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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아침 햇발] 재벌 3세 갑질, ‘세습 경영’이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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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안재승

논설위원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저를 나무라 주십시오. 저의 잘못입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14년 12월 큰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파문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자식 교육을 잘못한 자신을 질책해달라는 한탄이었다. 2018년 4월 둘째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을 지켜보면서 조 회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조현민 전무는 불과 3년 반 전 세상을 그토록 떠들썩하게 만든 언니의 갑질 파문을 보면서 왜 교훈을 얻지 못했을까?

비단 한진그룹 3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되풀이되는 재벌 3세들의 일탈 사례는 차고 넘친다.

재벌 3세들은 같은 재벌이라도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창업주들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기업을 일으켜 세웠다. 2세들은 부모가 기업을 키우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거들면서 성장했다. 반면 3세들은 기업이 재벌의 반열에 오른 뒤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면서 자랐고 부모의 회사에 들어가 초고속 승진으로 임원 자리에 올랐다. 많은 경우 처음부터 자신을 ‘슈퍼 갑’으로 착각한다. 직원들을 머슴 취급 하고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기 일쑤다. 삐뚤어진 특권의식이 몸에 뱄다.

한겨레

그래픽 / 장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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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의 자제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더 엄히 처벌해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그렇다 보니 세상을 우습게 아는 것 같다. 조현아 부사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지난해 변호사들을 폭행한 한화그룹 삼남 김동선 팀장은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2015년 운전기사를 폭행·폭언한 대림그룹 장남 이해욱 부회장은 벌금 1500만원, 2016년 운전기사에게 ‘매뉴얼 갑질’을 한 정일선 현대비앤지(BNG)스틸 사장은 벌금 300만원에 그쳤다. 2016년 ‘술집 난동’을 벌인 동국제강 장남 장선익 이사는 경찰에 입건된 뒤 사건이 흐지부지됐다. 솜방망이 처벌이 재벌 3세들의 일탈을 부추기는 꼴이다.

법의 엄중한 심판을 피하는 것은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를 지키거나 슬그머니 경영에 복귀한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회사 근처에는 아예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하는데, 되레 자식을 망친다.

능력은커녕 인성도 갖추지 못한 재벌 3세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부를 수 있다. 이들과 황제경영이 결합하는 순간 ‘오너 리스크’가 극대화된다. 총수 자리에 올라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면 그 폐해는 창업주나 2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자신만 망하면 상관없는데, 아무런 잘못도 없는 직원과 주주까지 고통받게 한다. 심하면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도 창업주의 후손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또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너 경영’보다 반드시 낫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외국에선 창업주와 핏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경영 세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영권을 이어받으려면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후계자로 선정돼야 한다.

지금 많은 재벌이 경영권을 3세들에게 물려주는 과정에 있다. 경영능력과 도덕성이 떨어지는데도 총수의 아들이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경영 세습’을 법과 제도로 제어해야 한다. 대주주로 남아 배당만 받게 하고 경영에선 손을 떼도록 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기업소유지배구조의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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