 비정상적인 입찰 집행에 수요기관인 한은까지 손을 든 것이다.

19일 한국은행 통합별관 공사를 총괄하는 임형준 부총재보는 “기재부가 입찰예정가를 초과하는 계약을 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한 것에 재질의를 하지 않기로 내부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는 “예정가격을 초과하는 계약을 할 수 있다면 왜 국가계약법에 예정가격 규정을 두고 있는지 이상해서 질의를 했지만 주무부처인 기재부가 입장을 번복할 것 같지 않아 재질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기재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을게 뻔한데 이의제기 등으로 시간을 끌어봐야 공사지연에 따른 손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앞서 조달청은 지난해 12월 기술평가(80%)와 가격평가(20%)를 거쳐 한국은행 통합별관 건축공사의 낙찰자로 계룡건설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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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조달청이 심사위원간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사유서를 작성하도록 해 8개분야 48개항목중 45개항목에 대한 심사위원들 환산점수가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일치한 사실이 드러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조달청은 매년 설계심의를 위해 내·외부 평가위원 50명을 선발하지만 내부위원 25명의 구성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며“제한된 인원에 평가권한이 집중되다 보니 부정청탁등 로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달청 내부위원들이 외부위원들에 비해 평가과정에서 영향력이 크고 잘 바뀌지도 않다보니 로비 표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들이 퇴직 후 민간업체 재취업하면서 ‘조달 마피아’라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행 별관 증축 공사 설계심의과정에서 벌어진 온갖 비정상적인 결과도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조달 마피아들’의 무리한 담합의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달청은 이번 심사과정에서 계룡건설 임원이 2010년 부산대 외상전문센터 공사 심의중 조달청 심사위원에 뇌물을 준 사실이 드러나 부산대에서 부정당업체로 제재를 받은 사실을 한은에 통보하지 않았다.

또 계룡건설이 입찰금액(2831억원)을 입찰예정가(2829억)보다 높게 써냈음에도 도급사가 부담하는 관급자재금액을 포함하면 총공사비 한도를 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입찰자격을 문제 삼지 않았다.

수요기관인 한은 입장에서는 예정가격을 무시하고 2위 업체보다 400억여원이나 높게 입찰금액을 써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에 따라 한은은 지난 2월 조달청과 계룡건설에 공문을 보내 계약협의를 중단하고 기재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한은의 질의는 ▲국가계약법상 예정가격을 초과해서 계약하는 것이 가능한지▲국가계약법상 예정가격에 관급자재 금액이 포함되는지▲부산대의 부정당업자 제재가 다른 공공입찰 참가 자격에 미치는 효력범위 등에 집중됐다.

이에 대해 3월30일 기재부는 한은에 유권해석 결과를 통보했다. 법적 논란이 될 핵심쟁점에 대해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한은이 계룡건설과 계약을 파기할 근거는 철저히 차단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먼저 ‘예정가격’의 의미를 묻는 질의에 “국가계약법에서 예정가격이라 함은 계약금액의 결정기준으로 삼기 위해 미리 작성해 두는 가액”이라고 답변했다. 질문의 취지는 ‘공사비총액(예정가액)에 관급자재 금액이 포함되느냐는 것인데 국가계약법 총칙에 나온 예정가격의 정의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국가계약법상 예정가격을 초과한 계약이 가능하냐’는 질의에는 “기술제안 입찰의 경우 예정가격을 초과하여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고 했다. 문맥상 ‘계약이 가능하다’는 취지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놓으려는 의도가 보이는 답변이었다.

부산대가 부정당업체로 제재한 사실을 다른 공공기관 입찰에도 영향을 미치도록 전자조달시스템에 게재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게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애매하게 답변했다. 사실상 공공기관 입찰과정에서 부정한 비리를 저지른 업체에 대한 제재의 실효성을 무력화시키는 답변이었다.

한은은 기재부의 이 같은 무성의한 답변에 대해 당초 내부에서 재질의를 검토했지만 기재부의 태도 변화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재질의를 포기했다.

한은의 한 고위인사 ㄱ씨는 ‘기재부가 예정가격을 초과한 계약이 가능하다고 명확히 답변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게 의견을 모았다”고 하면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 건물이고 잘 해보려고 조달청에 맡겼는데 돌아가는 게 상식과 다르다보니 솔직히 답답하다”며“상식에는 안 맞지만 법적으로 명확한 근거를 줘야 우리가 스톱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은 또 다른 간부는 “부산대라도 계룡건설을 부정당업체로 전자게시해주면 계약을 거부할 수 있는데 부산대가 움직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에 따라 차라리 5월2일로 예정된 기재부의 계약분쟁조정 위원회에서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길 기대하고 있다.

ㄱ씨는 “우리가 질의를 하면 기재부가 답변을 늦추고 재질의 해서 똑같은 답변이 나오면 실익도 없고 공사지연에 따른 부담만 늘어난다”며“빨리 분쟁조정위에서 결정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쟁조정위원회가 정부위원 8명에 민간위원 6명으로 구성돼 있어 기재부가 유권해석을 변경하지 않는 한 한은의 기대대로 조정 결과가 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 조달청장이 기재부 예산실장 출신이고 조달청은 기재부 산하기관으로 분쟁조정위가 소속된 기재부 계약제도과에 조달청 인력이 파견돼 있어 분쟁조정위 공정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재부는 한은에 유권해석을 통보한 후로 분쟁조정위로 모든 문제를 넘기고 민감한 사안에 입을 닫는 분위기다.

기재부 고정민 계약제도과장은 ‘기재부 유권해석이 예정가격을 초과해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보면 되느냐’는 물음에 “분쟁조정위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라 지금 시점에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기재부 유권해석대로라면 앞으로 공공 입찰에서 입찰예정가격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분쟁조정위가 끝나면 말하겠다.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고 과장은 국가계약법상 예정가격은 관급자재 금액을 뺀 금액으로 봐야 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8조에 예정가격은 관급금액 제외로 돼 있는데 입찰공고문의 ‘예정가격’도 마찬가지로 해석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유일하게 조달청의 입장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조달청은 “입찰공고문에 예정가격과 관급금액을 합친 총공사비를 넘지 말아야 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단지 예정가격을 초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입찰자격을 문제 삼을 수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한은도 “입찰공고문에 관급금액과 합친 금액을 기준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조달청의 해석이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입찰공고문은 국가계약법과 관련 법령에 따라 작성이 돼야 한다. 이 점에서 고 과장이 ‘국가계약법상 예정가격은 관급급액을 제외한 금액’이라고 못 박은 것은 조달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가 매년 작성하는 ‘총사업비 관리지침’ 25조2항도 “총공사금액(관급제외) 범위 내에서 예정가격을 결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 과장은 ‘기재부의 유권해석이 기술제안평가에서 총사업비 관리지침 25조2항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변했다.

조달청의 입찰공고문에 나오는 ‘예정가격’ 역시 총사업비 관리지침 25조2항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결국 고 과장의 발언대로라면 조달청의 입찰공고문 문구와 상관없이 입찰금액이 총공사비인 입찰 예정가격을 초과하면 ‘총사업비 관리지침’을 위반하는 셈이다.

한은 백무열 법규팀장도 “조달청의 입찰공고문은 국가계약법 적용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국가계약법 규정과 상관없이 입찰공고문 문구를 기준으로 계룡건설의 입찰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조달청의 아전인수식 해석과는 선을 그은 것이다.

이처럼 조달청 논리에 허점이 발견되면서 한은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은의 한 인사는 “솔직히 우리도 조달청 심사위원들의 매수·담합 의혹이 논란이 된 상황에서 예정가격을 초과하면서까지 공사를 맡기고 싶지 않다”며“내부에서 기재부에 대한 재질의 검토 얘기도 나오니 언론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탈락업체들도 기재부의 분쟁조정위 결과와 상관없이 국민권익위 고발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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