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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핫 뉴스] 타워크레인에서 용변 보는 것도 찍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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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조종석 블랙박스 추진… 여성 기사들 인권위 앞 호소]

기사 3600명 중 여성이 200명

한 번 올라가는데 수십분 소요… 퇴근까지 10시간 이상 머물며 식사부터 생리현상까지 해결해야

정치권 "인권 침해 않도록 조정"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기사는 출근해서 조종석에 올라가면 퇴근하기 위해 내려올 때까지 조종석에 머무른다. 식사와 생리현상을 그 안에서 해결한다. 그런데 최근 잇따르는 타워크레인 사고를 예방한다며 조종석 안에 블랙박스(영상기록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기사들은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다. 특히 여성 기사들의 반발이 심하다. 현재 전국의 타워크레인 기사는 약 3600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200명쯤 된다.

◇조종석에서 식사·용변 해결하는데…

지난 12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타워크레인 기사 30여명이 모였다. 이 중 23명이 여성이었다. 집회현장엔 '엉터리 정부대책안 철회' 등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들은 지난 2월 발의된 '타워크레인 블랙박스 설치법'(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의 수정·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타워크레인 임대사는 조종석에 영상기록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위반할 경우 3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조선일보

지난 12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 노조가 조종실 내 영상 촬영 장비 설치 의무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집회에서“여성 인권 유린하는 CCTV 설치 방안 철회하라”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 참가자 30여명 중 23명이 여성 기사였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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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의 높이는 보통 50~100m 정도다. 건물이 올라갈수록 타워크레인도 높아진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50m를 오르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오전에 올라가면 퇴근 때까지 10시간 가까이 내려오지 않는다.

기사들이 생활하는 조종석은 4㎡(1.2평) 정도 된다. 경력 21년의 양영은(여·48)씨는 "오르내리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조종석을 비울 수 없다"며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올라가고, 페트병을 잘라 의자 뒤에서 용변을 본다"고 했다. 더운 여름엔 속옷 차림으로 일하기도 한다.

◇블랙박스 설치론 원인 해결 못해

국토교통부는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 따라 이 조종석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운행과 관련된 정보를 기록하려면 블랙박스가 조종석을 비춰야 한다는 논리다. 여성 기사 김미라(35)씨는 "좁은 조종석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면 사각지대가 없어 숨어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연식 조작 등 타워크레인 사고의 근본 원인은 놔두고, 조종석 블랙박스 설치를 추진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선 영상을 녹화하는 블랙박스 대신 음성기록장치나 운행기록 자기진단 같은 방안으로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2일 한국노총 타워크레인노조 조합원들은 인권위에 '타워크레인 블랙박스 설치법'의 인권침해 여부를 검토해 달라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지난 9일에도 한국노총 타워노조 조합원 50여명이 국회 앞에서 법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안대로라면 조종석이 화면에 잡혀야 한다"며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고 조종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문제"라고 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실 관계자는 "기사들과 논의해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시행령·시행규칙을 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비교적 고수입이고, 남녀 간 임금 차이가 없어 최근 타워크레인 기사가 되려는 여성이 많다고 한다. 경력 20년 이상 된 한 여성 기사는 "10여년 전만 해도 타워크레인을 조종하는 여성은 20명 안팎이었다"며 "최근 몇 년 새 부쩍 늘었다"고 했다. 그러나 공사 현장은 여성에게 녹록하지 않다고 한다. 한 여성 기사는 "같이 일하기 불편하다며 건설회사나 임대사가 남성 기사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방 출장이 많은 것도 여성들에겐 현실적인 부담"이라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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