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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신약은 단지 과학자의 노력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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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태진의 신약개발 최신 트렌드]

신약 연구개발의 진정한 밑거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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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치료요법을 받고 있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어린이인 에밀리 화이트헤드의 CAR-T 치료 전 모습 (왼쪽, 출처: 에밀리 가족)과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어린이의 말초 혈액 (오른쪽, 출처: 위키미디아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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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환자와 그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신약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우선 직접적인 신약 연구개발 과정은 아래 그림과 같이 크게 5단계로 나뉜다(아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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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신약 개발 5단계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기초연구들이 있어야 한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매년 10월만 되면 뉴스를 장식하는 노벨상 수상 소식의 주인공들이 획기적 기초연구 업적을 남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기초연구 중에서 새로운 약물 타깃을 제공하거나, 새로운 현상의 과학적 발견 또는 규명, 증명으로 직접적인 신약 개발의 근거를 제공하는 결과물들이 바로 0단계로 표시된, 신약 개발에서 이야기하는 기초연구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면, 신약 개발에 큰 밑거름이 되는 기초연구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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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 5단계. 일반적으로 기초연구를 통한 발견과 발명은 이 5단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초연구의 학문적 성과가 없다면, 신약개발은 불가능하다. 1단계에서는 약물 타깃에 대한 활성을 나타내는 물질을 찾는 과정이다. 2단계는 발굴된 활성물질의 특성을 여러 가지 동물모델들에서 확인하는 과정이다. 3단계 임상과정은 동물모델에서 확인한 안전성과 약효가 사람에게서 확인되는지 검증하는 과정이다. 4단계 신약승인 신청 및 검토는 임상에서 확인된 과학적 결과들을 서류로 잘 정리하여 식약청(미국 FDA)에 신청하고, 허가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5단계는 허가된 약물의 시판 후 안정성 검증 및 다른 질병의 치료제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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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지적 호기심’에서 나오는 기초연구의 학문적 성과

수많은 과학자들이 남긴 찬란한 학문적 업적의 원동력에는 ‘사랑’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만들어낸 사람들 중 적지 않은 경우가 좋아하는 이성의 관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인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정말로 사랑(이성 간의 사랑만을 뜻하지 않는다)이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만든 동기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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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에 실린 폴 다우드(Paul Dowd) 교수의 논문에서 발췌. 그는 혈우병(혈액에 피를 굳게 하는 인자들이 부족해 생기는 질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피가 응고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타민 K를 연구하여 관련된 자세한 메커니즘을 밝혔다. 이런 학문적 성과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한 게 아니었을까? 출처: Science (1995)


미국 피츠버그대학 화학과에 폴 다우드(Paul Dowd)라는 교수가 있었다. 1996년 12월 그의 죽음을 전하는 <뉴욕타임즈>의 부음기사를 살펴보면, 그의 연구 분야가 비타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6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 유기화학자의 마지막 연구들은 비타민 K와 E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비타민들이 혈액이 응고되는 과정 또는 그 반대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관여한다는 것을 정확한 메카니즘으로 설명하는 학문적 성과를 남겼다. 이와 같은 뛰어난 기초연구는 혈우병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간접적으로나마 치료제 개발에 큰 밑거름이 된다.

그런데, 이 유기화학자는 왜 비타민 K와 E 연구에 몰두하였을까? <뉴욕타임즈> 기사 말미에 폴 다우드의 가족으로 소개된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이곳에 소개되지 못한, 혈우병(혈액 내 피를 굳게 하는 인자들이 부족해서 생기는 질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이 있었다. 유기화학자인 그가 피 응고와 관련이 있는 비타민 연구를 수행하여, 죽는 순간에 사람들로부터 “비타민 연구자(A Researcher of Vitamins)로 기억될 수 있는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던 것은 아마도 먼저 떠나보낸 아들을 기리는 아버지의 사랑이 학문적 성과로 표출됐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신약개발의 밑거름이 되어준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이룬 경우는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과학자가 진행 중인 연구가 가족의 질병을 치료할 치료제 개발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스탠포드대학에서 실리악병(Celiac disease: 밀가루를 반죽하면 끈기가 생기는 것은 글루텐이라는 단백질 때문인데, 실리악병은 이 단백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타나는 질병이며 자가면역질환의 하나이다)의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인 체이튼 코슬라(Chaitan Khosla) 교수가 바로 그렇다. 이처럼 치료제 개발의 밑거름이 되는 눈부신 기초연구 성과를 내는 연구자들과 직접 치료제의 개발을 진행하는 연구자들 가운데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 이유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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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최고의 품성이 있다면 “지적 호기심”이다. 과학자가, 그리고 신약 개발의 꿈이 있는 학생들은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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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뚜렷한 학문적인 성과를 내거나 직접 치료제를 개발할 동기 부여는 가슴 아픈 가족사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그런 사연이 없는 더 많은 과학자들도 뚜렷한 기초연구 성과를 이루어 신약개발에 큰 업적을 남긴다. 꼭 신약개발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커다란 학문적 성취를 이룬 많은 사람들은 강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앞서 설명한 “가족에 대한 사랑” 못지 않게 중요한 동기가 된다.

연구를 오랜 시간 지속하는 과정은 상상하는 것보다 힘들 때가 많다. 몇 년 간의 학위과정은 졸업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가지고 다른 모든 일상생활까지 희생하며 견딜 수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연구 활동을 평생 지속할 수는 없다. 새로운 가설과 실험설계, 실험수행, 실험 데이터의 합당한 해석, 다음 단계의 실험 또는 다른 방법의 중복적 검증 실험 그리고 해석된 결과를 다른 과학자 동료들에게 검증 받는 과정, 그리고 또한 다른 과학자들의 최신 연구결과들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어 가설을 만들어내고 또다시 앞서 설명한 과정들을 반복하는 일이 평생의 업무가 될 테니까. 그러므로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자신의 연구에 깊게 몰입하지 못하면, 수준 있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 또는 발명을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강한 지적 호기심이 꼭 필요하다. 미래 연구자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적 호기심의 크기가 얼마 만큼인지 알아야 하며, 그것을 꾸준히 키워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기초연구 성과들이 탄생하는 시점부터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탄생할 때까지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기초연구 성과 이후 수십 년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우선은 아래의 두 가지 표를 살펴보도록 하자. [표 1]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면역항암제들에 관한 정보를 정리한 것이다. 그 신약 연구의 시작은 1980년대 또는 90년대에 처음 언급된 약물 표적(타깃)들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면역학 등의 학문들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과학적인 사실들이 발견되었고, 그 학문적인 성과들이 누적되면서, 이것들을 약물 타깃으로 삼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치료항체라는 약물접근방식(modality)으로 진행되었다. 짧게는 17년에서 길게는 24년의 연구 기간을 거친 이후에야 그 결실로서 신약이 최종 허가를 받았다. 이 경우들은 이미 개발되어 있는 약물접근방식인 항체를 이용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약물접근방식을 개발하면서 만든 신약의 경우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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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를 살펴보면 아스피린으로 대표되는 소분자 약물 이후로 개발된 새로운 형태의 약물접근방식들 가운데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것들이다. 짧게는 약 15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길게는 50년 이상의 노력 끝에 신약으로 탄생한 경우도 있다. 한 가지의 신약이 성공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이렇게나 긴 시간이 걸리며, 그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들 그리고 엄청난 사회적인 비용도 들어간다. 비록 자신들의 의지로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신약 개발에 도움을 준 수많은 동물들의 희생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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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 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해 파괴한다. 출처: https://youtu.be/ZPo8jWJyV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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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이 새로운 약물접근방식을 포함한 신약을 만들어내는 걸까? 면역항암치료 분야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카티(CAR-T)의 개발과정을 통해서 생각해보자.

카티(CAR-T; chimeric antigen receptor T cell)라는 세포치료제가 는 환자의 면역세포(T세포)에 유전적인 처리를 하여, 암세포 표면의 약물 표적을 인식함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도록 T세포들의 공격 능력을 더욱 높인 치료제이다. 앞에서 설명한 암세포의 다양한 면역회피 방법들을 한 번에 극복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FDA에서 허가를 받은 ‘카티’는 혈액암에서 높은 치료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관련 글: “‘암세포 약물내성을 깨라’ 면역항암제의 치열한 도전”)

카티(CAR-T) 개발의 스토리 살펴보면

다음의 내용은 ‘카티’의 개발 과정에서 있었던 실화로,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에 실렸던 내용을 당시 임상시험에 참가했던 첫 어린이인 에밀리 화이트헤드(Emily Whitehead, 2012년 실험 참가 당시 7세 여아)의 시점으로 각색해서 정리해보았다. 신약 탄생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살펴보자.



“2010년 5세였던 저(에밀리 화이트헤드)는 불행히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치의는 부모님에게 “만일 저의 아이가 암에 걸려야만 한다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가장 좋은 암(상대적으로 완치 가능 확률이 높은 암이란 의미) 입니다”라고 안심시키며 치료하였지만, 저의 치료과정은 다른 환자들과는 달랐습니다. 2회에 걸친 화학치료요법 이후에 양쪽 다리에 괴사성 근막염이 발생하였고, 간신히 절단 수술만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6개월 이후에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재발되었습니다. 주치의는 골수 이식을 추천하였지만, 독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다른 곳의 병원에서 진행되는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개발 중에 있는 카티-19라는 새로운 치료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종양세포를 죽이기 위해서 환자 자신의 T세포를 유전적으로 조작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치료법은 아직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시험에 통과, 허가를 받은 치료법이 아니었고, 그 무렵 저의 백혈병 세포는 매일 두 배씩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지역 병원에서 집중적인 화학치료요법을 3주간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주치의는 부모님께 죽음을 준비하도록 호스피스를 추천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아버지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카티-19의 임상시험에라도 참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담당 의사는 제가 나아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실험적인 연구에 참가하는 것보다 가족을 위해서도 호스피스가 좋은 선택이라며 설득하였지만, 저를 ‘카티’ 임상시험에 참가시키겠다는 아버지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카티’ 치료를 받게 되는 첫 번째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카티-19치료의 모든 과정(임상시험)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3번째 카티-19를 투여 받은 이후 저에게서 고열, 호흡부전, 쇼크가 나타났고, 의료진은 통상 2주 걸리는 혈액검사를 서둘러 달라고 검사팀에 사정을 하였습니다. 요청 2시간 후 저의 혈액 안에서 “인터루킨-6(IL-6)”이라는 면역물질이 일반인에 비해 1000배 높다는 사실이 의료진에게 보고되었습니다. 당시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약물독성이 나타난 것이었고, 의료진은 구글링을 통해서 이 면역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면역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단일클론항체가 같은 병원에서 사용 중에 있었고, 사용 프로토콜이 있었으며, 따라서 그날 저녁 인터루킨-6을 제거할 수 있는 항체를 처방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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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화이트헤드는 ‘카티’ 임상시험에 참여한 첫 어린이로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다. 사진은 애완견 루시와 함께한 에밀리 화이트헤드. 출처: 에밀리 화이트헤드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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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참여의 결과로 2017년 지금 저는 12세의 건강한 아이가 되었고, 저의 생존은 실패 쪽에 가까워지고 있었던 일련의 연구들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8월 FDA는 재발 또는 내성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가진 25세까지의 환자에게 이 기술을 사용하는 ‘카티’ 치료제를 승인했습니다. 노바티스 2상 임상시험에서 ‘카티’를 투여 받은 어린이 63명 중 83%가 3개월 만에 악성 세포를 완전히 제거했다고 하니 비록 적응증이 좁기는 하지만, 치료 방법이 없던 환자들에게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는 ‘카티’입니다. 그리고 ‘카티’를 개발한 칼 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 개발과정은 위기의 연속이었고, 특히 에밀리, 제가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면 ‘카티’는 세상에 없었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저와 부모님도 큰 역할을 한 것이겠죠.^^“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2017)에 실린 글 "비극, 인내, 그리고 기회 -'카티' 치료제 이야기"에서 인용 각색)

‘카티’ 개발 과정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추상적으로 신약개발자/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신약이 탄생되는 줄로만 알았다면, 에밀리의 이야기를 통해서 환자와 환자가족의 용기 역시 대단히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기 시작하여 FDA의 승인을 받고 환자에게 보급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헌신들이 필요하다. 더구나 ‘카티’처럼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약물접근방식(modality)이 성공적으로 FDA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과학적 진보가 그러하듯, 수십 년 동안 수백 명의 과학자들의 노력과 고뇌, 통찰력 그리고 성취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사실 ‘카티’가 면역력을 이용하여 암을 치료했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1893년 면역계를 통해서 암이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알려진 외과의사 ‘윌리엄 콜리’가 그 시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2) 그러나, 1993년 ‘카티’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처음 실험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논문으로 발표하였던 이스라엘 연구진이 진정한 의미에서 ‘카티’ 개발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3) FDA에서 최초 ‘카티’ 승인을 받은 치료제를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개발하였던 면역학자 칼 준(Carl June) 교수. 2001년 46세 나이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가 처음으로 암 진단을 받았던 1996년부터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카티’를 이용한 항암 치료 연구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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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를 처음 개발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면역학자 칼 준 교수. 출처: https://youtu.be/jQfFCC6i5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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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한 에밀리와 그 가족의 역할이 ‘카티’ 개발에 중요했던 것처럼, 과학자가 아니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며느리를 유방암으로 잃고는 ‘암유전자치료동맹(ACGT) 재단’을 2001년 만들었으며, 재단을 통해 칼 준 교수에게 ‘카티’ 연구비를 지원했던 네터 부부(남편 에드워드 네터는 201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가 없었다면, 역시 ‘카티’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여기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카티’ 개발의 과정에서 만날 수 있었던, 더 많은 수의 연구자들, 의료인들, 환자와 환자 가족들, 그리고 자신의 아픈 기억들을 다른 환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많은 후원자들, 제약회사와 정부의 노력들. 이 모든 사람들의 의지와 사랑 그리고 통찰력(지적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새로운 치료방법인 ‘카티’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동시에 7세였던 에밀리는 5년후 12세의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신약의 탄생이 단지 몇 사람만의 노력 또는 몇몇 기업의 노력으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하자. 반면, 그 결과물인 신약이 많은 사람들의 삶에 끼치는 대단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현업으로 직접적인 신약개발 과정(5단계)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연구진들은 더욱 더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윤태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 tjyoon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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