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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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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중세는 흔히 암흑기로 불리지만 베네치아와 제노바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달랐다.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해 북아프리카와 동방의 희귀물자를 유럽 대륙에 중계무역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르네상스의 발원지가 이탈리아인 것도 이들 도시국가가 축적한 부의 덕이 크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마다 무역관을 설치하고 본국에서 파견한 담당 관리를 상주시켰다. 이때의 관리관을 ‘콘술(consul)’이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영사(領事)의 기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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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의 영사 제도가 확립된 것은 1963년 빈 회의에서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144개국이 조인하면서부터다. 이 협약에서는 영사 관계와 영사의 임무·특권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전에도 영사를 두기는 했으나 국제적 관례에 근거해 운영해왔다. 주재국 국민 또는 자국민 가운데 위촉해 선임하는 명예영사제도 역시 예부터 내려온 국제 관례의 흔적이기도 하다. 독일의 토마스 만(1875~1955)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긴 ‘부텐부르크가의 사람들’은 한자동맹 시절 곡물상이자 네덜란드 명예영사였던 증조부부터 4대에 이르는 가문의 역사를 토대로 시민계급의 몰락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댓글 여론 조작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더불어민주당 당원 ‘드루킹’이 일본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인사 청탁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여러 의문점이 있지만 언뜻 떠오르는 것은 그 많은 낙하산 공직 가운데 왜 총영사이고, 그중에서도 오사카인가부터 궁금해진다. 몇 가지 짐작은 할 수 있겠다. 총영사는 업무 강도에 비해 대외적 지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부분적이나마 형사처벌 면제 등 외교 특권도 있다. 오사카 총영사관은 10곳의 일본 공관 가운데 도쿄 대사관 다음으로 규모도 크다. 관할인 간사이(關西) 지역 교민이 16만여명에 이른다. 현지 네크워크를 쌓기에는 이만 한 자리도 없을 것이다.

오사카 총영사는 아무나 보내도 괜찮은, 그렇고 그런 자리가 아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외교부 본부 국장을 거친 베테랑 외교관이 부임했다. 일본 근무 경험은 기본이다. 댓글을 끄적댄 인물이 그런 막중한 자리를 인사 청탁했다니 기가 막힌다. 장관급 대사를 지낸 전직 외교관은 “어쩌다 총영사 자리가 이 지경이 됐는 지···”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역대급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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