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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청년 ‘일자리 안착’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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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Cry For Me Argentina.’(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29대 대통령 후안 페론(1895~1974)의 부인 에바 페론(1919~1952)의 전기를 그린 영화 ‘에비타’의 주제곡이다. 빈민구제와 학교설립에 힘쓴 그가 34살에 요절하자 아르헨티나는 큰 슬픔에 빠졌다. 사후 70년이 가까워진 지금도 대선 주자들이 에바 페론 정신계승을 내세울 만큼 그녀는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추앙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지나친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경제를 파탄낸 주범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오죽하면 그녀 별명이 ‘거룩한 악녀이자 비천한 성녀’일까. 실제 영화는 그녀가 병원을 세우고, 교육 기회를 주는 장면 사이에 마차에서 돈을 뿌리는 장면을 교차 편집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지난 밤, 이 영화를 제주도 어느 숙소에서 감상했다. 낮에 올레길을 걸으며 만난 청년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길 위에서 커피를 나눠 마신 청년은 1년 9개월의 취업활동에 고배를 마셔 지친 나머지 잠시 걸으러 왔다 말했고, 편의점 앞 벤치에서 만난 청년은 퇴사를 고민하기 위해 잠시 떠나왔다고 말했다. 입사와 퇴사가 꿈인 청년들. “어느 회사에요?”라고 질문했을 때, 공교롭게도 둘은 같은 이름을 말했다. 하나의 회사를 두고 누군가는 간절히 들어가고 싶어 하고, 하나는 간절히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입사를 위해 울다 몇 년이 지나 퇴사를 위해 울게 되는 이른바 ‘입퇴양난’의 시대, 지금의 청년 일자리 현상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 아닐까. 실제 청년실업률이 11.6%로 2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고, 입사 1년 내 조기 퇴사자도 10명 중 6명으로 가파르게 늘어가고 있다. 어려운 문틈을 비집고 들어갔다가 이내 주르륵 새어 버리는 것이다. 동화 콩쥐 팥쥐에 나온 밑빠진 독 아닐까.

청년 일자리 정책을 보면 아래를 막기 보단 입구를 더 늘려 물을 채우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른바 ‘창출’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현상이다. 지난해 국회 추경 연설에서도, 올해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일자리 정책에서도 여전히 포커스는 창출에 맞춰져 있다. 이미 입사한 청년들이 일자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큰 반응이 없는 것은, ‘그건 개인의 참을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관점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모 지자체장 후보와 중소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면담이 큰 화제가 됐다. “연봉 2,400만원에 중식, 석식까지 제공하는데 왜 안 오는지 모르겠다.”는 문장 때문이었다. 청년세대는 다 아는데, 기성세대는 모르는 걸까? ‘석식’을 당연히 제공하는 것이 문제라는 걸.

지금까지 청년의 일자리 미 안착의 원인은 개인의 근성부족으로 치환돼 왔다. 하지만 묻고 싶다. 기성세대 눈에 ‘근성부족’으로 비치는 청년이 수 만, 수십 만이라면 이제는 사회현상이고, 분석돼야 하고, 정책에 반영돼야 하는 것 아닐까? ‘너희의 참을성 문제’라는 메시지가 이 ‘현상’을 개선시킬 수 있을까? “정책을 만들고 수정 보완 하는데 왜 지표가 안바뀔까?” 라는 공허한 대책회의만 계속되지 않을까?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에바 페론의 정책은 국민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했다. 배고픈 사람에게 현찰과 식품을 주고, 아픈 사람에게 병원을, 교육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학을 가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고결한 사랑이 단편적 정책 뒤의 근본 문제까진 해결하진 못했다. 그녀도 밑빠진 독을 메우기보단 더 많은 물을 쏟아 부었다. 만약 그녀가 살아있다면 포퓰리즘의 악녀라는 프레임 보다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쏟아 부은(그러나 현명하지 못했던) 정책과 예산들이 어떤 변화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슬프하지 않을까.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