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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댓글공작’ 원세훈 4년형 확정…5년 끌며 검찰·법원 큰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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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정원법·선거법 위반 원심 확정

이종명·민병주, 2년6개월형 집유

축소수사 압력·편파기소 도마에

5차례 재판 과정 사법부 독립 흔들

‘선거법 위반’ 무죄-유죄 극과 극

2심파기 양승태 대법원 획일화 논란

청와대와 뒷거래 의혹 문건까지



한겨레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7년 9월26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돼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 직원에게 트위터 등에서 여당 후보는 옹호하고 야당 후보는 비방하는 글을 게시하도록 한 혐의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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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때 진행된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사이버 여론조작’은 정치개입일 뿐 아니라 선거개입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원세훈(67) 전 국정원장은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수사와 5년간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과 사법부는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독립성에 큰 상처를 남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19일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 직원들에게 트위터 등에서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과 야권 후보자들을 비방하도록 지시한 혐의(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 전 원장과 함께 기소된 이종명(61)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60)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2년6개월의 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대통령 선거 관련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지위를 이용해 특정 후보자와 정당을 찬양·지지하거나 비방·반대하는 활동을 집단·동시다발적으로 했다”며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이정희·안철수 후보를 반대하는 선거운동을 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사이버팀 직원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일탈 행위로 보기 어렵다. 정보기관으로서의 조직과 업무 체계, 피고인의 지위와 역할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이 사이버팀 직원들과 공모해 불법 정치관여와 선거운동을 지시·관여한 것이 인정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다만 김창석·조희대 대법관은 원 전 원장과 이 전 차장의 국정원법 위반(정치개입)은 인정하면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라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원 전 원장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출마선언이 시작될 무렵에는 직원들에게 선거에 개입하지 말 것을 반복적으로 지시했다”며 “사이버 활동의 규모가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라고 보기에는 미미하고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발생 빈도가 줄어든다”고 밝혔다.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이제야 매듭지어진 것에 대한 책임은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검찰과 법원에 있다는 비판이 많다.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의 ‘셀프 감금’에서 시작된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과 윤석열 서울지검 특별수사팀장이 경찰과 검찰 수뇌부의 수사 축소 압력을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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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편파 기소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은 원 전 원장만 기소하고 이 전 차장과 민 전 단장의 기소를 유예했다가, 민주당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의 명령으로 마지못해 기소했다. 반면 국정원의 여론조작을 알린 ‘오늘의 유머’ 운영자, 수사 축소 압력을 폭로한 권 전 과장, 김하영씨의 오피스텔을 찾아간 민주당 의원들은 전부 기소했다. 이들은 모두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5년 동안 ‘1심→2심→대법원 파기환송→파기환송 뒤 2심→대법원’ 등 다섯번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사법부도 외부 입김에 휘둘렸다는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 법원은 모든 재판에서 사이버팀의 활동이 직원의 정치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과 직결된 선거법 위반 혐의는 달랐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2014년 9월 선거법 위반이 무죄라며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후 2심인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는 2015년 2월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뒤집고 징역 3년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는 2015년 7월 대법관 13명 만장일치로 2심 판결을 파기하며 판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원 전 원장의 대선개입 유무죄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국정원 직원의 전자우편 첨부 파일 2건(425지논·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만 문제 삼았다. 특히 대법관 전원일치의 판결은 법원 내부에서도 ‘상식에 어긋나는 획일적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뒤 2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시철)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재판을 1년7개월이나 끌기도 했다. 법관 인사로 재판장이 김대웅 부장판사로 바뀐 뒤에야 원 전 원장은 선거법 위반이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원 전 원장 재판을 둘러싼 ‘사법부 독립 훼손’ 논란은 지난 1월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을 낳은 법원행정처 문건이 공개되면서 더 거세졌다. 법원행정처 심의관 컴퓨터에서 발견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비에이치(BH·청와대)의 최대 관심 현안→항소기각을 기대하며 행정처에 전망 문의’, ‘우회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 파악 노력’ 등의 내용이 등장한다. 이런 심각한 의혹이 제기된 직후 대법관들은 “일부 언론의 사실과 다른 보도로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문을 내 빈축을 샀다.

김민경 현소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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